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讀;感] 이청준 선생님의 단편 「불 머금은 항아리」

- 상처와 흉터의 스토리가 가진 가치

by 메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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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페이지가 넘는 단편소설이다. 읽는 내내 설채(設彩), 변비증(便秘症), 번조(燔造), 화목, 연전의 등 단어 때문에 네이버 사전을 여러 번 찾아가며 읽을 만큼 어렵다.


소설 시작 지점에 나오는 “자신의 생업에 대한 자포자기적인 회의와 저주 같은 것이 한데 얼룩진 독백을 그렇게 함부로 내갈겨놓은 사기장의 괴벽만 보아도 …”라는 문장은 여러 번 되풀이해 읽게 된다. 요즘 소설과 달리, 몇 번을 읽어야 이해가 따라오는 부분이 있다. 무엇이 ‘회의와 저주’인지, ‘얼룩진 독백’은 무엇을 말하는지, ‘사기장의 괴벽’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한동안 붙들고 생각하게 된다. 짧은 단편소설이지만 읽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사건의 시작은 ‘좌고 30cm 정도의 사기물 항아리, 모양은 둥글거나 타원형, 표면 색조는 순백 또는 유백색 백자항아리’에 새겨진 글씨, ‘이 항아리를 지닌 사람은 부자가 된다’라는 문구이다. 소설은 그 문구에서 시작한다.


항아리를 둘러싼 세 겹의 이야기

주인공 경섭은 이 항아리를 얻은 경위, 항아리를 빚은 사기장 어른에게 들은 사연, 항아리의 상처 또는 흉터라고 볼 수 있는 새겨진 글자, 사기장 어른이 왜 이 항아리를 도로 찾고 싶어 했는지에 대한 이유, 경섭이 왜 이 항아리를 사기장에게 되팔지 않고 간직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이야기로 풀어낸다.


경섭은 한 가발업체 사장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그 업체가 부도가 나서 무엇이라도 건질 양 사장 집에 가서 가져오게 된 것이 백자항아리이다. 그러나 ‘이 항아리를 지닌 사람은 부자가 된다’라고 새겨진 문구가 마음에 걸려 집 안 높은 곳에, 글자를 뒤로 돌려 보관해왔다. 그러다 이 항아리를 찾는 광고 문구를 통해 여주의 분매산 가마로 이 항아리를 들고 찾아가, 죽어가는 사기장 노인으로부터 사연을 듣는다.


그 사연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있었던 일이다. 사기장 이름은 용술이다. 용술이 아버지처럼 생활했던 스승으로부터 가마 일과 사기물을 만들어 내는 일을 배우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 시기는 스승이 죽기 얼마 전이기도 하다. 스승은 용술에게 불을 모른다는 등 타박만 하면서 가마를 열고 사기물을 대부분 깨부순다. 그러나 용술은 몇 개씩은 숨겨 마을에 팔아 식량과 의복을 얻으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깨진 그릇이나 깨버릴 물건이라도 있으면 갖고 싶다는 낯선 손님이 찾아온다. 손님은 물건은 필요 없으니 스승을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용술이 스승께 여쭈었으나 거절당한다. 어렵게 자리가 마련되고, 용술은 스승과 손님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용술은 스승이 자신에게 늘 부족하다고 꾸짖으며 가르친 진심을 알게 되고, 사기물을 만드는 일에 대한 마음과 스승의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손님은 가마를 여는 날까지 있겠다고 사정하여 그 자리에 함께 있게 된다. 손님은 용술이 만든 사기를 조금씩 숨겨 마을에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 간다는 얘기와, ‘이 항아리를 지닌 사람은 부자가 된다’라는 문구를 새긴 항아리도 있다는 말을 듣고 관심을 보인다. 가마가 열리고, 스승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가마에 구운 사기물들의 부족한 것이 보이기 시작한 용술은 그것들을 모조리 깨버린다.


이 일 이후, 스승은 하산하여 어느 상가집 창고에서 객사했다는 소식을 용술은 듣는다. 용술은 상을 치러 드리고, 시간이 흘러 장년이 된 나이에 예전에 찾아왔던 손님이 다시 찾아온다. 손님은 자신이 그 항아리를 찾아 어렵게 구매했다고 말한다. 용술은 그것을 자신에게 팔라고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리고 50여 년이 지난 뒤, 그 가마터에서 제자들이 용술이 죽기 전에 항아리를 찾아 드리자는 마음으로 광고를 하게 되고, 그 광고를 보고 경섭이 찾아온 것이다. 용술과 대화를 나눈 경섭은 그 항아리를 주지 않는다. 용술에게 그 항아리는 상처이고 흉터였기 때문이다. 용술은 그 항아리를 구하면 깨버릴 심산이었기 때문이다.


상처와 흉터 : 장인에겐 "수치", 소유한 자에겐 “가치”

누구에게는 가치가, 누구에게는 수치심이 된 항아리이다. 경섭에게는 항아리 자체보다 항아리에 얽힌 스토리가 탐이 났을 것이다. 1920년대라는 시간까지 얹어,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려 했던 장인의 마음 같은 이야기를 덧붙이면 더 빛날 가치가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소설은 이것을 경섭의 욕심이자 허영심이라고 표현한다.


손님은 물건 자체를 집착적으로 소유하려는 인물이라기보다, ‘사연’을 수집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흠결이 있는 물건이 아니라, 흠결에 붙는 이야기—그게 가격을 바꾸고, 의미를 바꾸고, 사람의 시선을 바꾼다.


용술에게 그 항아리는 ‘팔아야 할 물건’이 아니라, 스승의 엄격함과 자신의 부끄러움이 한데 굳어버린 흔적이다. 그래서 그는 죽기 전까지 그 항아리를 찾고, 찾으면 깨버릴 심산을 품는다. ‘흉터를 지우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흉터가 가짜 가치로 거래되는 것에 대한 혐오에 가깝게 읽히기도 한다.


경섭은, 소설이 말하는 바대로라면, 항아리를 돌려주지 않음으로써 그 사연을 더 값지고 자랑스럽게 꾸며 가치를 높이고 싶은 욕심과 허영심을 드러낸다. 이 소설에서는 경섭의 욕심을 지적하면서도, “이를 탓할 수만은 없다”는 결론 쪽으로 전개된다. 누군가의 상처가 시장의 가치로 환산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 환산 자체가 인간사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 그린 용술과 스승의 이야기는 우리가 다른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장인의 엄격함”이라는 형태로 여러 번 접해온 익숙한 스토리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익숙한 서사를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고, 거기에 장인의 상처에 대한 수치보다 그 상처에 붙어있는 스토리에 대한 가치를 얘기하는 듯 하다.


커뮤니케이션분야에서도 스토리는 가치를 높이는 작업


나는 대기업 홍보 일을 30여 년 해 왔다. 홍보거리, 말하자면 홍보할 수 있는 사건이나 기술, 또는 제품을 대할 때마다 항상 어떻게 스토리를 엮을지를 고민해 왔다. 그래야 그 사건이, 그 기술이, 그 제품이, 그 사람이 더 빛이 나고, 독자들의 머리에 더 깊이 새겨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겨진 이미지는 곧바로 회사의 이미지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후배들이 보도자료를 쓰면 사연이 있는지, 사건 전에 있었던 일, 인물이 살아온 삶 등을 취재하라고 말하곤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보도자료를 쓰면 더 가치가 있다고 가르친다. 그런 것들이 홍보인들이 하는 취재 과정이라고 강의하곤 한다.


역사 속 '상처'와 '흉터'가 이끄는 힘.

우리나라 역사가 큰 어려움이나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없었다면, 그저 성공한 국가였다면, 세계 각국이 우리나라를 부러워했을까.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과 민주국가의 모범 사례로 지금처럼 관심을 받았을까.


거란, 여진, 중국, 몽골,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의 수많은 침략에도 물리치고 극복해 단일민족으로 굳건히 지켜온 역사이기에 값어치가 크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한국을 연구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께서도 말이 안 되는 조건에서 승리해 조선을 지켰기에 역사상 큰 위인으로 존경받게 되었다.


동학운동,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3·1운동, 독립전쟁 등 국가가 무너질 때 국민들이 나서 지키려 했기에 독립을 이루었고, 독재정부도 4·19, 6·10항쟁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었다. 또한 2017년 박근혜정부의 비선 라인 정치 개입은 촛불혁명으로, 최근 12·3 내란 사태에도 탱크를 온몸으로 막아 빛의 혁명으로 이끈 국민들이 약해진 민주주의를 다시 굳건하게 만들었다. 세계에서도 유래 없는 일이며, 민주주의를 뿌리내린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가로 남았다.


역사 속에서도 '외세침략', '식민통치', '독재' 등의 상처와 허물이라는 스토리를 가지고, 다시는 상처와 흉터를 내지 않기 위한 방법을 찾아 발전해 나가는 것을 여러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선조들은 조선왕조실록 등에 그 상처와 흉터들을 숨김없이 기록했다. 우리는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재발과 재연을 막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고, 우리 역사는 그러한 힘이 민족의 역량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와 흉터가 있다고 무조건 가리기만 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상처와 흉터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해 온 우리 조상들의 삶의 역사도 함께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소설 속 용술에게 그 문구는 ‘지워야 할 흉터’였지만, 역사의 기록은 흉터를 덮기보다 남겨두려 했습니다. 물론 기록이 곧바로 반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록을 남겨두지 않으면 반복을 막을 근거조차 사라진다는 점에서, 기록은 상처를 ‘팔아먹기 위한 스토리’가 아니라 ‘다시 만들지 않기 위한 기준’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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