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네 병원에 가는 걸 꺼려하는 이유
9월 2일, 남편과 첫째가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소아과에 갔다왔다. 다음날, 그 소아과에 며칠전 코로나 확진자가 왔다갔고, 진료를 한 의사와 간호사가 코로나 검사를 했다고 한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 음성이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은 검사도 받았을 것이고, 음성이어도 자가격리 상태로 일주일 넘게 감금됐을 것이다. 일단 다행이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오전에 다녀간 것으로 보아 다행히 확진자가 있을 때 병원을 찾은 이들이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별일이 생기기 않았던 걸까? 이것이 과연 방역 지침만을 잘 지켜서였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의사의 평균 1인당 진료 시간은 몇분일까? 2분~3분? 특별한 이상 증세가 없다면, 5분도 안되어 끝난다. 짧게는 1분. 질문하지 않으면 별다른 얘기도 없다. 하지만 처방전을 받으면 기본 4가지 이상의 약들이 처방돼 있다. 몇 분 보지도 않으면서 무슨 약을 이렇게 많이도 처방해주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매번 다 먹이지 않고, 도중에 약을 먹이지 않는 편이다.
코로나가 전염성이 뛰어나다는 건 안다. 그 병원이 방역 지침도 잘 지켰을 것이다. 그런데 감염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짧은 진료시간에도 있을 것이다라고 조심스레 추정한다. 솔직히 5분도 길다. 2분 내외 진료 시간. 말도 오가지 않는 그 순간. 그 찰라의 진료시간. 둘다 마스크를 했고, 확진자와의 접촉 시간도 짧았으니 다행히 코로나에 전염되지 않았던 건 아닐까?
다행인데 불편하다. 제대로 진료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못한채 매번 병원 문을 닫고 나오던 내 기억을 복기하니 더욱 그렇다. 다행이라 다행인데 불편한건 또 불편한 거다. 다행이면 다행이다 치부하면 되는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이 동네로 이사오면서 나의 가장 큰 불만은 큰 마트가 없는 것도, 서점이나 자연드림과도 담을 쌓고 살아야한다는 게 아니었다. 이 동네 의사에 대한 불신이다. 병원마다 어디하나 괜찮은 곳이 없다. 5개월된 아이에게 가루약을 처방한 의사나 기침 난다고 하면 옵션으로 매번 기침패치를 처방하는 의사나 불친절한데 매번 아이 이름까지 바꿔 부르는 간호사나 어디하나 눈에 거슬리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문제는 우리집 근처 병원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진료를 제대로 못본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좀 중증으로 보인다싶으면 차로 30분 넘게 걸리는, 예전 동네 병원에 간다. 여기서 멀지 않은 다른 동네 병원에 갔다가 애가 시끄럽다고 신경질 부린 소아과 전문의를 만난 경험도 있어 선뜻 아무 소아과에 가기는 싫다.
예전 동네 소아과 의사는 좀 다르다. 나이가 많은 남자 노의사인데 손님이 줄을 서서 대기해도 서두르는 법이 없다. 한 명 한 명 충분히 진료를 보고, 설명을 해준다. 가끔 간호사가 재촉할 정도인데 그때마다 노의사는 눈을 흘기며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간호사는 뜨금하고 다시 뒤로 빠진다. 노의사는 다시 친절모드로 진료에 충실한다.
애가 울고, 싫다고 거부하면 억지로 하지 않는다. 애가 우는건 당연한건데 내가 미리 얘기를 안해서 그런 것 같다며 자신의 자책했다. 한 번은 초등학교 4학년 쯤 된 남자아이가 주사실에서 예방 접종을 온몸으로 거부할 때 간호사가 달려가 그분께 도움을 청했다. 노의사는 성큼 달려가 아이가 주사를 맞도록 최선을 다한다. 가끔은 병원이 문 닫기 전에 출타하는 바람에 몇 번 바람을 맞기도 했지만, 자유영혼을 지닌 그 노의사가 나는 마음에 든다. 일단 소아과 의사라면 애들이 돈으로 보이면 안되는거 아닌가. 진심으로 아이들을 예뻐해주는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매번 약으로 모든걸 해결하지 않고 지침서를 미리 만들어두고, 그 지침에 맞춰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소아 변비, 알레르기 비염 등 만성 질환과 관련해 생활 지침을 정리해두고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첫째의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갔을 때는 몸소 예방법을 시연해줬다.
“혹시 에어컨 청소 언제 했어요?”
내가 머뭇거리니 물티슈를 꺼내와 에어컨 쪽으로 가서 에어컨 송풍구 날개부분을 닦기 시작했다.
“난 맨날 닦아. 그런데도 이렇게 까매요”
한번은 진료 중 알레르기 검사하려다 병원에서 피를 뽑는데 실패해서 검사를 못했다고 하니
“애도 싫다는데 뭘 또해. 안해도 돼요”
온 병원들은 갈 때마다 해야된다며 다들 난리였는데 이 노의사는 심각한 알레르기가 아니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과잉 진료도 없고 집이 먼 것도 알아 약도 3일치가 아닌 10일치를 지어준 적도 있다.
게다가 오지랖도 넓으시다. 남편이 심장 문제로 상의를 했을 때는 자신이 심장으로 논문을 썼다며 친히 논문을 들고와 설명해주고, 아이의 상처를 보더니 '켈로이드'가 의심스럽다며 피부과에 가보라고 했다. 자신이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지만, 그럼에도 눈에 보이면 가만 있지 않는다. 그분은 타고난 의사체질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다른 병원보다 진료시간도 길다. 그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서 다른 병원에 비해 단골도 많다.
우리 가족이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었을 뻔한 상황을 피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내가 그 소아과의 진료 시간이 짧아서 전염성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다행이라 생각하는 날이 오다니. 여하튼 다행인건 맞는데 여전히 동네 병원으로 발걸음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동네 병원들은 도긴개긴인가 보다. 소아과보다 치과는 더 심하다고 한다. 같은 단지 내 사는 분이 치위생사이다. 자기가 다니던 동네 치과의 의사는 진료 후 직접 카운터로 가신단다. 치아관리보다 병원 재무 관리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근데 막상 치료할 땐 팔이 덜덜 댄다고 한다. 함부로 이를 맡겼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를 일이다. 예전에 친구남편은 치과의사는 의사가 아니라며 덴티스트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한말이었다.
의사들의 고충은 알겠지만, 과연 우리나라에 환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의사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또한 과연 그들의 실력은 누가 보장하는가. 의술은 인술이라는데 지금은 의술이 돈이고 명예에 불과해보일 때가 있다. 예전에 급성 디스크로 병원에 갔을 때 나보고 당장 수술 안하면, 장애인된다고 했던 의사는 진심 지금이라도 가서 김치 싸대기를 날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돈 버니 좋냐라고. 의사 자격증으로 사기치는 것 아니냐고 따지고 싶다.
그래서 동네 병원에 갈 때마다 예전 동네의 노의사를 떠올린다. 과연 그런 의사를 평생 살면서 몇이나 만날 수 있을까? 아빠 때문에 병원에 갔을 때마다 만났던 대학 병원 전문의들과 그간 스쳐갔던 응급실 전문의들을 떠올리면서 좋은 의사를 만나는 건 천운이다라고 할 정도로 힘들어보였다. 다행히 나는 한 명이상 만났으니 이점도 다행이다.
내가 자주 가는 소아과 노의사처럼 맘 놓고 진료 받을 수 있는 의사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럼에도 코로나를 비켜갈 수 있어서 진심 다행이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