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이래도 나 사랑해줄 거야?

[성격의 탄생 2] 극한직업, 그녀의 남편

by mamang


결혼 1주년을 맞이했다. 우리는 함께 쏜살같은 시간을 지나왔다. '함께' 시간을 보내왔다고 하니 뭔가 옆구리가 든든하다. 더불어 서로의 진정한 아군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1년 전, 우리는 함께 살 집의 가구와 가전제품을 골랐다. 고심한 끝에 귀엽고 정성스러운 결혼식을 준비했다. 함께 멀리까지 신혼여행도 다녀왔고, 일상에 복귀했다. 함께 출근 준비를 하고 함께 지하철 역에서 만나 퇴근을 했다. 대부분의 평일은 절어있는 채로, 대부분의 주말을 퍼져있는 채로 민낯을 공유하는 날들이 늘었다.


피로함과 불편함을 몰래 각자의 집에 숨겨놓고 뽀송한 모습만 봐왔던 연애 때와는 몹시 달랐다. '신혼'은 듣기만 해도 배가 간지럽고 반짝거렸다. 신혼 생활의 당사자들은 정작 일상의 절어있음에 달달 신혼을 실감하지 못한다. 실상은 빈정 상함과 눈치 보임과 뭔지 모를 억울함이 뒤섞인 공동생활이었으니까. 그래도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일상을 정리해보거나 돌이켜보면 재미있게 귀엽고 웃겼다.


나는 그렇게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던 신혼일기를 홀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낯가림이 심한 남편이 나에게 민원을 제기했다. "왜 내 허락 없이 나의 이야기를 쓰는 거지?" 내가 대답한다. "이렇게 써두지 않으면 기억하기 어려울 거 아니야. 우리의 딱 한 번뿐인 신혼이잖아."


"칫" 하며 남편은 하던 일을 마저 했고, 그 후 별다른 민원이 없었다는 것으로 나는 무언의 허락이었다고 마음대로 결론을 내린다.


지난 주였던 결혼 1주년이 지나자, 이제 신혼이 아닌 것인가 하는 애매함에 봉착했다. 신혼의 경계란 본래 몹시 모호한 것인가. "아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신혼이지" 했던 회사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신혼 중의 신혼인지라 두드러기와 코로나에 뺏겨버린 듯한 신혼을 조금 더 즐겨도 되지 않을까 안도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조금 더 시간을 번 나는 언젠가는 신혼일기에서 살짝 임신 일기와 육아일기로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걱정도 주로 미리 당겨하는 그녀이기 때문에 기대를 미리 당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신혼일기 이후에도 써 내려갈 수 있는 소재들이 많다는 기대와 함께 내가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우선 앞선다. 여전히 걱정이 많은 나이기 때문에 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쓸데없이 생각이 너무 많고 예민한 나는 조그만 문제도 마음속으로 크게 부풀려버리는 게 문제다. 부풀린 오해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의 탓으로 돌리다 보니 남편이 나중에는 나에게 질려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아주 심각하게 걱정이 된다.


예를 들면 상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상황을 크게 오해해버린다. 나중에는 상대방이 크게 상처를 받게 되고 결국 나는 상처를 줬다는 죄책감을 크게 갖게 된다. 남편과 나와의 다툼은 대부분 이런 패턴을 가진다.


가장 최근의 다툼은 결혼 1주년 당일에 일어났다. 결혼 1주년을 앞두고 남편을 나를 위해 평일이라 미리 챙겨줄 수 없는 선물을 챙겨주었다. 얼마 남지 않은 용돈도 탈탈 털어가며 나를 위해 사용했다. 나는 감계가 무량했다. 그리고 "지난 제주도 여행으로 결혼 1주년은 모두 축하한 게 아니냐"며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기념일 당일, 기념일 축하는 미리 했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는 '식사'와 '대화'면 되겠다 하고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30분 늦게 귀가했지만 손에는 크고 예쁜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남편의 시점에서 그날 저녁의 일과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성실한 남편은 그날 유난히 힘들고 피곤했다. 회의도 많았고 현장에도 많이 가야 해서 퇴근도 조금 늦었다. 그래도 오늘은 기념일이니 그녀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풍성한 꽃다발을 준비했다. 퇴근길에 꽃집에 들렀다가 오느라 평소보다 귀가는 더 늦어졌고 그는 더 피곤해졌지만 그녀가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꽃을 받고 너무 좋아했다. 그는 원래 파스타를 만들어주기로 했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음식을 배달해서 먹어도 되는지 그녀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녀는 당연히 괜찮다며 음식을 미리 시켜놓았다. 그녀는 식탁에서 식사하자고 했으나, 그는 "우리 평소 하던 대로 거실 테이블에서 먹자"라고 했다. 그들은 티브이를 시청하면서 신나게 웃었고 식사도 너무 즐겁게 마무리되었다. 그는 그날 업무가 너무 많아 아주 피곤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와 한참 티브이를 보았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소파에서 잠들었다. 소파에서 잠들뻔한 그에게 그녀는 "오빠 방에 가서 자요" 했다. 침대에 누워 자려고 했던 그는 그녀가 울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너무 피곤한 그는 연거푸 그녀에게 사과를 했고, 결국 그는 그녀의 서운함을 풀어주느라 새벽 1시가 넘어서도 잠에 들지 못했다.


여기에서 그녀는 도대체 왜 울었던 것일까?


그녀는 "마주 보고 식사를 하고 충분한 대화를 하는 것"이라는 결혼기념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기념일을 위해 정성을 들였던 다른 것들은 까맣게 잊고 "그녀가 원했던 몇 가지"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미 충족되지 못한 아주 작은 요인들을 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로 확대 해석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불행한 여자"로 만들기 이르렀다.


다행히도 성실한 남편과 결혼한 그녀는 차분히 상황을 들어주고 설명해주는 남편 덕분에 눈물을 그치고 잠에 든다.


만약 그녀가 이 사실을 성실한 그에게 미리 알려줬다면 어땠을까. 성실한 그는 누구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꼭 지켜주려고 노력했을 텐데. 결국 성실한 그는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울게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그녀대로 나는 왜 매번 이렇게 상황을 망쳐버리는 걸까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 성격을 진단해본 것처럼 그의 성격도 살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나를 이해해주는 만큼 나도 그를 더 잘 이해한다면 앞으로의 결혼 생활이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무엇보다 반복되는 나의 오해와 남편의 속상함의 빈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남편에게 성격 진단에 응해주길 예의 바르게 요청한다. '대니얼 네틀'의 책 '성격의 탄생' 31페이지에 있는 12개의 질문에 그는 성실하게 응답했다.


나는 나의 성격진단 결과보다 남편의 결과를 받아 든 후 이 성격진단에 대한 신뢰가 더 높아졌다. 사실 그녀는 "우리가 얼마나 다를까" 자체가 궁금했던 반면, 결과지는 "그가 나와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변명해주었다. 그와 그녀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그녀의 결과 [신경성=친화성](높음) > [성실성=개방성](중상) > [외향성](중간)

- 그의 결과 [성실성](높음) > [신경성](중간) > [친화성=개방성](중하) > [외향성](낮음)


그녀는 걱정을 미리 앞당겨하는 신경성이 가장 높았다. 그는 성실성 부분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성이 높은 그녀는 자주 삐졌고, 남편의 "또 삐졌어?" 하는 말에 또 더 화가 났다. 성실성이 높은 그는 꾸준히 그녀를 설득했고 화를 받아주었다. 걱정을 미리 당겨서 하는 그녀는 자주 많은 오해를 만들었고 그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을 자주 힘들어 하지만 곧 마음의 균형을 찾는다. 성실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차분하게 오해를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하필 신경성이 높은 나와 결혼한 성실성이 높은 남편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연애 중 마음의 안정을 주는 이런 남자는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내가 먼저 프러포즈를 하면서 "행복하게 해 줄게" "내가 예쁜 껌딱지가 돼줄게"라고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가 나에게 어떻게 해주는가, 나에게 사랑을 충분하게 주고 있는가. 하는 계산적인 마음으로 남편을 대했던 것 같다.


나의 초심을 되찾기 위해 결혼식 때 내가 그를 위해 준비했던 편지를 다시 읽어봤다. 괜한 오해로 이 성실한 남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로, 나의 마음속 나쁜 생각들을 혼자 부풀리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연애 초반에 오빠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하길래 내가 "그럼 나를 키워" 했던 게 정말 현실이 된 것 같아서 너무 신기해 ㅋㅋㅋ 오빠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 사람과 어떻게 될까. 이다음은 어떨까? 이런 궁금한 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우리가 된 것 같아. 예전의 오빠와 또 그때의 나도 서로의 마음에 쏙 들었지만 지금 오빠와 함께 두 해를 보내온 지금의 나는 무척이나 스스로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 있어. 지난 2년 6개월여의 시간 동안 기분에 따라 감정이 들쑥날쑥하고 몸무게도 들쑥날쑥한 내 옆에서 나를 항상 예뻐해 줘서 고마워. 항상 모든 게 그냥 괜찮았던 내가 불편함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내가 혼자 부당한 일을 감수하면 안 된다고 알려줘서 고마워.(물론 그래서 오빠가 지금 더 피곤해졌지만 ㅋㅋ) 그 모든 걸 감수하고서도 내가 상처 안 받는 방법을 찾아가게 도와줘서 내가 더 행복해진 것 같아. 그래서 요즘은 불안할 만큼 정말 딱 좋은 것 같아. 이게 다 오빠 덕분이야. 내 남자 친구, 내 애인, 이제 내 배우자 OOO 님. 항상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 신랑에게 신부가 보내는 편지(2019.09.22.)


연애 초반, 당시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은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준다. "마망아 누가 너한테 부당한 걸 요구하거나 마망이만 손해 보게 만들면 그걸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 당당하게." "친구들이 기분 나쁘게 하면 기분 나쁘다고 바로 말하고. 다 받아줄 필요 없어."


이런 충고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던 마망이는 이렇게 말한다. "오빠 근데 그거 알아? 예전에 백성들에게 한글을 만들어 배포하자고 하는 세종대왕님의 명에 신하들이 이렇게 말했데. '전하.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되면 다스리기가 어려워집니다.' 내가 이런 걸 알게 되면 오빠도 더 피곤 해질 텐데. 내가 오빠에게도 이거 기분 나빠, 이렇게 하지 마. 나를 존중해줘! 하면 오빠가 피곤해지는 거잖아. 근데 왜 알려주는 거야?"


남편은 본인이 나중에 얼마나 피곤해질 줄을 몰랐던 것 같다. 당시 남편은 이 말을 듣고 씩 웃기만 했다.


남편.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제가 초심을 되찾겠습니다! 앞으로 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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