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소쇄원에서 만난 봄의 정령, 산수유꽃

[아침음악] Williams : The Sprig of Thyme

by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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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다. 저녁 무렵부터 시작된 비가 내일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다. 문득 지난 3일,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던 풍경이 떠오른다.


가볍게 흩날리는 빗속에도 광주 숙소에서 담양 소쇄원(瀟灑園)으로 향했다. 소쇄원 입구에 도착하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관광객이 적어 한적한 정원을 감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늘 이 산책이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되리라는 기대가 차올랐다. 차에서 내려 우산을 쓰고 소쇄원으로 향하는 길을 나섰다.


제월당(霽月堂) 앞에 다다르니 산수유가 살포시 피어나고 있었다. 약 천 년 전 구례로 시집온 여인이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가져왔다는 전설을 품은 꽃이다. 제월당 마루에 앉아 한참을 그 산수유꽃을 감상했다. 아무 생각 없이 감상한 시간은 내 뇌에게 준 힐링의 시간이었다. 빗방울을 머금은 산수유 꽃봉오리는 단아하고도 예뻤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가장 먼저 노란빛을 터뜨리는 그 모습에서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떠올린다.


얼마쯤 지났을까. 몇몇 관광객이 보여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 곳곳을 거닐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지만 정갈하게 보존된 정자들은 인공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정원 옆 대나무 숲길에 들어서자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대나무들이 마치 예술처럼 다가왔다. 그 찰나의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속에는 내가 그 대나무 숲과 마주하며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소쇄원이 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 속에 깃든 선비의 곧은 정신 때문일 것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 양산보(梁山甫)는 15세의 나이에 정암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그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그러나 스승이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뜨자 큰 충격을 받아 벼슬길의 무상함을 깨닫고 고향으로 은둔을 택했다. 이것이 17세의 양산보가 창암촌 계곡 속에 별서정원(別墅庭園)인 소쇄원을 꾸미게 된 계기였다.


그의 호가 소쇄옹(瀟灑翁)이었기에 이름 붙여진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원림과 더불어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정원이다. 오늘 저녁부터 다시 비가 내린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산수유가 예고한 봄이 본격적으로 우리 곁에 당도할 것이다. 쌀쌀한 찬 공기 속에 피어난 노란 산수유꽃이 유난히 생각나는 아침이다.


Vaughan Williams : The Sprig of Thyme

비 오기 전의 투명한 공기 속에서 본 윌리엄스(Vaughan Williams)가 길어 올린 영국의 민요 선율을 만납니다. 로이 더글라스(Roy Douglas)가 다듬은 관현악의 색채와 조지 글로젠(George Clausen)의 그림이 어우러진 찬란한 봄의 서사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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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윌리엄스(Vaughan Williams)는 영국의 민속 선율에 평생을 바친 작곡가였습니다. 이 곡은 본래 1949년 영국의 '전국여성학회연합(National Federation of Women's Institutes)'을 위해 쓰인 대규모 합창곡 <사계절의 민요(Folk Songs of the Four Seasons)> 중 일부입니다.


수백 명의 여성이 함께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민요의 향연은 1952년, 본 윌리엄스의 절친한 조력자이자 비서였던 로이 더글라스(Roy Douglas)에 의해 관현악 모음곡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본 윌리엄스는 위대한 음악가였지만, 동시에 지독한 '악필'로도 유명했습니다. 그의 자필 악보는 마치 폭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혼란스러웠다고 하죠. 로이 더글라스(Roy Douglas)는 이 해독 불가능한 원고를 인내심 있게 필사하고 정리하여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이 정갈한 관현악의 울림 뒤에는, 거장의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낸 로이 더글라스의 헌신적인 노력이 숨어 있습니다.

https://youtu.be/FkiGObp0-Qo?si=JjcxpUOxAOnadl5B

곡의 전개: 숲 속의 산책과 연인의 대화 - 곡은 마치 안개가 낀 새벽녘의 숲 속을 걷는 것처럼 시작됩니다.

[장면 1] 타임의 가지(The Sprig of Thyme): 타임(Thyme)은 영국의 전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허브입니다. 현악기의 부드러운 물결 위로 목관 악기들이 마치 숲 속의 풀잎들이 속삭이듯 선율을 주고받습니다. 순수하고 담백한 멜로디는 연인들이 풀밭에 앉아 나누는 소박한 대화처럼 다정하게 울려 퍼집니다.

[장면 2] 아침의 종다리(The Lark in the Morning): 곡의 후반부로 갈수록 분위기는 조금 더 생기를 띱니다. 아침을 알리는 종다리의 날갯짓처럼 목관 악기의 장식음들이 화사하게 피어오릅니다. [02:30] 부근부터는 마치 구름 사이로 햇살이 한 줄기 비치듯 오케스트라의 색채가 밝아지며, 본격적으로 봄을 맞이하는 기쁨을 노래합니다.


� 연주자 소개

연주: 로열 스코티시 내셔널 오케스트라(Royal Scottish National Orchestra)

지휘: 마틴 예이츠(Martin Yates) 영국 음악 해석에 탁월한 권위를 가진 마틴 예이츠와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악단이 만나, 영국 전원의 습한 공기와 싱그러운 흙 내음을 소리로 완벽하게 재현해 냈습니다.


� 영상 속 그림의 화가 소개: 조지 글로젠(Sir George Clausen, 1852~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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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 그림을 그린 조지 클로제는 영국의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그는 평생 동안 농촌의 일상과 빛의 변화를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농민들의 모습과 햇살이 머무는 풍경은 본 윌리엄스의 음악과 '전원적 서정성'이라는 완벽한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산수유가 건네는 경의(敬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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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瀟灑園)의 제월당(霽月堂) 마루에 앉아 마주했던 그 노란 등불은, 스승을 잃고 은둔을 택했던 양산보(梁山甫)의 시린 마음을 위로하던 빛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이 비 역시, 겨울의 잔재를 씻어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치르는 향기로운 세리머니(Ceremony) 일 것입니다.


비 내리는 날 산수유가 건넨 위로처럼, 본 윌리엄스(Vaughan Williams)의 선율이 여러분의 아침을 따뜻하게 감싸 안기를 바랍니다. 박노해 작가님은 그의 시 <산수유>에서 "한 해의 시작과 끝이 가장 긴 산수유 / 그 오랜 견딤, 끈질긴 투혼 앞에 내 경의의 마음을 바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꽃으로 시작을 알리고 열매로 끝을 지키는 그 끈질긴 생명력이, 찬 비를 뚫고 소쇄원을 향했던 우리의 발길 속에 이미 녹아들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 발걸음은 이미 그 자체로 봄의 한복판이었습니다. 곧 당도할 봄의 길목에선 오늘 아침은 흐리지만 마음이 편한 이유입니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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