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7화 에필로그
거리마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린 성탄절에 신랑과 사춘기 소년이 독감으로 몸져 누었다. 죽을 끓여서 먹이고 열을 재보고 약을 챙겨주고 나니 금세 오후가 되었다. 심심해서 TV 채널을 돌리다가 [사랑의 불시착]이 하길래 마침 안 봤던 드라마라 보게 됐다.
그런 날이 있다. 읽던 책이나 보고 있는 영상에서 나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문장이나 대사를 만나게 되는 날. 이 날이 딱 그런 날이었다.
나는 '죽고 싶다'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는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이 둘의 차이가 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스스로 죽진 않겠지만 당장 죽어도 상관은 없다.'라는 마음이다. 난 죽음과 삶에 대해 수동적이었고 비겁했다.
- 브런치북 '나는 마녀싸이코다' 마지막 이야기 中
20대부터 띄엄띄엄 쓴 일기장을 보면 해마다 '살고 싶지 않다'라는 말이 빠짐없이 적혀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살고 싶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다. '죽고 싶다'라고 적지 않는 걸 보면 죽을 생각은 없는 것 같아서 '살고 싶지 않다'를 '스스로 죽진 않겠지만 죽어도 상관없다'라고 여겼다.
그런데 [사랑의 불시착] 7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살고 싶지 않다'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몇 년 전에 스위스에 간 적이 있어.
그때 난 살고 싶지 않았거든.
이왕이면 경치 좋은 데서 마지막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
그런데 여행하면서 깨달았지.
살기 싫을 뿐 죽고 싶은 건 아니라는 거.
그냥 난 위로가 필요했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삶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아도 된다고 살아야만 한다고 누가 말해줬음 좋겠더라.
그런데 그때 그 대답처럼 그 음악이 들렸어.
살아도 된다고 꼭 살아내라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어.
일기장 속 '살고 싶지 않아'의 앞엔 항상 이 단어가 함께 있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항상 내 삶을, 나를, 내가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하고 미워했다. 나는 어쩌면 누군가에게 "그렇게 살아도 돼."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이 음악을 듣고 '살아도 된다고, 살아야만 된다고, 꼭 살아내라고' 위로받은 것처럼 나는 내가 나에게 '너 그렇게 살아도 돼, 잘 살지 않아도 그냥 살면 돼, 살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Q. 당신을 가장 잘 표현해 준 TV 속 대사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