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서 쓰는 신혼일기

행복과 파테크와 게으름뱅이

by mamang
20210501_201327.jpg


# 일기 1



남편이 여러 번 말했던 꼭 가봐야 하는 식당에 드디어 갔다. “이 동생이 하는 식당이 잘 되는 건 정말 내가 바라는 일! 그 누구보다 이 동생이 잘 되면 좋겠어!” 오빠가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나는 “그래, 나 몸 좋아지면 가자."라고 답했던 탓에 한참을 지나서야 가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결혼 후 처음 문래동에 갔다. 서울에 올라와 지냈던 곳이자 나의 기쁨과 슬픔이 고여있는 곳이었는데. 손님이 되어 동네에 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어색하게 지하철역에 내려 식당으로 걸어갔다. 친절하게도 핸드폰 번호를 남기고 주변에서 대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골목에서, 공원에서, 카페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대기 손님이 많아 우리는 1시간이 훌쩍 넘게 기다려야 했는데 배가 많이 고팠을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오래 기다린다는 건 손님이 얼마나 많다는 거야. 정말 행복하다!”

나는 식당에 앉자마자 공부해 온 메뉴를 주문했다. 그리고 “예전에 가게가 작았을 때도 좋았는데 지금도 너무 좋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내가 입만 대고 남긴 막걸리를 다 먹은 오빠는 얼굴이 붉어졌고 더 신이나 보였다. “손님들이 더 들어온다. 우리는 자리를 비워주자.”하고 사장님에게 선물과 인사를 건네고 나왔다.

행복하다는 말을 소리 내어 자주 하지 않는 오빠는 그날 그 말을 아끼지 않았다. 식당 안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서, 지하철 안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집에서 내내 그 말을 했다.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행복해지는 일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일기 2


나도 파테크를 해보고 싶어 졌다. 음식을 자주 해야 파가 비싸졌다는 것도 알 텐데. 체감하지 못했던 파 값이지만 친구들이 파를 집에 키운다길래 나도 해보고 싶어 졌다.

몇 주전 장을 보러 가서 "대파를 사야 해" 내가 말했다. "그럼 다듬어진 걸 살까?"하고 말하는 오빠에게 "안돼. 뿌리가 있어야 해."

집에 가서 파의 흰 부분과 뿌리를 그대로 살려 플라스틱 컵에 물을 받아 꽂아놓았다.


"네가 키우고 싶어 가져온 식물들도, 너도 내가 키우고 있는데 또 키울 게 생기다니" 오빠는 난감해했지만 나는 파 3개를 창가에 두었다. 몇 주가 지나자 파에서는 신기하게 새 잎이 나기 시작했다. 오빠가 말했다. "얘들 새 잎 난 거 봤어?" "응. 봤어. 파 잘라서 먹을까?" 내가 답하니 "어떻게 그런 말을. 잔인해."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오빠는 키우는 일에 소질이 많은 것 같다. 나도 파도 잘 자라고 있는 걸 보면. 파를 먹으려고 키우기 시작했는데, 먹지를 못하니 파가 곧 파 나무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는 새댁이다.

#일기 3


오빠에게 진 빚이 있다. 나는 6개월여를 기다리고 기다린 글쓰기 강좌의 수강료를 내야 했고. 40만 원의 용돈으로는 수업료를 낼 수 없고 비상금도 없는 처지라 가족회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나는 진짜 좋은 글을 쓰고 싶어. 나에게 투자해 주세요." 오빠는 말했다. "그럼 자네의 공약은?" 결국, 나는 일주일에 3회 이상 실내 자전거를 타는 조건으로 수강료를 받았다. 이행하지 않을 시 용돈에서 매달 10만 원씩 차감하겠다고 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자전거를 탄다. 지난주에는 의무 횟수 3회 중 남은 한 번을 일요일 저녁에서야 겨우 채웠다.

지난 수요일엔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나와 티브이를 보는 오빠가 거실에 있었다. "우리 집에는 말이야 게으름뱅이가 살고 있어."


나는 자전거를 타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이야 얼마나 바쁜 줄 알아. 나는 자전거도 타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스트레칭도 해야 하고 말이야."


말하고 보니 정말 베짱이의 삶인가 하여 잠시 머뭇거렸는데. 남편도 느꼈는지 나를 조용히 쳐다봤다. 우리는 동시에 웃어버렸다. "그래 나는 베짱이야." 인정하니 마음이 금방 편해지는 것이었다.


바깥에 가면 큰소리 한 번 제대로 못 내는 내가 집에서라도 큰소리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는야 게으름뱅이. 내가 뻔뻔하고 편하게 게으름 부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감사하고 소중하다.


이번 주는 자전거를 더 열심히 타야지. 그렇다고 5번 타겠다는 건 아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연휴를 앞둔 자의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