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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우리집 목전까지 왔다

늦은밤, 구급차 사이렌 소리.. 불온한 타전일까?

by 델리러브

아이들의 청각은 매우 정확하고, 정교하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소리는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 월요일 아침마다 재활용품을 걷어가는 '너클 크레인 소리', 둘째 아이가 아저씨 삐뽀차라 부르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 그리고 아빠의 차가 집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알림 소리'까지. 그중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리가 '구급차 사이렌 소리'이다.



어제도 늦은 밤,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두 아이는 동시에 창쪽으로 달려갔다. 알고 보니 우리 아파트 단지 내로 진입하는 구급차였다. 목적지는, 하루에도 여러 번 구급차가 들락대는 (주로 노인층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아니었다. 구급차가 우리 아파트 단지로 향한다는 건 매우 의례적인 일이다. 과연 무슨 일일까? 이때 나의 예민한 촉이 발동되기 시작됐다.



현재 우리 동네는 구시가 쪽에 학원에서 아이들 확진자만 18명이 발생했다. 실검에 오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같은 건물, 지역아동센터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우리 집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걱정되는 마음에 아파트 카페를 확인해봤다. 역시나 어떤 분이 자기네 동으로 방호복을 입은 구급 대원들이 왔다고 갔다고 한다. 혹시 코로나 때문이 아닐까 걱정하는 글이었고, 밑으로 댓글이 쭉 달렸다. 그리고 좀 전에 받은 문자와 연결 지어봤다. 첫째 유치원에서 온 문자이다. 본원 아동이 태권도 학원에서 확진자와 접촉해 오늘 오전에 검사받을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대략의 시나리오를 짜본다. 유치원 문자 속 아이는 우리 단지이고, 그 단지에는 첫째와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00이 살고 있다. 그 아이는 방과 후 과정을 하고 있고, 태권도도 다니는 것 같다. 그리하여 문자 속 아이는 바로바로바로 작년, 첫째와 방과 후 과정 같은 반인 000이 아닐까? 물론 나의 추측이지만, 완전히 신빙성이 없는 얘긴 또 아닌 것 같다.



다행히 첫째는 8월 중순 이후, 딱 한 번 유치원에 갔다. 태권도 학원도 다니지 않고, 단지 내 사는 친구들을 만난 적도 없으니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내가 추측하는 그 아이와도 같은 반이 아니다. 그럼에도 코로나라는 검은 파도가 우리 집 근처까지 덮쳤다는 생각에 공포감이 몰려왔다. 코로나가 내 목을 조여오는 느낌이다. 만화 기생수의 그 손처럼 눈과 코와 입이 달린 코로나가 목을 조이며, 내게 말을 한다. 좀만 기다려라~ 라고 말이다.



사실 구급차 소리는 내겐 불온한 기억을 연상시킨다. 이사 오기 전, 대형 대학병원 근처에 살았다. 보니 수시로 지나가는 구급차 소리에 둔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두 가지 사건으로 인해, 어쩌면 저 구급차 안에 내가 알고 있는 이가 타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끔 몸이 안 좋아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던 아빠가 생각났다. 그날 놀이터에서 아이와 나는 구급차의 싸늘한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나 언니가 아빠가 응급실로 구급차를 타고 갔다는 소식을 알렸다. 나와 무관할 거라 생각했던 사이렌 소리. 그 소리가 어쩌면 내게 불온한 소식을 알리는 소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고통스러웠던 마왕(고 신해철)이 제일 먼저 찾은 응급실이 바로 당시 우리 집 근처 병원이었다. 평소에도 응급실 대기줄이 어마어마한 탓에 이곳 응급실은 응급실이 아니라고 했던 그 병원. 마왕은 구급차를 타고 그곳에 갔지만, 결국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다. 나는 마왕이 쓰러진 그날 수차례 내 귀로 타전을 보낸 구급차 소리를 되뇌었다. 불온한 소식을 탑재한 구급차가 내게 보낸 신호들. 그날 내가 들었던 구급차 사이렌 소리 중에 가장 구슬펐던 소리를 떠올린다(상상한다). 내 마음이 한 마디 한다.



'그날 그 소리가 가장 서글펐어. 어쩌면..."



'어쩌면 마왕이 타고 있었을지도 몰라'라며 나는 애도를 표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빠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탄 구급차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날 나는 다른 지역에 있어, 불온한 소식을 알리는 구급차의 타전을 듣지 못했다. 좀 더 빨리 들었다면, 아빠를 좀 더 일찍 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렇다 한들 달라질 건 없다. 생을 잡아다 엿가락처럼 늘일 수도 없지 않은가.




공포 영화에서 가장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건 바로 효과음이다. 소리가 주는 공포는 실체가 없다.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진동소리들이 무한한 상상을 하게 한다. 상상 속에서 이미 나는 유령의 제물이 되었고, 귀신 소굴 한가운데 있으며, 살기 위해 어둠 속을 달리기도 한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공포 영화는 '살인의 추억'이다. 누구도 '살인의 추억'을 '스크림'이나 '주온', '링'과 같은 호러 영화 장르로 구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영화를 복기할 때마다 호러물을 보는 듯한 공포감에 소스라친다. 특히 엔딩에서 송강호가 논두렁에 버려진 배수로 안을 바라보다 관객과 눈을 마주칠 때.. 마치 범인 보고 있냐?는 그 표정은 여전히 사건이 진행 중임을 알게 한다.



공포에 민감한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왔던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화성군 태안읍(시 승격전의 지명) 그 길을 머릿속에 입력해뒀다. 가끔 개천이 흐르는 동네 산책로를 걷다가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비슷한 느낌의 길을 발견하면, 주변은 순식간에 아파트들이 무너지고, 농촌 마을로 둔갑한다. 그리곤 누군가 내 뒤를 밟는 것 같다는 상상을 한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발걸음이 가까워질수록 내 심장의 데시빌도 숨을 죽인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어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온몸에 소리를 가동하지 않고, 바로 소리를 중지시킨다. 저 너머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뭘까? 개천의 물소리만 요란하다. 이 상상이 영화 속 한 장면이라면, 그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이 나라면, 나는 스테디캠을 써서 내 뒤를 바짝 팔로우 시킬 것이다. 나는 보이지 않고 나의 시선으로 그리고 저벅, 저벅 걷는 소리를 그러데이션 효과를 넣듯 점점 증폭시킬 것이다.



이런 부질없는 상상을 한다. 공포가 눈앞에 펼쳐진다면, 진짜 가장 괴기스러운 소리는 무얼까? 잘은 모르겠지만, 공포감이 최고조로 달았을 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다면, 그 또한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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