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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

이소라의 슈퍼마켙 1화

by 마싸 Jan 07. 2025


지난달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만남이 있다. 바로 이소라의 프로그램 첫 게스트로 신동엽이 출연하기로 한 것.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우리 세대들에게 그 두 사람은 세기의 커플이고 그들의 헤어짐에도 수많은 루머가 생겨났을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들이 23년이란 세월을 지나 다시 만난다고 하니 이제 우리나라도 할리우드처럼 되는 것이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설렘과 긴장감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기다렸고 그들의 만남은 생각했던 것만큼 어른스러웠고 멋지고 감동적이었다.



사진 출처 : 이소라의 슈퍼마켙사진 출처 : 이소라의 슈퍼마켙



"난 널 만나고 싶었어. 언젠가는 만날 거라고 생각을 했고 지금 만나야 될 때라고 생각을 했어."라고 이소라가 말했을 때 어떤 한 친구가 생각났다.



"내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페이지를 기록하고 있는 게 너를 만났을 때니까. 그때 순간 순간들은 되게 나한테 소중한.."이라고 신동엽이 말했을 때 그 친구와 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건 2001년, 20살 여름 방학에 호프집 알바를 하고 있을 때였다. 친구와 둘이 손님으로 왔던 그 애가 계산을 하고 나가면서 나에게 쪽지를 주었다. 그 쪽지를 계기로 친해진 우리는 사귀게 되었는데 3일쯤 지났을 때 (첫 데이트도 하기 전) 전화가 와서는 사귀기로 한 건 없었던 일로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인즉슨, 첫사랑에게 연락이 왔는데 사귀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아니 첫사랑과 다시 만나기로 했다는 것도 아니고 이유가 황당하긴 했지만 나도 깊이 좋아한 건 아니어서 쿨하게 "그러자. 그럼 우린 친구 하자"라고 말했다.



그 뒤로 우린 좋은 술메이트가 되었고 서로의 엄청난 진상 주사를 주고받으며 점점 돈독해졌다. 그 시절 우리의 방황은 참 길었다. 난 그노무 첫사랑과의 질긴 인연의 과정과 끝을 지켜봤고 그 앤 술만 마시면 꺼이꺼이 울던 내 곁을 묵묵히 지켜주었다. 9년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첫 만남은 가벼웠지만 함께 한 시간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친구가 한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우린 같은 극의 자석 같다."


"응? 무슨 소리고?"

"내가 다가가면 니는 멀어지고, 니가 다가오면 나는 멀어지고. 늘 같은 거리를 유지하잖아."

 


그 친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이 놀랍기도 하고 우리 사이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표현이라 피식 웃음이 났다. 사랑과 우정 그 사이 어디쯤에서 늘 같은 거리를 유지한 채 친구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만날 수 있었던 정확한 이유였다. 그 애의 여자친구를 소개받은 추운 겨울 어느 날 집으로 걸어가면서 훌쩍였던 날이 생각났고 그 친구의 깊어진 눈을 애써 외면했던 날도 생각났다.




2009년 늦가을 나는 지금의 신랑을 만났다. 그동안의 연애와 썸과는 달리 진지한 만남이었다. 신랑의 지인과 술자리를 가진 날 취기가 오른 것 같아 먼저 집에 가겠다며 나와서는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술 한 잔 더 하자며 니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말하는 순간 뒤에서 신랑이 "누구 만나는데?"라고 말하며 서있었다. 걱정이 되어 따라나왔던 것이다. 신랑은 내가 남자와 단 둘이 술 먹는 건 절대 안 된다던 사람이라 걸리면 큰일 날 것 같은 마음과 취기가 콜라보해서 그 순간 핸드폰을 바닥에 던지고 밟아버렸다. (이건 나의 기억이고 신랑은 내가 손으로 핸드폰을 반으로 쪼갰다고 했다. 신랑의 기억력이 좋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다음 날 신랑과 커플폰을 하기로 하고 스마트폰을 새로 사면서 번호가 바뀌었고 (스마트폰이 막 나오기 시작한 때였다) 당시에는 번호를 옮겨주는 기술이 없어서(있어도 핸드폰이 완전 망가졌다) 그렇게 그 친구와 연락이 끊겼다. 






이소라와 신동엽처럼 과거의 인연을 만날 수 있다면 난 3일의 연인이자 9년의 친구였던 그 애를 만나고 싶다. 그동안 잘 살았냐? 결혼은 했고? 아이는 몇 명이야? 연락 끊기고 왜 내 안 찾았노? 낸 싸이월드 쪽지 보냈는데 섭섭하다!라며 묻고 싶다. 그리고 진상 같은 주사 다 받아주고, 힘들어서 울고 있을 때 쪽팔리다며 도망가지 않고 옆에 있어줘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도 너를 만났던 때는 내 인생의 굉장히 중요한 페이지였고 순간순간 소중한 시간들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Q. 과거의 연인들 중 딱 한 시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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