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2 Op.18
며칠 전 개봉한 영화 ‘휴민트’를 떠올리며 아침을 시작한다. 이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이 지승호 작가와 함께 쓴 책 ‘재미의 조건’에서 “영화는 협업의 예술”이라고 정의한 대목이 남아 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팀워크를 해치거나 관계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않겠다는 기준도 분명하다. ‘베테랑’, ‘밀수’ 같은 작품이 결국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는 뜻으로 읽혔다.
기업의 성장도 결국 협업 경영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성공이 불변의 원칙이 될 수 없듯이, 한때 회사를 키웠다는 이유만으로 지금과 미래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류 감독의 말처럼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구성원이 갑질로 느끼고 조직 분위기를 해친다면 과감히 쓰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는 그보다 경력은 짧을지 몰라도 더 참신하고 젊은 감성의 능력자들이 많다.
어제 아침, 클라이언트와 회의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더 거칠게 올라왔다. 기업 홍보전략이 이렇게까지 철저히 무시당할 수 있나 싶었다.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고, 불쾌했다. 반성을 하지 않는 당사자, “이 사람 없으면 안 된다”는 임원, 그 조합이 만들어내는 공기. 직원이 아닌 내가 봐도 악마 같아 보이는데,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더 심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 회사에 필요하다 해도, 회사의 이미지와 일하는 사람들의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서 악성 바이럴이 붙은 사람은 잠시 물러나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봄이 오면 겨우내 덮던 두꺼운 이불을 다음 겨울을 위해 잠시 농에 넣어두듯이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고 아침에 눈을 뜨니 머리가 무겁다. 계약만 아니라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두통으로 바뀌었다.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눌러가며, 씻고, 나갈 준비를 한다.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정말 무거운 아침이다.
Rachmaninoff :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III. Allegro scherzando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1900~1901년에 완성된 작품입니다. 1897년 교향곡 1번 초연 실패 이후 깊은 우울과 창작 중단을 겪던 라흐마니노프가, 신경과 의사 니콜라이 달(Nikolai Dahl)의 치료를 받으며 다시 작곡에 성공한 곡입니다. 그래서 이 협주곡은 단순한 낭만주의 명곡이 아니라, 한 작곡가가 다시 음악으로 돌아온 기록이기도 합니다. 초연은 1901년 모스크바에서 이루어졌고, 곧바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오늘은 이 곡의 3악장을 듣습니다. 1악장과 2악장은 밑에 붙여놓겠습니다.
https://youtu.be/Rq_MTH06-zY?si=aXZ3lr_8UfRuno_Q
3악장은 이전 두 악장의 정서를 한 번에 끌어올리는 피날레입니다. 템포는 빠르고, 리듬은 분명하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긴장 속에서 밀고 당깁니다.
도입부는 현악기의 경쾌한 동기로 시작합니다. 이어 피아노가 가볍지만 날렵하게 응답합니다. ‘scherzando’라는 말은 장난스럽게라는 뜻이지만, 이 악장은 가볍게 웃는 장난이 아니라, 속도와 긴장 속에서 생기는 역동성을 말합니다.
중간부에 이르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서정적인 선율이 등장합니다. 이 선율은 영화나 드라마 배경음악으로도 자주 쓰일 만큼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멜로디도 감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곧 리듬이 다시 힘을 얻고, 종결부로 향하면서 점점 각 악기들의 소리들이 밀도를 높입니다. 마지막 코다에서는 피아노의 옥타브 진행과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겹치며, 장중하게 곡을 마무리합니다.
조성: C단조로 시작하지만, 중간에 E장조 등으로 전조하며 밝은 빛을 잠시 비춥니다.
리듬: 2박자의 추진력이 중심이며, 피아노의 빠른 패시지와 당김음이 긴장을 만듭니다.
피아노 역할: 단순한 독주자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와 대등하게 경쟁하고 협력합니다.
코다: 반복되는 리듬 동기와 강한 화음이 승리감 있는 결말을 형성합니다.
이 악장은 연주자로서는 기술적으로도 까다롭다고 합니다. 빠른 아르페지오, 옥타브 연타, 넓은 도약이 계속되기 때문에 체력과 집중력이 동시에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Krystian Zimerman · Boston Symphony Orchestra · Seiji Ozawa 연주
지메르만의 연주는 역시 뛰어납니다. 속도는 충분히 빠르지만, 음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들립니다. 감정을 서서히 일으킵니다. 이를 위해 피아노 선율이 자연스럽게 가슴을 뚫고 갑니다.
오자와 세이지의 지휘는 오케스트라 연주의 음색을 단단하게 묶습니다. 특히 현악기의 응집력과 금관의 절제된 힘이 인상적입니다. 보스턴 심포니는 미국 오케스트라 특유의 맑은 음색을 유지하면서도, 러시아 낭만주의의 무게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 연주는 ‘격정’보다는 ‘집중’에 가깝습니다. 마지막 코다에서 피아노가 몰아칠 때도 흩어지지 않고, 끝까지 중심을 잡습니다. 그래서 이 3악장은 화려함을 넘어, 긴 시간을 지나 도달한 확신처럼 들립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이 협주곡을 통해 다시 무대에 섰던 것처럼, 3악장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듣는 이에게 단순한 낭만적 감동을 넘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감각을 남깁니다.
봄이 곁에 살며시 다가온 듯한 아침
오늘은 낮 최고기온이 16도까지 오른다는 예보처럼 아침 공기가 포근합니다. 봄이 바싹 다가온 느낌도 납니다. 그런데 몸의 온도와 상관없이 마음은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이 그러내요. 어제 하루 종일 쌓인 불쾌함이 잠을 설치게 만들고, 아침의 두통으로 맞이한 날입니다.
그래도 고객과 약속한 일을 해야 합니다. 샤워하고 현관문을 나서니 무거운 마음과 달래려는 듯, 아침공기가 나의 마음을 쓰다듬어줍니다. 오늘 감상할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3악장처럼 협업의 위대함을 느끼는 날이 되길 기대합니다.
봄이 곁에 살며시 다가온 듯한 아침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봄맞이 하는 행복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마침)
지난 글 : 1악장 https://blog.naver.com/mason_0354/224034062837
2악장 : https://blog.naver.com/mason_0354/223924242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