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 사슴벌레 유인작전 성공?
7살 된 아들은 지난 7년간 다양한 아이템으로 덕후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주황색부터 시작해 가장 오랜 기간, 덕후력을 발휘한 공룡까지 근 7년간 바쁘게 살았다. 최근에는 갑자기 사슴벌레에 빠져들었다. 곤충이 아니라 사슴벌레를 좋아하고, 사슴벌레 중에는 '넓사'라 불리는 넓적사슴벌레를 좋아한다. 사슴벌레를 키우고 싶다고 가끔 노래를 부른다. 엄마는 좀 생각해보자로 일관 중이다. 예전에 어린이집에서 달팽이를 준 적이 있는데 그때 생물을 책임진다는 건 엄청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슴벌레라니...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러다 진짜 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슴벌레 책은 유아용이 아니라 대부분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 걸맞은 책들이 많다. 그래서 생각보다 글밥이 많다. 아이도 글씨를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글밥이 있어도 열심히 읽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경우 더욱 그렇다.
10월부터 사슴벌레는 겨울잠을 자러 갈 준비를 한다고 한다. 장수풍뎅이는 이미 가을에 유명을 달리하기 때문에 봄과 여름에만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요즘 아이는 겨울잠 준비하는 사슴벌레가 잡고 싶은 모양이다.
실제로 사슴벌레를 잡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일단 땅 파서 잡거나 참나무 숲을 뒤져서 잡는 경우가 아니라면, 유인해서 잡아야 한다. 먼저 동물들의 주광성을 활용하는 '등화 채집'과 과일로 유인하는 '과일 덫'이 있다.
사슴벌레 유인 방법
1. 등화 채집 (실제로 유튜브도 많이 있다)
2. 과일 덫 놓기
이날도 나는 깨달았다. 고도의 집중력은 결국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게 한다는 것을. 아이가 갑자기 분주해졌다. 등화 채집을 위해 집에 있는 도구를 찾고 있다. 옷장을 뒤져 천을 가져오고, 전등을 찾아오고, 테이프를 구해왔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도움을 청한다. 좀 더 강력한 테이프가 필요하다고. 그렇게 해서 아이는 집에서 등화 채집을 집에서 하게 되었다.
사슴벌레가 너무 잡고 싶은데 절기상 잡을 수가 없어 아쉬운 아이. 그 아쉬움을 이렇게 집안에서 해소하고 있다. 오늘도 유치원으로 집으로 가는 도중, 내내 사슴벌레 얘기를 했다.
아이는 내년 여름, 참나무 숲으로 가서 직접 사슴벌레는 잡겠다고 한다. 아이들과의 곤충채집에서 결국 바쁜 건 부모들이다. 결국 엄마 아니면 아빠, 아니면 둘 다 최선을 다해 산속 참나무 숲을 찾아 사슴벌레는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등화 채집은 간단한다. 망과 전등을 활용하면 된다. 하지만 과일 채집은 그보다 더 복잡하다. 그물망도 필요하고, 밀폐 용기도 필요하고, 소주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푹 익은 바나나가 중요하다. 책을 보다가 내가 썩은 과일이 필요하네라고 했더니 얼굴을 찡그린다. 그러더니 이렇게 그림으로 표현했다. 진짜로 내년 여름, 동네 산 속에 있는 참나무에 이 과일망이 걸리는게 아닐까 ㅠㅠ
오늘은 사슴벌레들에게 과일을 먹이고 있다. 책을 보니 실제로 사슴벌레들이 나무 진액뿐 아니라 과일을 먹는다고 한다. 손수 제작한 사슴벌레와 덤으로 따라온 장수풍뎅이, 그리고 사슴벌레 피규어가 열심히 과일을 섭취 중이다. 섬세한 손길로 사슴벌레가 과일 먹이 먹는 포즈를 시연했다. 그런데 바람만 불면 쓰러진다는 문제 ㅠㅠ
지난 밤 자기 전, 끝말잇기를 했다. '상'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생각하다 내가 '상수리나무'라고 했더니 아이가 너무 놀랬다. 왜 놀라냐고 물었더니...
기승전 사슴벌레인 아이다. 그러다 문득 ' 지금 시작하는 엄마표 미래교육' 책 속의 내용이 떠올랐다. 뛰어난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의 놀이 방법으로 '월드 플레이'가 소개됐다. 자신만의 세계를 종이인형이든 그림으로든 구현을 하고 노는 것이다. 어릴 때 오빠가 야구팀을 만들어 종이인형을 하고 놀았는데 나는 그 옆에서 곁다리로 함께 놀았다. 오빠의 놀이 상대가 되어준 것. 그렇게 나도 얼렁뚱땅 월드 플레이의 세계를 약간 맛본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이 정해지고, 어떤 세계가 구축되면, 이야기가 시작되겠지. 강제적으로 이끌진 않겠지만, 아이에게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월드 플레이를 즐기던 오빠는 공부력이 뛰어난 만큼 스펙을 키워 잘 살고 있다. 공기업에 취직해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재테크의 성공까지?! 물론, 창의력과는 무관해 보이는 삶이긴 하지만, 얼리어답터로 오덕 이상의 덕후력을 자랑한다. 창의력을 제대로 못 펼친 것일 수도 있으나 그 에너지를 덕질에 쏟는 것 같다.
사슴벌레를 좋아하고 나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진 않는다. 공룡을 좋아할 때 공룡 피규어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도 점차 생긴 것 같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사슴벌레 피규어는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톱사슴벌레나 넓적사슴벌레 정도이다. 아이는 그래서 직접 그리고 논다. 동생 것도 만들어주는 여유를 보여준다. 물론 엄마는 이름이 없으면, 다 그놈이 그놈 같다.
없으면 없는 대로 만들어 논던 우리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사실 요즘 아이들도 종이 한 장 주면 잘 논다. 장난감이 필요한 건 정작 부모들 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흙만 있어도 종일 파고든다. 색종이 하나만 있어도 종이비행기를 날리면서 장시간 놀 수 있다. 아이들에게 과도한 자극을 주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빼앗는 건 결국 부모들이다. 책 읽어 주고, 몸으로 좀 놀아주다가 결국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 한 놀이가 없다는 걸, 알면서 왜 그렇게 매번 벽에 부딪치는 걸까.
적정선을 지키는 게 어려울 수 있다.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고, 무조건 방치하지 않는 선에서 줄을 잘 타야 한다. 첫째가 놀 수 있는 판을 잘 깔아주되 그 아이가 생각하는 상상의 세계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지켜본다. 가끔 아이의 도움이 필요하면, 슬램덩크의 정대만의 어록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