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기

90년대 생

by 솟이네 책장

퇴근길, 앞사람이 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나는 자연스럽게 따라가려 했지만, 문은 금세 세차게 닫히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적으로 한 발 물러서며 생각했다. 문 하나를 잡아주는 것조차 사라져 버린 이 삭막한 풍경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건 아닐까?

나는 90년대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났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따뜻하고 생기 넘쳤다.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날이면, 아침부터 고무 딱지와 학종이를 들고 뛰쳐나갔다. 문방구 앞은 이미 북적북적했고, 한쪽에서는 딱지를 내려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학종이를 따느라 바빴다. 대왕 딱지를 자랑하는 애도 있었고, 넘어가지 않는 딱지를 힘껏 내려치기도 했고, 구경꾼들은 작은 딱지를 구걸하기도 했다. 미니카를 들고 온 형들을 보며 "무슨 모터를 쓰길래 저렇게 빠를까?" 하고 동경했고, 내 것이 아닌 미니카에도 감정을 이입하며 마치 우리는 챔피언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된 듯 응원했다.

주말이면 롤러블레이드를 신고 YMCA로 향했다. 수업이 뭐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았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롤러블레이드를 신고 건물을 놀이터 삼아 돌아다녔고, 집으로 돌아올 땐 발이 무겁고 아파도 웃으며 걸었다.

탑블레이드가 유행하면서 친구들과 “쓰리, 투, 원, 고우 슛!”을 외쳤다. 더 길어진 줄칼을 힘껏 당기며 청룡이든 백호든 힘내라며 기합을 넣었고, 디지몬 다마고치는 패턴이 있다며 버튼을 순서대로 누르며 싸웠다. 가끔은 내 다마고치가 진화를 못하고 그대로여서 속상하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놀이는 더욱 거칠어졌다. 정글짐에서는 술래잡기하기 바빴고, 놀이기구 위에서는 눈감은 술래가 기구에 매달린 원숭이들을 잡기 바쁜 탈출 놀이가 한창이었다. 원심분리기에서는 떨어지지 않으려 버티는 친구들과 떨어뜨리려는 친구들의 대결이 펼쳐졌다.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서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저 뛰어다니며 웃고 떠들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쉬는 시간에는 로봇 변신 필통을 가진 친구는 인기를 독차지했고, 그다음 인기는 축구 경기가 가능한 필통을 가진 친구의 몫이었다. 필통이 없는 친구들을 종이에 자신의 상상력을 첨가한 그림을 그려놓고 연필을 휘저으며 랜덤 뽑기 게임을 했다. 2교시면 흰 우유를 들고 오는 당번이 있었고, 네스퀵이나 제티를 들고 오는 친구들은 2교시만큼은 로봇필통 친구보다 큰 인기를 누렸다. 매주 금요일이면 맛 이상한 불소를 했었고, 친구들과 함께 화장실 앞에서 오물오물 기다리곤 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면 실내화 주머니를 발로 차며 집으로 향했다. 가끔은 집 열쇠를 깜빡해 옆집 벨을 스스럼없이 눌렀고 당연하다는 듯이 날 반겨주셨다. 함께 옆집 가족과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숫기 없던 나도 옆집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으니, 그때는 사람들이 참 다정했던 것 같다. 뒤늦게 돌아온 엄마는 어디 갔었냐며 나한테 물어보곤 옆집에 반찬을 전하며 감사함을 표했다.

주말이면 사촌들과 모여 게임팩에 바람 불어가며 슈퍼마리오를 했고, 밤이 깊도록 웃으며 놀았다. 야광별이 가득한 천장을 보며 나누던 대화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웃음소리는 아직도 귀에 맴도는 듯하다. 다음 날이면 2천 원을 손에 쥐고 형을 따라 PC방에 갔다. 나는 디아블로 2와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형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고, 옆자리 아저씨는 그런 나에게 주사위를 굴려주면 과자를 사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인간 매크로가 되어 리니지 캐릭터의 스텟이 4/4 나올 때까지 주사위를 굴리며 과자를 얻었다.

고학년이 되면서 컴퓨터와 인터넷이 익숙해졌다. 네이트온과 버디버디를 접속해 친구들과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고, 소리바다에서 최신 곡을 담아 듣다가 메이플스토리, 겟앰프드, 건즈 같은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빠져 듬에 문화상품권을 얻기 위해 우린 많은 일들을 했다. 친구 교회를 따라가고, 학원을 따라가며 문화상품권을 위해선 늦잠 자던 내가 아침같이 일어나곤 했다. 문화 상품권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친구들과 함께하면 무엇이든 재밌었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가며 즐길 거리를 만들었다. 게임도 실컷 하고 돌아오면, 아직 오지 않은 부모님을 친구들과 기다리며 깡통차기도 했었고 이웃집 벨튀도 하면서 극강의 스릴을 즐기며 보냈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을 땐 하나둘씩 핸드폰이 생겨났고, 미니게임천국 점수 자랑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네이트라도 잘못 누르는 순간 다급하게 종료버튼을 누르기도 했고, 월 초에 알이 부족하다며 알을 구걸하는 친구들도 보였다. 싸이월드를 꾸미는 친구들도 생겨났고 일촌 맺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별명을 붙여주는 재미로 둘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공부한다고 야자실에 갇혀 0교시부터 12교시까지 강행군을 하기도 했다. 전자사전으로 이상한 단어를 발음시켜도 보고, 인터넷 강의가 유명해져 PMP에 받아와 공부하기도 했다. 석식 먹고 난 이후엔 경찰과 도둑을 하기도 하고, 축구를 하면서 넘쳐나는 에너지를 소모하기 바빴다.

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의 생각을 키워오는 시기에서 남과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모든 이야기 들에 친구들이 있었고, 함께 놀았고, 즐겼다. 친구들과 한껏 싸우더라도 그건 나와 내 친구의 일이었고, 내가 맞고 와도 부모님은 심하지 않았다면 넘어갔다. 친구들과 옆동네 놀러 가기도 했고, 산에 가서 땅 파고 놀기도 했다.

그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가까웠다. 친구와는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놀았고, 이웃집과는 자연스럽게 정을 나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어느 순간부터 변했는진 모르겠다. 어린아이들이 나의 어린 시절처럼 지내는 것 같지도 않고, 그 시절의 우리들이 지금도 그러지도 않는 거 같다. 그래서 시대가 변한 것인지, 내가 나이가 들었기에 어른이 되었기에 생각이 바뀐 것인지,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바뀐 건 확실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철저하게 계산적이다. 인간관계에도 이해득실이 따르고, 자연스러운 만남보다는 필요에 의해 연결되는 관계가 많아졌다.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말이다. 서로를 향한 관심과 배려는 점점 희미해지고, 개인주의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사회는 빠르게 변했고,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정신없이 달려왔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고, 남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졌다. SNS에서는 누구나 멋진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남들이 여행을 가면 나도 가야 할 것 같고, 명품을 사면 나도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평가하며 초조해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지쳐간다.

직장에서는 인간관계가 피곤하고, 일상에서는 감정 노동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힘들어 보여도 쉽게 말을 건네지 못하고, 거리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봐도 "괜히 엮이지 말자"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각자의 울타리 안에 갇혀버린 걸까?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연결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서로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을까? 카페에서 마주 앉아도 휴대폰만 바라보고, 대화는 줄고, 감정은 이모티콘으로 표현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단절되고, 관계는 더 피상적으로 변해간다. 문 하나를 잡아주는 작은 배려조차 사라진 사회에서, 우리는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다.

하지만,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어쩌면 작은 변화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문을 한번 더 잡아주고, 길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가까운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것부터.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또 다른 배려를 낳고, 그렇게 하나씩 쌓여가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서로가 조금 더 따뜻한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봤다. 이번엔, 내가 문을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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