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잔소리 대장이다. 주로 꼼꼼한 편인 남편과 주로 헐렁한 편인 내가 만났으니 업무분장이 자연스레 나뉘었는데 그 결과 남편이 우리 집 군기반장을 겸하고 있다.
나는 평소 큰 소비보다는 작은 소비가 많아 주머니가 줄줄 새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결혼한 후에도 나는 자주 마카롱도 사주라. 과자도 사주라. 저 작은 소품도 갖고 싶다 우리 집에 놓으면 얼마나 예쁠까 등등 꾸준한 구매 요청을 했다. 물론 남편이 재정도 함께 담당하고 있으니요청이 소비로 연결된 적은 드물다.
나의 요청이 하나둘 쌓일 때마다 남편은 이런 카톡을 보내온다. "금일 긴급 재정 회의 참석 요망" 나는 꼼짝없이 가계부를 열어놓은 노트북 앞에 앉아 가계 경제 흐름에 대한 브리핑을 들어야 한다.
작은 소비가 아닌 큰 소비 또한 우리 집에서는 나 혼자 주도하는 편인데. 소비를 위한 논리를 한참 펴놓고 재정 담당자(남편)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그 담당자는 이렇게 말한다. "가족회의 안건으로 받아들여주겠다. 회의를 해보자." 그럼 나는 또 꼼짝없이 앉아 가계 경제의 흐름과 함께 소비 자제 요청을 듣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는 최근 한 달 넘게 당근 마켓에서 아이쇼핑만 하는 중이다. 평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며 작은 소비가 모여 큰 지출이 되는 것을 경계하자는 남편이니 나는 당근 마켓 아이쇼핑을 실제 쇼핑으로 연계할 성공적인 전략이 필요했다.
나는 평소 측은지심이 많은 남편에게 오래 걸리지만 확실한 인정에 호소하는 먼 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무튼 이번 나의 위시리스트는 바로 출퇴근용 크로스백이다. 나는 1시간 10분 걸리는 출근을 매일 해내는 중인데 매일 보부상과 같은 짐을 짊어지고 다니기 때문에 튼튼하고 편리한 출근용 가방이 필요했다.
몇 주 전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오빠 내가 말이야. 요즘 당근 마켓이란 걸 알게 되었는데. 엄청 신기한 게 많다?" 남편이 대답한다. "음. 이번엔 뭐가 사고 싶은 거지?" 나는 시무룩하게 말한다. "아. 그게 아니고 내가 출근할 때 크로스백이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냥 구경만 하는 거야." 하며 우리 동네 당근님들의 물품을 검색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다시 이야기한다. "오빠. 혹시 잊었을까 봐 이야기하는 건데. 내가 요즘도 당근 마켓을 구경하고 있어. 그냥 그렇다고." 남편은 피식 웃는다. 그다음부터는 괜히 내가 미리 챙겨놓은 출근 보부상 가방을 보며 "이런 두꺼운 수첩은 왜 가지고 다니는 거야. 책은 안 들고 다니면 안 돼?"하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하루는 거실에 앉아있는데 남편이 이렇게 물었다. "마망이 어린이였을 때 엄마한테 뭐 사달라고 잘 안 했지? 갖고 싶은 거 있어도 엄마한테 잘 말 안 하고 참았을 것 같아. 그래서 지금 막 이것도 저것도 갖고 싶은 거지?" 했다. 내가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어? 갖고 싶은 건 사실 많았는데 엄마가 안 사줄 거 아니까 말 안 했던 거 같아. 엄마는 맨날 돈이 없다고만 했거든."
며칠 후 잔소리 대장이 큰 마음을 먹은 듯 말했다. "그런데 출근할 때 들고 다니기에는 백팩이 낳지 않나?" 나는 오늘도 여전히 당근 마켓을 구경하고 있지만 잔소리 대장이 결국 새 가방으로 사줄 거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지난 주말이었다. 남편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나는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따뜻한 집에서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너무 안온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벅차올라 뭔가 낭만적인 말을 해주고 싶었던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남편이 "갑자기?"하고 물었다. "오빠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추운 날에도 집 밖에서 방황하고 있었을 거야. 집이 이렇게 따뜻하고 편한 곳이라는 걸 알아줘서 고마워. 잔소리는 좀 많지만 그래도 항상 나랑 놀아주고 같이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 남편은 에헴 헛기침을 했다.
나는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친정, 시댁 어른들, 형제들, 조카들 모두 행복하길. 남편과 내가 건강하길. 무엇보다 나로 인해 이 사람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길. 오래오래 행복하게 함께 하길.
잔소리 대장의 잔소리는 여전히 많고 앞으로도 많겠지만. 나 또한 애정에 비례하여 늘어나는 잔소리를 남편에게 많이 해주고 싶다. 나와 함께 안온함을 느낄 수 있는 아늑한 집이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