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여행의 불안

아침의 기대, 현실에서의 불안, 저녁의 유쾌한 기억(알랭 드 보통)

by mamang




미래에서도 과거의 만족과 안전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집에 돌아오고 난 뒤에야
명절이나 연휴가 완전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재의 불안이 안정된 기억에서 거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초등학교 시절로 기억한다.


명절 때마다 한복을 입고(언니들이 짧아져서 나에게 물려준) 친척들 집에 인사를 다녔다. 내가 7살일 때 아빠의 고향을 떠나온 우리 가족들은 아빠, 엄마, 언니 둘, 나까지 차에 가득 실려 시골로 향했다. 10살 무렵부터는 우리 집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생 놈까지 차에 끼워서 데려가느라 더 비좁았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 가족들은 멀미가 심한 할머니를 대신해서 친척들에게 꼼꼼하게 인사를 드려야 했다. 늦잠도 자고 싶고, 재미있는 특집 프로그램도 많이 할 텐데. 하며 가고 싶지 않다가도 엄마, 아빠, 할머니에게 받은 세뱃돈이나 용돈이 뭔가 '응당 대가를 치르거라'하며 호통을 치는 듯했기에 어김없이 못 이기는 척 차에 실려갔다. '도대체 시골길은 왜 이렇게 구불구불인데!!!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어버린 다음 눈을 뜨면 어느새 시골 친척집이었다. 시골집에는 화장실이 어둡고 꿉꿉한 냄새로 가득했고, 발은 물론이고 내 몸까지 빠져버릴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밥과 반찬도 '우리 할머니가 집에서 해주는 게 훨씬 맛있는데'라고 투덜댔고, 고모할머니가 '내 새끼 이거 가져가서 묵소'하면서 싸주시는 약과, 한과, 엿까지 받아 들고 속으로는 '우리 할머니도 과자 만들 줄 아는데, 우리 집에는 더 맛있는 과자가 있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골에 가고 오는 내내 툴툴거렸던 나는, 명절이 지난 후 고모할머니가 챙겨주신 약과와 한과, 그리고 엿을 아껴먹었다. 명절을 오래오래 길게 늘어뜨리려는 것 같은 그 마음이 참 이상했다.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유년은 나의 주변에서 폐허가 되었다.
부모님은 어느 정도 당황하여 나를 바라보셨다.
누이들은 아주 낯설어졌다.
익숙한 느낌들과 기쁨들을 나에게서 각성이 일그러뜨리고 퇴색시켰다.
정원은 향기가 없었고, 숲은 마음을 끌지 못했다.
내 주위에서 세계는 낡은 물건들의 떨이 판매처럼 서 있었다.
맥없이 매력 없이.
책들은 종이였고, 음악은 서걱임이었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언젠가부터 언니들과 나는 덩치도 머리도 커져서 우리 집의 '장손'인 남동생만 시골행 아빠 차에 몸을 싣게 되었다. "하루를 희생하는 대신 세뱃돈과 용돈을 독식하지 않냐"는 나와 언니들의 위로 같기도 하고 놀림 같기도 한 말에 동생은 매번 퉁퉁 불어 차에 올랐다. 그때부터는 동생이 나 대신 약과, 한과, 엿을 가득 들고 왔다. 동생도 시골 과자들을 먹으며 명절을 길게 늘어뜨렸었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친척집이 있는 시골에 다니는 것도 힘들어했던 나는 점차 보호자와 함께하는 즉, 차에 타라고 하면 타고 내리라고 하면 내리면 되는 여행에는 익숙해질 수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골행이나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수련회, 수학여행만 견디면 되는 10대가 지나고, 20대가 찾아와 버렸다. 그와 함께 쉽지 않은 나의 여행들이 떠밀리듯 시작되었다. 거의 모든 청소년들이 그렇듯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든든한 보호자와 함께하는 예측 가능한 여행 말고는 다른 종류의 모험과 같은 여행은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이 때문인지, 아니면 내 장소 낯가림 때문인지 뭔지 모를 이유 때문에 대학생이 되고 엉덩이가 가벼워진 친구들이 가까운 곳에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자 하면 나는 멀미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친구들의 놀이에 빠지기 싫어 길을 따라나선 후 낯선 곳에 이르게 되면 어김없이 두통부터 시작되었다.

날씨가 좋은지, 풍경이 어떤지 도저히 관심이 생기지 않았으며, 다만 돌아가는 차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어서 안전한 우리 집 아늑한 소파에 앉아서 할머니가 끓여주신 시래기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나는 매번 그렇게 억지로 두통을 참아내며 짧거나 긴 여행을 마쳤다.

하지만 함께 길을 나섰던 친구들과의 대화 속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또 달라졌다.

종일 나를 괴롭히던 두통 대신 그날의 좋았던 점만 머릿속 가득 떠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참 변덕이 심하고 이상한 아이구나.'싶었다.

그 후, 여행에서의 두통을 망각하고, 두통에 시달리고, 또 그날을 그리워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그렇게 내 추억들을 여러 겹 덧발랐다. 가끔 여행을 불편해하기도 하고 추억하는 것도 좋아하는 내가 정상은 아닌 것 같다고 오랜 시간 생각해왔다.



마망 : "오빠, 집에 가고 싶다"
신랑 : "응? 우리 신혼여행 중인데?"


남편은 신혼여행 중인데 집에 가고 싶다며 울먹거리는 나에게 몹시도 서운해했다.

평소 여행에 대한 걱정이 많은 나는 '그래도 신혼여행이니 조금 다르겠지.'하고 기대했다.

그런데 어김없이 남편을 속상하게 만들어버렸다.

너무나 기대해 마지않던 신혼여행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삼일에 한 번씩 바뀌는 도시들이 버거웠고, 나중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물 냄새가 이국적이라기보다는 너무나 낯설게 느껴져서 탈이 나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만 생각했어야 했는데 마음으로 한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집에 가고 싶다".. 심지어 그 날은 남편이 신혼여행지에서 맞는 생일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신랑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벤트를 준비했다.

베네치아의 레스토랑에서 신랑이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사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미안하다. 부탁이 있다. 우리는 허니문 여행 중이다. 내 남편이 생일이다. 축하를 해주고 싶다. 디저트를 내주실 때에 초를 하나만 꽃아 줄 수 있겠나."를 더듬더듬 영어로 내뱉었다. 다행히도 이벤트는 성공했지만, 내 마음속 미안함을 씻겨지질 않았다.


내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지 않았다면 매일 매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살 뻔했다.



스키를 탔던 방학은 [일반적으로 내 삶의 많은 부분도] 그렇게 흘러갔다.
아침의 기대, 현실에서의 불안, 저녁의 유쾌한 기억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나만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하는 생각으로 바뀌었을 때의 반가움과 감격이란.

유년기부터 대학 시절,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주 겪었던 여행에 대한 불안함과 불편함을 알랭 드 보통도 느꼈다니. 하는 반가움 마음으로 희석되어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나는 너무 감명받은 나머지 책 밑부분에 이렇게 메모를 해 두기도 했었다.


"평생 여행에 대한 불안, 후회가 이런 면 때문이라니, 이제부터는 여행의 불안이 조금은 더 편해질 듯하다"(2020.01.10.)


강원도로 요양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어제, 여행 끝무렵에 괜스레 퉁퉁 불어있었다. 분명 내가 원하는 요가하는 곰돌이 인형도 데려왔고, 충분히 휴식하고 편하게 머물다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도대체 왜 지금 복어처럼 퉁퉁 불어있는 것인가. 돌이켜보니 언젠가부터 여행의 끝자락에 다가갈수록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보통의 책을 다시 펴내니 지난 시간 내가 적어놓은 다른 메모가 보인다.


"완벽이 지나가버릴까 두려워하는 날"(2020.01.10.)


헌신을 한 판의 달걀이라고 본다면, 현재에 헌신하는 것에는 달걀을 과거와 미래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지 않고 모두 현재의 바구니에 담는 위험이 있다. 이 비유를 사랑으로 옮긴다면, 내가 클로이와 행복하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는 것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내 모든 달걀이 그녀의 바구니 안에 확실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 모두에게 완벽이 지나가버릴까 두려워하지 않고 현재에 존재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그리고 나에게도 여행이 걱정보다는 기대감과 현존으로 가득찰 수 있길 기대해본다.

이전 03화[필링굿] 슬픔은 우울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