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않는 사람
4학년쯤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비가 왔다. 갑작스레 내린 비였기에 당연히 우산이 없었다. 엄마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 우산을 들고 자녀를 데리러 온 엄마들 사이로 비를 맞으며 교문을 벗어났다. 가게를 봐야 하는 엄마는 나를 데리러 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알아도 서러운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저벅저벅 걸어가던 그때 우산을 든 한 남자가 다가왔다. “비 맞으면 우야노~ 이리 와서 같이 쓰자.”라고 다정히 말하며 우산을 씌어주었다. 엄마가 데리러 온 아이들을 보며 내심 속이 상했고 비까지 맞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따듯한 배려가 정말 고마웠다.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 후 그와 함께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걸었다.
함께 걸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우산 안으로 더 가까이 들어오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어 자기 쪽으로 당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내가 비에 맞지 않았으면 하는 순수한 친절이라 생각했다. 가볍게 목례하고 그의 손에 이끌려 우산 안으로 더 들어갔다. 그러자 어깨에 올려져 있던 손이 쓱 미끄러져 내려오더니 어깨동무를 한 모습으로 그의 팔꿈치는 내 어깨에 그의 손은 내 가슴 앞에 멈췄다. 따뜻한 친절이 공포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나의 젖꼭지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서워서 얼굴도 쳐다볼 수 없었다. 내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아서였을까? 툭--툭--이 툭툭툭툭으로 바뀌었다. 굴욕감이 치밀어 올랐지만 몸이 얼어 붙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산 밖으로 뛰쳐나가지도 못하고 바닥만 보고 걷다가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도망쳤다.
당시엔 너무 어렸고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손모가지를 꺾고 정강이를 발로 차 줄 텐데.
처음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왜 당하고만 있었는지, 처음 그가 손을 댔을 때 왜 바로 우산 밖으로 뛰쳐나오지 않았는지 화가 났다.
‘내가 당해주었기 때문에 그 파렴치한은 ‘이게 되는구나’하고 생각했을 거야. 그래서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는 여자아이에게 또 같은 짓을 하고야 말 거야.’ 이런 생각에 내가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화가 났다.
시간이 지나 나에게 더 이상 화낼 거리가 없어졌을 땐 그런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지 화가 났다. 급기야 나중에는 비 오는 날 우산도 없는데 왜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아서 그런 일을 당하게 했는지 엄마에게도 화가 났다. 그리고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자꾸 엉뚱한 곳에 화가 나는지도 화가 났다.
화를 내다 내다 무엇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지도 희미해졌을 무렵 난 낯선 사람의 선의도, 대가 없는 친절도 믿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읽었다. 평소 여행이 주는 장점이 뭐길래 사람들이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이십여 년 전 그가 발리를 혼자 여행하고 있는데 한 현지인이 다가왔다고 한다. 그 현지인은 그 일대를 구경시켜 주겠다며 오토바이 뒤에 타라고 했고, 그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현지인은 자신의 가족에게도 그를 데려가고 인근 사원에서 열리는 힌두교 종교 행사에도 데려갔다. 하루 종일 일반 관광객은 쉽게 볼 수 없는 곳들로만 구경시켜 주었다고 한다. 약간의 사례비를 건네긴 했지만, 김영하 작가가 느낀 건 환대였다고 말했다. 현지인을 온전히 믿었기에 그 신뢰가 환대로 돌아왔다고.
난 이 글을 읽고 ‘와~ 낭만적이다.’기 보다 뒷골이 서늘했다. 누군가에겐 낯선 곳에서 낯선 이를 통해 느낀 낭만적인 여행 이야기겠지만, 난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낭만을 느끼려 낯선 사람을 따라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난 신뢰로 얻는 환대는 평생 느껴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환대 받지 못하고 낭만적인 여행을 못해도 난 절대로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