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hler - Symphony No. 5, Adagietto
변덕스러운 봄 아침, 잠시 내려간 마음의 스위치 앞에서 오래된 사랑과 그리움의 결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입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삽입된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에리히 라인스도르프(Erich Leinsdorf),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Boston Symphony Orchestra)의 연주와 함께 따라갑니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입니다. 하늘은 구름으로 무겁게 내려앉았고, 탁한 공기 속으로 황사주의보까지 들려오는 아침입니다. 이런 날이면 몸은 더 무거워집니다. 식사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이 감깁니다. 길게 자는 것도 아닙니다. 30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옆에서 말을 걸면 금방 눈을 뜹니다.
그런데도 아내가 “자는 거야?”라고 물으면 저는 괜히 “아니, 음악 듣고 있어”라고 답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정말 음악을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음악이 의식의 표면만이 아니라, 내가 미처 닿지 못하는 더 안쪽까지 흘러들어왔을 뿐입니다.
어제 기사에서 보았던 뇌간망양체(腦幹網樣體)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몸이 편안하고 움직임이 없으며 자극이 단조로우면, 뇌는 “지금은 쉬어도 된다”고 판단해 각성의 스위치를 잠시 내린다고 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나이가 들수록 그 스위치가 더 자주 내려오는 것 같아 문득 걱정도 듭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것이 꼭 쇠약의 신호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오래 달려온 몸이, 오래 긴장해온 마음이, 이제는 잠깐씩 스스로를 쉬게 하는 법을 아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말입니다.
바로 그런 아침에 떠오르는 곡이 있습니다.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입니다.
https://youtu.be/BaHm6d_aQyA?si=F6kO5t-udG0B0bje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5번(Symphony No. 5)」 가운데서도 이 4악장은 유난히 많은 사람의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단순합니다. 이 음악에는 사람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에만 들리는 결이 있기 때문입니다. 크게 흔들지도 않고, 소리 높여 외치지도 않는데, 듣고 나면 이상하게 오래 남습니다. 기쁜 날보다 오히려 흐린 날에 더 깊이 들어오고, 분주한 시간보다 잠깐 멈춘 시간에 더 또렷하게 들립니다.
이 악장이 특별한 이유는 편성에서부터 드러납니다. 금관과 타악이 빠지고, 오직 현악기와 하프(harp)만 남습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밀어붙이는 압도감 대신, 누군가가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조용히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분위기가 생깁니다. 그래서 이 음악은 화려함보다 체온으로 기억됩니다.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가운데서도 이 악장이 유난히 사람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러(Gustav Mahler)가 이 곡을 쓰던 1901년과 1902년은 그 자신의 삶에서도 의미심장한 시기였습니다. 그는 건강의 큰 위기를 겪으며 죽음 가까이까지 갔다가 돌아왔고, 바로 그 무렵 알마 쉰들러(Alma Schindler)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삶이 언제든 꺼질 수 있다는 감각과,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뜨거움이 한 시기에 겹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교향곡 5번(Symphony No. 5)」 전체는 처음부터 밝은 작품이 아닙니다.
장송행진곡으로 출발해 불안과 동요를 거치고, 그 한가운데서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가 마치 깊은 숨처럼 놓여 있습니다. 이 악장은 갑자기 떨어져 나온 아름다운 소품이 아니라, 흔들림을 오래 지나온 뒤에야 겨우 얻어낸 조용한 진심처럼 들립니다.
이 곡에 얽힌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말러(Gustav Mahler)가 이것을 알마 쉰들러(Alma Schindler)에게 보내는 말없는 연애편지처럼 썼다는 전승입니다.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해석이고, 지금도 많은 평론과 프로그램 노트(program note)에서 반복됩니다. 그것이 어디까지 확인된 사실인가를 따져 묻기보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믿어왔는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정말 누군가를 향해 어렵게 건네는 고백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고백은 환하게 웃으며 던지는 말이 아니라, 이미 상실과 유한함을 아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내미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그래서 더 아프게 남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이 우리 마음속에 남긴 음악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본 사람이라면 이 곡을 단지 “아름다운 클래식”으로만 기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 음악은 영화 속에서 배경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이 끝내 말로 설명하지 못한 감정의 결을 대신 짊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향해 끌리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고, 다가가면서도 어딘가에서는 이미 무너지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이 곡만큼 조용하고 선명하게 붙들어주는 음악도 드물 것입니다.
영화음악감독 조영욱씨는 인터뷰에서 이 곡이 시나리오 단계부터 정훈희씨의 「안개(Angae)」와 함께 이미 염두에 두고 있던 음악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원래는 한 번만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화면에 붙여보니 너무 잘 어울려 결국 세 번 쓰게 되었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또 이 곡이 이미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매우 강렬하게 사용된 전례가 있어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이 음악을 다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이 곡이 영화가 필요로 하는 감정의 깊이를 정확히 품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찬욱 감독 역시 이 곡에 대해 “대체할 만한 곡이 없었다”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말러(Gustav Mahler)의 「아다지에토(Adagietto)」는 단순히 사랑의 설렘만을 말하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끌림과 두려움, 열기와 예감, 사랑과 상실이 한꺼번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음악은 “사랑하고 있다”는 한 문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관계를 더 정확히 보여줍니다. 사랑이면서도 이미 그 안에 헤어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상태, 가까워질수록 더 위태로워지는 감정의 모양을 이 곡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젊을 때의 사랑은 대개 시작의 언어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오히려 기억의 언어로 남습니다. 설레며 다가온 감정이 가슴을 뜨겁게 하다가, 어느 순간 아프게 하고, 나중에는 그리움으로만 남게 되는 과정 말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그 과정을 오늘의 영화 언어로 다시 보여주었고, 말러(Gustav Mahler)의 「아다지에토(Adagietto)」는 그 감정을 백 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건너 그대로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이 곡은 더 이상 그저 아름다운 선율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한때는 분명 사랑이었으나, 시간이 흐른 뒤에는 기억과 상실의 얼굴로 다시 떠오르는 마음의 음악으로 들리게 됩니다.
하프(harp)는 맥박처럼 흐르고, 현악기는 끝내 다 하지 못한 말을 남깁니다
음악은 아주 낮은 저음의 현과 하프의 아르페지오로 시작됩니다. 이 하프 소리는 마치 멈추지 않는 심장 박동 같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 제1바이올린이 세상을 다 녹일 듯한 애잔한 선율을 얹습니다.
초입: 마치 조심스럽게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의 숨결 같습니다. 설렘보다는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깃든 느린 흐름입니다.
중반부: 멜로디는 점점 고조되며 가슴을 뜨겁게 달굽니다. 바이올린의 고음이 팽팽하게 당겨질 때, 독자들은 숨이 막히는 듯한 긴장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아름다운 노래가 아니라,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때 동반되는 통증을 닮아 있습니다.
종지부: 모든 감정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득한 그리움만 남습니다. 마지막 음이 길게 끌리며 사라질 때, 우리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각인'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곡에는 관악기도, 타악기도 없습니다. 오직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닮았다는 현악기들이 서로의 소리를 감싸 안으며 나아갑니다. 그래서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뇌간망양체의 스위치가 내려가듯, 세상의 소음은 차단되고 내면의 소리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고전적 우아함과 지적인 통제, 에리히 라인스도르프와 보스턴 심포니
오늘 감상하는 연주는 에리히 라인스도르프(Erich Leinsdorf)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녹음입니다. 말러의 해석에는 여러 학파가 있습니다. 번스타인이 감정을 폭발시키듯 연주한다면, 라인스도르프는 매우 지적이고 정교합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라인스도르프는 말러의 음악이 가진 구조적 완벽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보스턴 심포니 특유의 화려하고 매끄러운 현악 앙상블을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이 '아다지에토'에서 그는 감정과잉에 빠지지 않습니다. 냉정할 정도로 정돈된 템포 속에서 피어오르는 슬픔은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마치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들이 겉으로는 침착해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치고 있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봄날의 선잠 끝에 마주하는 위로
봄이라서 그런가요. 아니면 나이가 들어 그런 걸까요. 식사를 하고 나면 잠깐씩 눈이 감기고, 음악을 듣다가도 몸이 먼저 쉬자고 말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런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잠깐씩 스위치를 내려야 비로소 들리는 것들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러(Gustav Mahler)의 「아다지에토(Adagietto)」는 바로 그런 순간에 잘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사람을 번쩍 깨우는 음악이 아니라, 지나온 마음을 조용히 다시 만져보게 하는 음악입니다. 사랑했던 기억, 뜨거웠던 시간, 아팠던 끝, 다 지나간 줄 알았는데도 아직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그리움. 그런 것들이 이 곡 안에서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사랑이 끝나도 감정의 울림까지 함께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음악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합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탁한 봄 아침에 이 곡을 듣는 일은 단지 클래식 한 곡을 감상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아직 남아 있는 마음의 속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설레며 왔다가, 가슴을 뜨겁게 하다가, 아프게 하고, 끝내는 그리워하게 만드는 그 마음. 말러(Gustav Mahler)는 그것을 이 한 악장 안에 남겨두었습니다.
비록 누군가를 다시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때의 내 마음이 진짜였다는 사실만은 이 음악과 함께 다시 믿어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흐린 봄 아침은 조금 덜 흐리게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마침)
#말러 #GustavMahler #교향곡5번 #SymphonyNo5 #아다지에토 #Adagietto #헤어질결심OST #박찬욱 #조영욱 #ErichLeinsdorf #BostonSymphonyOrchestra #클래식음악추천 #영화속클래식추천 #아침음악 #아침에세이 #음악에세이 #클래식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