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휴가차 떠난 여행 내내 숙소에 콕 박혀있었다. 쉼이 필요했기도 했고 돌아다니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 덕에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여행기간 5일 동안 정주행 했다. 덕분에 처음으로 넷플릭스에 가입도 해보고, 드라마 정주행이라는 것도 처음 해봐서 성취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그래도 우리 여행에서 '나의 아저씨'가 남았네." 할 정도였다. 이 드라마는 총 16회로 구성되어 있었다. 1회부터 3회까지는 내내 마음이 힘들어서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를 잘 보지 못하는 남편은 5회까지는 보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를 모두 본 후에는 그 고비를 넘기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던 세상의 이야기였고, 그만큼 반드시 알고 지나가야 하는 이야기였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속에 떠올랐던 한 인물이 있었다. 소설「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요」의 주인공 차경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아저씨'의 지안과 '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요'의 차경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소설「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요」는 문학잡지 릿터 2020년 6/7월호에 수록된 강진아 작가의 단편소설이다.
차경은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이 소설은 차경이 윤기옥이라는 친구의 제안으로 위조지폐를 만들면서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어느 날, 등교 중인 차경은 어른들의 생소한 모습을 보게 된다. 5만 원짜리 신권을 무척 신기하게 또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하고 있는 어른들이다. 소설은 차경이 그런 어른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데에서 시작한다. 본인과 관련 없는 신권보다 지금 당장 익혀두어야 하는 영어 숙어가 중요하다. 차경은 어른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다. "차갑기만 하던 어른들의 갑작스러운 해맑음에 비위가 상한다."
차경은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중이다. 중학교 때나 쓸법한 값싼 붓의 모가 꺾인 것을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은 저녁을 거르고 그 돈으로 붓을 사야겠다"라고 말이다.
소설에서 가장 처음으로 등장하는 어른은 차경의 미술 선생님이다. 그는 차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렇게 말한다. "기초수급 확인증, 왜 자꾸 안 챙겨?" 할머니가 깜빡하셨다는 차경의 답에 그는 "니 앞가림은 니가 해야지"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차경의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다시 갈길을 간다.
이 소설은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새로 태어난 돈'을 신기해하던 당시의 풍경을 그린다. 천진난만한 어른들의 반응과 대조적인 차경의 무관심은 '신기해할' 여유도 가지지 못하는 차경의 처지를 암시한다. 차경은 5만 원권의 색감 표현에 대하여 속으로 감탄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에게 '부러워할' 여유도 없는 것이다. 어른들은 먹고사는데 크게 상관이 없는 '신권 발행' 소식은 대단하게 반겨하고 신기해한다.
반면에 당장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아주 차갑게 군다. 물론 차경에게는 크게 서운할 문제는 아니었겠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남 탓과 징징거림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몹시도 섭섭하게 느껴졌다. '말을 저렇게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또는 왜 내 신세는 이모양일까?' 나라면 했을 법한 한탄을 차경은 하지 않는다. 정말 "그래. 내 앞가림은 내가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듯하다.
미술 선생의 '기초수급 확인증' 타령 후 차경 앞에 윤기옥이 나타난다. 기옥은 자신의 집에 차경을 초대한다. 기옥의 집에 도착한 차경은 기옥의 집을 조심스레 둘러본다. 차경의 모습이 "습관처럼 고개를 숙이고 눈만 치켜떠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본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기옥은 "용돈 씀씀이가 헤퍼 집에서 주의를 받은 터에 과외비 50만 원을 가방 사는 데 써 버렸다"라고 한다. 차경에게 5만 원권을 위조해주라고 부탁하고, 50만 원을 약속받는다. 차경은 50만 원짜리 가방이 있다는 것에 속으로 놀랐다. 그러나 놀란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다가는 어느새 50만 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떠올린다. "50만 원이면 당장 급한 실기 재료를 사고도 남는다. … 맞다, 쌀도 생리대도 휴지도."
결국 차경은 기옥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야무진 솜씨를 활용해 지폐 위조에 성공한다. 윤기옥은 오랫동안 괴롭혀왔던 친구 혜미를 이용한다. 혜미에게 대신 계산하라며 위조지폐를 주고 기옥 대신 사용하게 만든다. 그렇게 5만 원권을 만원, 천 원권 등의 현금으로 교환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차경은 택시 등에서 직접 지폐를 교환하는 방식을 택한다.
어느새 기옥과 차경은 각자 100만 원씩 쓰게 되고, 기옥은 한 번만 더 만들자고 차경을 설득한다. 기옥과의 실랑이 중 차경은 이런 생각을 한다.
"평소 뭐든 대충 하는 기옥이 이럴 때만은 철저하다. 자신이 감정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면 놓치지 않고 상대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차경은 물리적이거나 금전적인 피해만 아니면 피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기옥의 요구가 매번 놀랍다."
차경의 말을 통해서 두 주인공의 극명한 차이를 알 수 있다.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기옥은 '서운함', '속상함', '부모님에게 혼나는 것'등 감정적인 공격이나 피해를 가장 두려워한다. 반면 차경은 물리적이나 금전적인 피해만이 진짜 피해라고 생각한다. 차경은 마음의 상처를 아파하고 서운해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결핍되는 부분이 가장 큰 약점이기 마련이다. 기옥에게는 감정적인 공감의 부재, 차경에게는 금전적인 여유의 부재가 각자의 약점으로 작용한다.
기옥에게도 뭔가 내면의 상처가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살만하니까 저러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바빠서 본인의 감정을 바라볼 여유가 없는 차경이 안쓰러워졌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기옥이 지폐 교환을 위해 이용한 혜미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화방 주인이 지폐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챘고, 기옥과 차경이 도망치는 걸 얼결에 따라가다가 사고를 당한다.
위급 상황을 맞닥뜨린 기옥과 차경은 이 부분에서도 대조적인 반응을 보인다. 기옥은 소설의 처음부터 그랬듯이 끝까지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본인의 일을 해결하려 한다. 반면에, 차경은 뭐든지 혼자 해내려 한다. 소설 초반 미술 선생의 "니 앞가림은 네가 해야지" 했던 말이 복선인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기옥은 위조지폐 제작도, 사용도 직접 하지 않았다. 혜미가 사고를 당한 상황에서 차경과 기옥은 다리를 다친다. 기옥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나타난다. 차경은 치마에 묻은 피를 침을 묻혀 직접 닦아 낸다.
차경은 기옥에게 혜미 사고에 대한 알리바이를 맞추자고 제안한다. 이에 기옥은 "넌 끝까지 네 생각만 하는구나?"하고 갑자기 혜미가 세상 소중해진 듯 군다. 차경은 기옥의 이야기에 이렇게 생각한다.
나 말고 내 생각을 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세상은 네 편이지 내 편이 아닌데? 속으로만 쏘아붙이느라 차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p.17)
놀랍게도 기옥은 차경에게 "난 니가 괜찮은 애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이다, 정말." 하고 자리를 떠난다. 차경은 기옥의 말에 이렇게 생각한다.
차경은 기옥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실망? 지금 실망을 할 만큼 쟤한테는 여유가 있구나. 실망씩이나 할 여유가.(p.17)
본인의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차경은 위조지폐 관련 기사를 찾아본다. 지폐 위조로 잡힌 중학생은 왜 가짜 돈을 만들었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요.
이후 기옥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차경은 대학에 본인의 힘으로 합격한다. 이제 그녀는 수백만 원짜리 등록금 고지서를 들고 있다.
여러 차례 반복된 것과 같이 소설 속 차경은 "질투에 응할 여유가 없고, 서운해할 여유, 실망할 여유, 다른 사람을 생각해 줄 여유가 없다"라고 표현된다. 먹고사는 것이 1순위인 그녀가 앞두고 있는 20대는 차경에게 어떤 시간이 될까.
그녀는 힘들어할 여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
차경의 20대는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 지안과 아주 많이 닮아있기도, 아주 많이 다르기도 하다.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은 드라마 초반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정면으로 응시하는 장면은 물론 거의 없다. 1화에서 지안의 대사는 거의 없었다. 그녀는 차경이 그랬던 것처럼 "습관처럼 고개를 숙이고 눈만 치켜떠" 사람을 쳐다보고 눈치를 살핀다.
파견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는 종일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는다. 목소리 한번 내지 않고 영수증을 붙이고 복사를 한다. 거의 바닥과 책상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일에 몰두한다.
지안은 혼자 고민하고 대부분 혼자 결정한다. 할머니의 요양원 비가 잔뜩 밀린 탓에 할머니를 침대째로 탈출시킨다. 요양원 비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이자를 꼬박 갚는데도 대부 업체의 '나쁜 놈'은 지안을 찾아와 괴롭힌다. 지안의 집에 무단 침입하고 지안을 때리기도 한다. 지안은 경찰에 불법 채심으로 신고하지도 않는다. "왜 맞고만 있냐"는 친구의 말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렇게 지안은 묻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습관처럼 고개를 숙이고 눈만 치켜뜬" 채로 하루를 버겁게 살아간다. 스스로를 학대하는 듯한 시간들로 잔뜩 채워나간다. 뺏으면 뺏기고 때리면 맞으면서 보낸다.
「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요」의 차경은 거지 냄새가 난다고 떠들어대는 친구들에게 응대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런 질투에 일일이 응대할 여유"가 없다고 할 뿐이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괄시를 받던 그녀는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공부에 집중하고, 상대가 주는 상처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덮어놓고 무시하고 지나간다.
이지안 역시 회사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교감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루에 할 일만 끝내고 퇴근할 뿐 퇴근 이후의 시간을 공유하지 않는다. 회사 내의 소문에 직원들이 동요하더라도 지안만은 움직임 없이 영수증에 풀질을 계속한다. 감정의 동요에 동참하지 않고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반면에 이 둘은 점차 밝은 곳으로 가는 지안과 어두운 곳을 향하는 듯한 차경으로 나뉜다.
지안은 박동훈 부장이라는 키다리 아저씨를 통해서 "처음 살아봤음"을 느낀다. 드라마 후반으로 가면서 말이 없고 고개를 숙이던 지안에서 웃기도 하고 감정도 표현하는 지안으로 변한다. 회사에서는 회식도 참여하고 야근도 함께 하기 시작한다. 기꺼이 '남의 일'에 깊숙이 관여하고 본인을 희생하기까지 한다.
지안은 어른들에게 겪었던 상처를 또 다른 어른들의 밝은 모습, 따뜻한 모습, 감사한 모습으로 덮는다.
반면 아쉽게도 차경에게 어른들은 아직 '나의 합격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사기꾼의 딸이라고 나도 사기꾼일 거라 단정 짓는 사람', '가난하다고 무시하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부정적인 어른들의 모습이 더 나은 모습으로 대체되지 않은 채 소설은 마무리된다. 차경은 이제 더 비싼 '어른이 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수백만 원의 등록금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차경의 사정을 알고 있을 선생님조차 기초 수급자인 차경에게 입학금 고지서를 충당할 수는 있는지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보호받아야 할 학생에게 마땅히 선생님이 보여줘야 하는 친절함이나 따뜻한 안내는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으로 마무리가 되는 이 소설「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요」의 뒷 이야기가 몹시 궁금한 이유다.
차경은 40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어떻게 충당했을까. 고리 대출을 받아 지안과 같이 무한반복 빚잔치를 하게 될까. 입학을 포기하게 될까. 필요한 만큼의 위조지폐를 더 만들어서 결국 전과를 가지게 될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인생은 노력하기 나름"이라는 것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 같다. 애초에 시작점이 달랐던 지안과 차경과 같은 아이들에게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게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또 나는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며 누려왔던 것들에 대해 얼마나 감사해하고 있는가.
한 지인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소름 끼치는 건 말이야,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가잖아? 그러면 무의식적으로 그나마 내 상황은 괜찮구나. 하고 안도감을 느낀데. 다른 사람의 힘든 상황에 비하면 나는 나은 거구나. 한다는 거지."
20대에 들었던 지인의 말은 내가 "사람은 참 무서운 존재구나." 하고 생각하게 했다. 나는 절대 타인의 불행에 '안도감'을 느끼지 않을 거라 장담했다.
30대 중반인 지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안과 차경의 이야기는 나에게 '안도감'을 선물했다. "그래. 나는 저 상황에 비하면 아주 행복한 거야. 감사하자." 드라마를 보는 내내, 소설을 읽는 내내 이렇게 생각했다. "마음 아프고 힘들어할 여유가 있다는 것은 그나마 행복한 거구나."
이 드라마와 소설이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아마 "지금까지의 나는 힘들어할 여유가 있었던 거구나. 평범한 게 가장 행복한 거구나.", 그리고 "혼자 해낼 수 있는 것은 없다"가 아닐까 싶다.
나는 무엇보다 내가 모르고 있는 세상에 관심을 가져볼 용기를 얻게 되었다. '마주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누군가의 시간을 들여다볼 용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