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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크게 바라지 않는 부모의 마음이란...

자식은 아기 때 평생 할 효도를 이미 다했다

by 델리러브

'바다거북'은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에서 보낸다.단 3년에 한 번 정도 알을 낳기 위해 암컷은 육지로 올라온다. 모래사장에 50cm 깊이의 구덩이를 판 후 산란을 시작하면, 4시간 정도 걸쳐 40~200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부하 기간은 약 두 달. 깜깜한 밤에 알을 깨고 나온 바다거북은 스스로의 힘으로 바다까지 가야 한다. 그래서 알을 바다와 멀지 않는 모래에 파묻는다. 암컷의 노력으로 알 부하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어른으로 성장하는 거북은 열에 하나 정도. 힘겨운 성장 과정을 거쳐야 어른바다거북이 된다.



'후악치'라는 물고기는 알을 낳으면 수컷 입속으로 직행한다. 아빠의 입안에서 알들이 자란다. 최대 품을 수 있는 알은 400여 개. 8일에서 10일이 지나면, 드디어 알이 부하한다. 하지만 알을 품는 기간 동안 아빠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으며, 알에 산소 공급을 하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어야만 한다. 쉽지 않은 고행이다.



이례적으로 '죄수베도라치'라는 물고기는 새끼들이 암컷에게 음식을 갖다 바친다.' 죄수베도라치'들은 '육아'가 아니라 '육모'를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선 생태계 생물들 중 다수가 육아를 한다. 특히 포유류들의 육아 기간이 길다. 포유류인 인간 역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끊임없이 아이에게 물을 준다. 제때 물을 줘야 하고, 햇볕 좋은 자리로 옮겨줘야 하고, 통풍과 습기에도 신경 써야 한다.


아이가 '산세베리아'처럼 신경 쓰지 않아도 잘라는 식물이면 좋으련만,
많은 경우, '난'처럼 손이 많이 간다.



결혼 후 4년간은 친정집에서 가까운 곳에 살았다. 첫째를 데리고 자주 친정집에 갔다. 남편이 출장일 경우, 자고 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마다 아빠는 아이를 위해 온 동네를 다니며, 고르고 골라 잘 익은 과일을 사 왔다. 첫째는 입맛도 특이해 다양한 과일을 즐겼다. 석류나 살구, 주황 멜론, 체리 등 아빠는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네를 전전했다.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수박이었는데, 아이가 커갈수록 아빠는 수박을 사지 못했다. 무거운 수박을 집까지 옮길 수 있는 체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손주를 보며 웃었고, 손주가 오지 않으면 보고 싶어 했다. 나도 손주를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어 주기적으로 집을 찾았다. 그때마다 아빠는 택시비로 만 원을 주었다. 처음엔 괜찮다고 했는데 항상 챙겨주셔서 그냥 받았다. 번듯한 정규직인 오빠 부부와 작은 언니 부부와 비교해, 우리는 내일이 불안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부부였다. 아빠의 눈에도 살림살이가 가장 어려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명절 때면 내가 주는 돈은 받지 않으셨다. 두고 가도 다음에 가면, 다시 가져가라고 하셨다. 모아둔 돈도, 앞으로 모일 돈도 가장 변변치 않아 보였던지 아빠는 우리 4남매 중에 내 걱정을 가장 많이 하셨다.



남편이 일주일 정도 출장을 가던 날. 나는 친정으로 바로 왔다. 일주일 간 친정집에 있었는데, 아빠가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예전 아빠는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청소도 하고, 신문도 보고, 산책도 가셨다. 그런데 새벽에 잠깐 깨 식사를 하시고 좀 움직이시디가 다시 잠이 드신다. 오전 11시까지 쓰러져 주무셨다. 그렇고 나면 입맛이 없으신지 부엌에 음식들을 뒤지기 시작하다가 뚜껑을 덮었다. 마지막 날, 집으로 가는 콜택시를 부르고, 늘 그래왔든 아빠와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그날따라 오만 원을 주시는 거다. 그래서 오만 원은 됐다고 했고, 아빠도 그때는 흔쾌히 '다음에 가져가라'라고 하셨다.



물론 그다음은 오지 않았다. 일주일 후 아빠는 응급실로 실려가셨고, 일주일이 못돼 고향 선산에 묻히셨다. 그때 묘자리를 보는 지관이 큰언니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막 했다는 것이다. 신점을 보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아빠가 돌아가는 마지막까지 막내 걱정을 하다 갔다는 것이다. 신빙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빠는 늘 그렇게 내 걱정을 많이 했으니까.



그때 문득 깨달았다. 아빠를, 부모를 가장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은 내가 잘 살아야 하는 것. 경제적으로도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생태계에 많은 생물들은 모성애와 부성애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애써 알을 보호하는 이유는 알들이 잘 태어나 성인으로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있다. 상위 포식자에게 바로 잡혀먹지 않고, 먹이 제물로 받쳐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들도 그뿐일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자식에게 더는 크게 바라지 않는 마음,
그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다.


순간 잊을 때도 있지만, 나도 아이들에게 가장 크게 바라는 건, 건강하게 잘 자라달라는 것. 아프지만 않으면 괜찮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건 많지 않다. 그리하여 내가 우리 부모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방법은, 내가 건강하게(몸과 정신 모두)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잘 사는 것이다. 이제 나에게 '부'는 없지만, 나의 엄마 역시 내게 가장 바라는 바이다.



자식은 아기 때 평생 할 효도를 다했다고 하지 않은가.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하면, 내가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그 중 하나의 지분이 내 부모에게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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