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 '굿라이프(by 최인철)'
굿라이프란 좋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삶이다. 좋은 기분, 삶에 대한 만족, 삶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좋은 프레임은 우리 삶에 품격을 더해준다.
인간은 모두 이론가다. 이론가답게 우리는 각자의 이론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에 관한 자신의 이론이 각자의 행복을 만들어간다.
삶에 대한 만족 자체가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고 삶의 고요를 경험하는 상태가 행복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들이 마치 서로 다른 것인 양 생각하고 행복을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행복에 대한 이런 경계와 의심은 사실 우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정의를 허용하지 않는 다중적이고 애매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이해는 그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름을 통해 그 대상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면 그 대상의 이름이 적절한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남의 시선과 기대에 연연하지 않고 내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삶의 자세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언제가 마음이 만족스럽다. 그 만족의 상태를 자겸(自謙)이라고 한다. 겸(謙)은 만족스러운 것이다.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만족스러운 상태를 바로 쾌족(快足)이라 한다.(박재희 박사 칼럼)
행복을 쾌족으로 이해하게 되면, 행복한 감정이란 외따로 존재하는 개별적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다양한 감정 모두를 지칭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행복한 삶이란 가슴에 관심 있는 것 하나쯤 담고 사는 삶이다.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이 주는 중압감과 애매함에 비추어볼 때, '나에게 관심 있는 대상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실제적이고 실천적이며 명확하다.
나는 행복한가? = 나는 무언가에 관심이 있는가?
영감이란 보통의 인간에게서는 쉽게 기대되지 않는 성취나 행동을 목격했을 때 우러나는 고취의 감정이다.
우리는 영감과 행복을 별개로 취급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감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행복이라는 또 다른 정서를 누려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영감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탁월함을 경험하고, 감사를 통해 자기와 연결된 타인들과 자연 그리고 신을 인식하게 되며, 경외감을 통해 자기보다 더 거대한 존재들을 느끼게 된다.
행복, 즉 쾌족의 상태는 고통의 완전한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행복한 감정 상태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긍정적인 감정들의 상대적인 비율로 측정된다. 부정적인 감정 경험보다 긍정적인 감정 경험이 더 많을 때를 행복한 상태라고 이야기할 뿐이지, 부정적인 감정 경험이 전혀 없어야만 행복하다고 결코 정의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