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사람
국민학교 2학년 봄 소풍이었다. 부산 영도에 사는 국민학생의 소풍 장소는 으레 태종대에 있는 자유랜드였다. 나는 그날 바이킹을 처음 탔다. "붕~ 붕~" 소리를 내며 흔들리던 바이킹이 점점 높아지더니 내 몸이 땅과 수평을 이루었고, 바닥이 보였다. 최고 높이에서 내려갈 때 심장이 목구멍에 올라왔다가 배꼽까지 툭 떨어지는 느낌이 처음엔 낯설고 무서웠지만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재밌다고 생각했다. 소리를 지르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조금 우쭐하기도 했다. 반대편이 올라가고 내가 앉은 곳이 바닥에 누운 것처럼 내려왔을 때 보이는 하늘은 맑고 예뻤다. 바이킹이 멈추고 함께 탔던 같은 반 친구들과 출구로 나왔다. 입가의 옅은 미소를 띠며 담임 선생님이 어디 계시는지 주변을 돌아보다 울고 있는 한 아이를 보았다.
"선생님, ㅇㅇ이 울어요." 그 아이 곁에 있던 한 아이가 선생님을 큰 소리로 불렀다. 어디선가 슈퍼맨처럼 달려온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이고 안아주며 눈물을 닦아 주었다. 몇몇 반 아이들도 그 아이를 빙 둘러싸고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며 달래주었다.
'왜 울지? 재밌기만 하던데...'
나는 울고 있는 그 아이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이킹이 눈물 날 정도로 무서웠는지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선생님과 반 아이들에게 관심받는 그 아이가 부러웠다.
‘바이킹을 타고 나선 재밌어하면 안 되고 울어야 관심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난 그 자리에 서서 안 나오는 눈물을 흘리려 애썼다. 슬픈 기억을 떠올려 보고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 눌러도 보았다. 겨우겨우 눈물 한 방울을 짜내고 주변을 둘러봤을 땐 이미 선생님과 친구들은 다른 곳으로 가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날의 나를 기억한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고 무안했다. 수치심이라는 단어는 더 커서 알게 되었지만 그건 수치심이었다. 관심받기 위해 눈물을 흘렸던 게 부끄러웠냐고? 아니. 관심받고 싶어서 억지 눈물까지 흘렸는데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존재감 없는 내가 한없이 서러웠고 슬펐다.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던 아이. 존재감은 미약한데 받고 싶은 관심의 크기는 컸던 아이.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애매한 불행이다.
관심받고 싶다는 욕망은 천성적으로 내성적이고 내향적이었던 나를 변하게 했다. 나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법을 하나하나 터득해 갔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더 많이 말하고 더 과장되게 행동하고 더 재밌는 표정을 지었다. 모인 사람 모두의 표정과 행동을 지켜보며 상황에 맞는 웃긴 말을 했다. 함께 아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모사하며 분위기를 돋우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난 언제 어디서나 ‘재밌는 사람’이라는 존재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난 종종 바이킹 앞에서 거짓 눈물을 흘렸던 그날의 기분이 되곤 한다.
회식 2차로 반드시 노래방을 가던 시절이었다. 반주가 나오는 동안 한 손엔 탬버린을, 한 손엔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을 등지고 선다. 한 다리로 무게를 지탱하고 다른 한 다리로는 박자를 맞추며 몸을 가볍게 흔든다.
“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
첫 소절이 시작되면 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 탬버린을 흔들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모두 나를 쳐다보고 활짝 웃으며 손뼉을 치고 환호를 한다. 신이 난 나는 더 열심히 탬버린을 흔들고 춤을 추며 노래한다. 1절이 끝난 후 쿨하게 반주를 끄고 자리에 앉는 순간 난 바이킹 앞의 아이가 되어 있다.
지금 받는 관심과 사랑은 억지로 만들어 낸 ‘가짜 나’의 것이라는 것, 진짜 나의 모습을 안다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것, 내가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거라는 것, 그리고 ‘재밌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모든 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부럽다. 내가 무언가를 해야만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도 여전히 싫다. 그래도 노래가 나오면 자동으로 춤을 추고, 1초의 정적도 허락지 않으려 쉴 새 없이 떠들고,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안달 나고, 사람들이 나로 인해 즐거워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사람들 속에서 함께 즐겁게 지낸 후 혼자가 되었을 때 바이킹 앞에서 억지 눈물을 흘리던 그때의 아이가 되기도 하겠지. 난 계속 이렇게 살아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