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inoni - Oboe Concerto Op.9 No.11
이른 아침 산책을 마치고, 오후에는 동대문에서 낙산공원으로 이어지는 도성길을 걸어보려 합니다.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의 「오보에 협주곡 내림 나장조 Op.9 No.11」이 오래된 길 위의 기억과 다시 걸어갈 마음을 조용히 깨웁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막 떠오른 햇살이 눈부셨습니다.
일어나 핸드폰과 담배를 챙기고 현관을 나섰습니다. 주일이어서 그런지 뛰는 사람, 걷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습니다. 아침 기온은 벌써 여름 쪽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20분 정도 산책을 하니 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조금 후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도성길을 다녀올 생각입니다. 요즘 시작한 성경 읽기를 도성길에 있는 카페에서 하려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도성길은 동대문에서 낙산공원으로 이어지는 코스입니다.
낙산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옛 채석장 인근의 창신동 동네 풍경은 제가 태어난 읍내의 풍경과 닮아 있습니다.
시골 읍내에는 현충원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곳이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읍내 풍경은 아직도 기억 속에 사진 한 장처럼 남아 있습니다.
옛날 사진첩을 보니 유치원 소풍 때 온 가족과 함께 가서 동생들과 찍은 사진밖에 없었습니다. 정작 그 시절의 동네 풍경은 사진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왜 그때는 사람 뒤에 있던 배경을 함께 남겨두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는 지나고 나서야 풍경도 기억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 기억을 가지고 이화동 낙산공원 옆 카페에서 휴일을 보내려고 합니다. 세월의 흔적과 현대의 감각이 함께 머무는, 아주 매력적인 장소입니다.
유럽 음악과 오페라, 출판 문화가 활발하게 오가던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 중 하나가 베네치아가 아닐까요?
18세기의 음악은 궁정과 교회, 극장과 귀족 사회를 넘나들며 발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감상하게 될 협주곡이라는 형식도 이 무렵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점점 세련된 구조를 갖추어 갔습니다.
독주 악기와 합주가 서로 응답하고, 하나의 주제가 반복되며 변주되는 바로크 협주곡의 질서가 음악 안에 단단히 자리 잡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대에 태어난 음악가 토마소 알비노니. 알비노니는 1671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1751년에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입니다. 그는 부유한 종이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비교적 자유롭게 음악을 공부하고 작곡할 수 있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170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생계를 위한 직업 음악가라기보다, 음악을 깊이 사랑하고 탐구한 베네치아의 음악가로 활동했습니다.
그가 자신을 “베네치아의 딜레탕트(Dilettante Veneto)”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당시 이 표현은 오늘날처럼 가볍거나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생계형 직업인과는 다른 자유로운 음악 애호가이자 창작자의 의미에 가까웠다고 설명됩니다.
오보에는 당시 오케스트라 안에서 색채를 더하거나 목가적 분위기를 만드는 악기로 자주 쓰였습니다. 그러나 알비노니의 오보에 협주곡에서는 이 악기가 단순한 오케스트라의 조연 역할로 두지 않았어요.
오보에는 현악 합주 위로 떠올라 마치 사람의 목소리처럼 선율을 이끌고, 곡 전체의 중심을 잡는 주인공으로 두었습니다. 알비노니는 오보에의 맑고도 약간 쓸쓸한 음색, 숨으로 밀어 올리는 인간적인 울림을 바로크 협주곡의 단정한 구조 안에 끌어 들었던 것 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알비노니는 흔히 「아다지오 G단조(Adagio in G minor)」의 작곡가로 기억되지만 그 곡은 알비노니의 순수한 원작이라기보다, 20세기 음악학자 레모 지아조토(Remo Giazotto)가 알비노니의 단편적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한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주를 이루죠. 그래서 알비노니의 실제 음악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의 오보에 협주곡과 기악 작품을 듣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특히 1722년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미셸샤를 르 센(Michel-Charles Le Cène)에 의해 출판된 「12개의 5성부 협주곡 Op.9(12 Concerti a cinque, Op.9)」은 알비노니의 기악 음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집입니다.
이 작품집에는 바이올린 협주곡, 오보에 협주곡, 두 대의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이 함께 들어 있으며, 오늘 감상하는 「오보에 협주곡 내림 나장조 Op.9 No.11」은 그중 네 곡의 오보에 협주곡 가운데 하나로, 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안 2세 에마누엘(Maximilian II Emanuel)에게 헌정되었답니다.
오후에 갈 창신동의 오래된 골목을 바라보며 느끼는 향수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듯, 알비노니의 협주곡은 수백 년 전 베네치아의 햇살을 오늘 걷는 길 위로 조용히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거창한 철학보다 삶의 순간순간을 채우는 독서의 즐거움, 불합격이라는 아픔 뒤에 남은 마음의 무게, 그리고 휴일에 다시 걸어보려는 작은 의지를 이 곡이 위로해주는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5YuoYX5gUr4?si=X0h38DJ7P0i2IVJX
1악장 Allegro — 햇살 아래 걸음을 여는 밝은 질서
밝고 경쾌하게 문을 엽니다. 현악 합주가 먼저 단정한 리듬을 세우면, 오보에가 그 위로 맑게 떠오릅니다. 이때 오보에는 음악의 중심에 서지만, 과장되게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현악기들이 만들어 놓은 길 위를 따라가면서도, 그 길을 자기 호흡으로 새롭게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내림 나장조, 곧 B플랫장조의 조성은 이 곡에 부드럽고 안정된 빛을 줍니다. 너무 날카롭지 않고, 너무 어둡지도 않습니다. 아침 햇살이 아직 한낮의 열기로 바뀌기 전, 눈부시지만 견딜 만한 밝기처럼 다가옵니다. 오보에의 음색은 그 밝기 속에서 조금 더 인간적인 온도를 만듭니다. 현악기의 반짝이는 질서가 도시의 길이라면, 오보에는 그 길을 걷는 사람의 숨소리처럼 들립니다.
이 악장에서 흥미로운 점은 음악이 빠르게 흐르면서도 조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로크 협주곡 특유의 반복되는 주제, 독주와 합주의 응답, 일정한 박동감이 음악을 앞으로 밀고 가지만, 그 안에는 균형이 있습니다. 그래서 듣는 이는 흥분보다 정돈된 생기를 먼저 느끼게 됩니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제각각이지만, 도시 전체는 하나의 리듬으로 깨어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오보에는 높은 음역에서 밝게 솟아오르다가도 곧 다시 현악기들과 어울립니다. 독주 악기가 지나치게 앞서 나가지 않는다는 점이 이 곡의 품위입니다. 알비노니의 음악은 화려함을 통해 감탄을 요구하기보다, 일정한 질서 속에서 아름다움이 어떻게 피어나는지를 조용히 보여줍니다.
2악장 Adagio — 잠시 멈추어 바라보는 오래된 골목의 시간
두번째 악장에 들어서면 음악의 공기가 바뀝니다. 앞선 악장의 밝은 걸음은 잠시 멈추고, 오보에는 더 길고 부드러운 선율을 노래합니다. 이 악장은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현악기는 크게 주장하지 않고, 오보에가 말할 수 있도록 조용한 바탕을 만듭니다.
여기서 오보에의 매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오보에는 사람의 목소리와 닮은 악기입니다. 플루트처럼 맑게 흘러가기만 하지도 않고, 클라리넷처럼 둥글게 감싸기만 하지도 않습니다. 약간의 떨림, 살짝 눌린 듯한 음색, 숨을 밀어 넣어야만 나오는 소리 때문에 오보에는 늘 인간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이 악장의 선율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오래 참아 온 마음이 천천히 말문을 여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아다지오는 슬픔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바로크 음악의 느린 악장이 자주 그러하듯, 감정은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절제 때문에 오히려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사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잠시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이 있습니다.
낙산공원에서 저녁 무렵 창신동을 내려다볼 때 느껴지는 감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 풍경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사람이 살았던 시간, 오래된 골목의 기억, 낮은 지붕 아래 쌓인 하루들이 있습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그런 풍경처럼 조용합니다. 듣는 이를 울리려고 애쓰지 않지만, 어느 순간 마음을 낮게 가라앉힙니다.
3악장 Allegro — 다시 걷게 하는 가벼운 생기
마지막 악장은 다시 밝은 움직임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1악장의 출발과는 조금 다릅니다. 1악장이 아침의 문을 여는 느낌이었다면, 3악장은 한 번 멈추어 숨을 고른 사람이 다시 걷기 시작하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오보에는 더 경쾌하게 움직이고, 현악기는 그 리듬을 받쳐 주며 음악 전체를 앞으로 이끕니다. 바로크 협주곡 특유의 생동감이 살아나지만, 여전히 알비노니 특유의 단정함은 유지됩니다. 격렬한 폭발보다는 균형 잡힌 활력입니다. 음악은 밝지만 가볍게 흩어지지 않고, 명료하게 정리된 선율과 리듬 속에서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습니다.
이 마지막 악장은 오늘 하루를 다시 살아보자는 말처럼 들립니다.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책 한 권 들고 걷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빵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조금 더 온전하게 보내보자는 마음입니다. 삶을 바꾸는 큰 결심보다, 하루를 지탱하는 작은 리듬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알비노니의 3악장은 바로 그런 리듬을 줍니다.
연주자 소개 — 앤서니 캠든, 런던 비르투오지, 존 조지아디스
이 연주는 런던 비르투오지(London Virtuosi)가 연주하고, 앤서니 캠든(Anthony Camden)이 오보에를 맡았으며, 존 조지아디스(John Georgiadis)가 지휘했습니다.
앤서니 캠든은 영국을 대표하는 오보이스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ondon Symphony Orchestra)의 수석 오보에 주자로 활동했고, 1972년에는 제임스 골웨이(James Galway), 존 조지아디스 등과 함께 런던 비르투오지를 창단했습니다.
존 조지아디스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리더를 지낸 인물입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그가 1972년 런던 비르투오지의 창단 멤버였으며, 오랜 기간 이 앙상블의 리더이자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고 설명합니다.
이 연주의 장점은 오보에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부풀리지 않는 데 있습니다. 앤서니 캠든의 오보에는 선명하지만 날카롭지 않고, 단정하지만 건조하지 않습니다. 런던 비르투오지의 현악은 알비노니의 바로크적 질서를 깔끔하게 받쳐 주며, 존 조지아디스의 지휘는 음악을 과장 없이 흐르게 합니다. 그래서 이 연주는 아침에 듣기에 좋습니다. 듣는 이를 압도하지 않고, 하루의 걸음을 정돈해 줍니다.
토마소 알비노니의 「오보에 협주곡 내림 나장조 Op.9 No.11」은 큰 비극이나 극적인 서사를 표현하는 음악은 아닙니다. 이 곡이 아름다운 이유는 오히려 작은 질서, 맑은 호흡, 절제된 밝음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오보에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선율을 밀어 올리고, 현악기는 그 소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조용히 받쳐 줍니다.
이른 아침의 햇살, 주일 산책길의 사람들, 등에 맺히는 땀, 책 한 권과 커피 한 잔, 낙산공원에서 내려다보는 창신동의 저녁 풍경. 이 모든 장면은 알비노니가 살았던 베네치아의 오래된 풍경을 상상하게 하고, 동시에 제가 어릴 적 놀던 시골 읍내의 풍경을 기억 속에서 다시 꺼내오게 합니다.
휴일인 오늘, 오래된 길을 따라 걸으며 다시 일주일을 살아갈 작은 에너지를 충전하려 합니다. 알비노니의 오보에는 그 길 위에서 너무 앞서가지 말라고, 그러나 멈추지도 말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밝지만 가볍지 않고, 단정하지만 차갑지 않은 음악입니다. 오늘 같은 주일 아침에 듣는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주는 음악으로 권해 드립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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