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담론

인생은 드라이브

[나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 '굿라이프(by 최인철)'

by mamang


대학 2학년 병아리 시절, 동아리 선배 하나가 학교에 차를 가지고 왔다. 그때의 나는 아빠처럼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이 되어야 운전을 잘할 수 있는 거로 생각했다. 내 또래의 사람이 차를 운전한다는 것이 영 미덥지 않을 때였다. 선배는 동아리 방에 있던 몇몇 후배들에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드라이브 갈 사람!" 드라이브고 뭐고 잘 모르겠고 일단 차를 태워준다고 하니 너도, 나도 벌떡 일어났다. 선배는 드라이브하면서 먹자며 아이스크림도 인원수에 맞춰 사줬다.


미덥지 않았던 내 우려와는 달리 차는 제법 안정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우리 대학은 30분이면 교외로 거뜬히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었고, 그 시간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을 터였다.


차를 얻어탄 나는 한 손에 내 몫의 아이스크림을 꼭 쥐고 한참을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물었다. "마망아 아이스크림 안 먹어?" 내가 창밖에서 눈길을 거두고 친구들을 바라보니 너도 나도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뜯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응? 아이스크림은 어디 도착해서 먹는 거 아니었어?" 친구들이 낄낄거리며 놀리듯 말했다. "아 마망이 뭐야. 드라이브 처음 해봐? 드라이브하면서 아이스크림 먹으려고 사 온 거잖아. 킥킥킥" "아. 나는 목적지가 있을 때 말고는 차를 안 타봤어. 학교 가려고 차를 얻어탄다거나, 친척 집에 가는 길이라거나. 킥킥킥" 친구 중 하나가 말했다. "드라이브에 그런 게 어딨어. 아이스크림 녹는다니까?"


그렇게 나는 첫 드라이브를 경험했다. 창밖을 보며 먹는 아이스크림은 참 달고 맛있었다.




"행복하냐?" 매번 이렇게 묻는 또 다른 선배가 있었다. 알고 보니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는 게 선배의 말버릇이었다. 싫어하는 사람은 끝까지 싫어하고 그 싫어하는 사람이 옆에 지나가면 냄새도 맡기 싫어서 숨도 안 쉰다는 그 선배는 나를 마주치기만 하면 이렇게 물었다.


"무슨 헛소리야." 나중에 선배와 친해진 내가 이렇게 말했다. "행복이고 나발이고 지금 그거 따질 때야? 오빠 철 좀 들어라." 취업 준비로 예민했던 내가 선배에게 쏘아붙였다. 선배와 마찬가지로 싫어하는 사람이 옆에 지나가면 숨도 안 쉬는 나는 선배가 행복에 대해 왜 묻고 다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와 비슷하기도 참 다르기도 한 유난한 성격이구나 생각했다.



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 나는 부쩍 자주 행복에 대해 궁금해한다.

행복이 뭘까. 나는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행복과 영영 평행선 위를 걷고 있는 건 아닐까. 내 목적지인 행복이라는 곳은 어디쯤 있을까. 행복에 대해 정말 많은 궁금증과 의문이 생겨나는 요즘 '굿라이프'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책에도 적절한 시기와 인연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굿라이프'의 저자 최인철은 '굿라이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굿라이프란 좋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삶이다. 좋은 기분, 삶에 대한 만족, 삶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좋은 프레임은 우리 삶에 품격을 더해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좋은 프레임을 갖게 되는 것. 그게 바로 굿라이프.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의 라이프가 굿라이프인지 곰곰 생각해보던 중 나는 뜻밖의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주로 타인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친구가 공부를 잘하면 나도 잘하고 싶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친구가 날씬하고 예쁘면 나도 예뻐지고 날씬해지고 싶었다. 예쁜 친구가 행복해 보였다. 친구가 직업을 갖고 돈을 벌게 되니 나도 내 직업을 꿈꾸게 되었다. 친구가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친구들 덕분에 해낸 일이 참 많아."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해왔다.


옆에 있는 누군가에 비해 부족한 나의 점을 채우고 타인이 가진 '행복의 모양'을 흉내 내면서 30년 이상을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정작 내가 무엇을 할 때 기쁜지, 내가 꿈꾸는 행복의 모양은 무엇인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어디에서부터 바로잡아야 내가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조바심이 느껴졌다.


인간은 모두 이론가다. 이론가답게 우리는 각자의 이론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에 관한 자신의 이론이 각자의 행복을 만들어간다.


미취학 아동일 때에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에는 중학생이 되면, 중학생 때에는 고등학생이 되면, 고등학생 때는 대학생이 되면 행복할 것 같았다. 현재라는 미완의 상태를 완성의 상태로 만들려면 계속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해서 해내야 했고 두각을 나타내고 뭔가를 이뤄내야만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보니 직장인이 되어야 진짜 사람 구실을 하게 된다고 믿게 되었다. 그 후 직장인이 되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결혼을 해야, 결혼한 후에는 아이를 낳아야 진짜 어른이 되는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삶에 대한 만족 자체가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고 삶의 고요를 경험하는 상태가 행복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들이 마치 서로 다른 것인 양 생각하고 행복을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행복에 대한 이런 경계와 의심은 사실 우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정의를 허용하지 않는 다중적이고 애매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것들에 '행복'이라고 이름 붙여 꿈꿔왔을까. '행복'이란 어떤 의미일까.


토요일 아침에 푹 잔 후 알람 없이 눈이 떠지는 순간. 오늘이 출근이라는 걸 해내지 않아도 되는 주말 아침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 그 순간. 햇살과 바람이 좋은 주말 아침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앉아 커피를 마시는 순간.


이런 두루뭉술한 순간들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행복을 정의하기에 앞서 우리가 붙인 그 '행복'이라는 이름이 올바른 것인지부터 살펴보자고 말한다.


어떤 대상에 대한 이해는 그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름을 통해 그 대상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면 그 대상의 이름이 적절한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행복 : 우연히 찾아오는 복, 주관적인 안녕감


저자는 '행복'이 뜻하는 기존의 정의를 벗어나 '행복'을 다른 단어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의 시선과 기대에 연연하지 않고 내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삶의 자세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언제가 마음이 만족스럽다. 그 만족의 상태를 자겸(自謙)이라고 한다. 겸(謙)은 만족스러운 것이다.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만족스러운 상태를 바로 쾌족(快足)이라 한다.(박재희 박사 칼럼)


행복은 우연히 찾아오는 파랑새와 같은 행운도 아니고, 나를 만족시켜야 하는 조건이 부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을 쾌족으로 이해하게 되면, 행복한 감정이란 외따로 존재하는 개별적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다양한 감정 모두를 지칭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행복하다는 것은 내가 어떤 감정을 느껴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행복한 삶에 대해 PANAS(일정 기간 동안 한 개인이 경험한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의 정도를 측정하는 도구다.) 감정 목록 중 몇 가지로 정의내린다.


관심 있는(interested)

행복한 삶이란 가슴에 관심 있는 것 하나쯤 담고 사는 삶이다.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이 주는 중압감과 애매함에 비추어볼 때, '나에게 관심 있는 대상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실제적이고 실천적이며 명확하다.
나는 행복한가? = 나는 무언가에 관심이 있는가?


영감 받는(inspired)

영감이란 보통의 인간에게서는 쉽게 기대되지 않는 성취나 행동을 목격했을 때 우러나는 고취의 감정이다.
우리는 영감과 행복을 별개로 취급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감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행복이라는 또 다른 정서를 누려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감사(gratitude), 경외감(awe)

영감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탁월함을 경험하고, 감사를 통해 자기와 연결된 타인들과 자연 그리고 신을 인식하게 되며, 경외감을 통해 자기보다 더 거대한 존재들을 느끼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다양한 종류의 행복에 관해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도 나는 신기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이미 다양한 행복을 경험하고 있는 요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을 졸이던 조바심이 스르륵 느슨해졌다.


'마음을 찝찝하게 만드는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는 휴가 중인 부자의 마음'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이미지는 이러하다. 우선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고민거리, 예를 들면 가족, 돈, 직장 등에 대한 걱정이 모두 해결되어야 하는 상태. 고로 지금의 내가 아주 오랫동안 공을 들여야 이를 수 있는 경지 아닐까 하는 상상을 아주 자주 해왔다.


나의 이런 행복의 정의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 즉 쾌족의 상태는 고통의 완전한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행복한 감정 상태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긍정적인 감정들의 상대적인 비율로 측정된다. 부정적인 감정 경험보다 긍정적인 감정 경험이 더 많을 때를 행복한 상태라고 이야기할 뿐이지, 부정적인 감정 경험이 전혀 없어야만 행복하다고 결코 정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까.




행복을 자꾸만 미뤄왔던 십여 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참고 버티고 인내하고, 나중에 언젠가는 좋은게 오겠지. 어쨌든 지금은 행복해야할 때보다 나중에 올 행복과 비슷한 것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행복이라는 것을 만끽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나는 그럴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마치 안전하고 완벽한 도착지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시간을 기다리며 손에 아이스크림을 꼭 쥐고 있던 나의 첫 드라이브처럼 말이다.


나에게 자꾸만 "행복하냐"고 물어줬던 선배가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지금이 바로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될 때이며, 지금이 바로 행복해도 될 때라는 사실을 네가 깨닫게 되길 바란다고 말이다.


행복을 미루지 않고 바로 행복을 알아봐 주는 것. 완벽한 파랑새뿐 아니라 지금 나에게 있는 귀여운 병아리도 충분히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행복하냐"고 불시에 물어오는 누군가에게 "당연하지. 나는 쾌족한 상태라오. 당신은 어떠시오? Thank you and you?" 하고 질문을 되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다음에 이어질 글에서는 굿라이프의 저자가 행복과 유전에 대한 우리의 오해부터 바로잡아주는 이야기부터 함께 하고자 한다. 돌아오는 한주동안 내 옆에 항상 있어왔던 다양한 행복의 모양을 놓치지 않고 만끽해보는 연습을 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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