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 셋째 딸이 예쁜 이유

셋째 딸과 아빠

by mamang


마망 : 저 국토대장정 가요!
아빠 : 포기하지 말고. 힘들더라고 꼭 끝까지 견뎌라.
엄마 : (남편 몰래 소곤소곤) 힘들면 전화해. 꼭 안 버텨도 돼.
큰언니 : (아빠 몰래 소곤소곤) 여자는 추운 데서 고생하면 탈 나.
형부 : (장인어른 몰래 소곤소곤) 형부가 데리러 갈게. 힘들면 전화해.
마망 : 여러분! 저는 끝까지 완주할 거예요! 걱정 마세요.


대학교 3학년 때 일이었다. 자신의 꿈과 비전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합격자에 한해서 현금 200만 원 정도를 학교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공모전이 있었다. 공대 여자라는 특이점과 영어회화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대내외 활동을 활용해 나의 비전과 세부적인 실천 계획을 발표했고 상금을 받게 되었다.


사용처를 피드백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나는 자유롭게 상금을 활용할 계획이었다. 먼저 50만 원은 국내 최초로 겨울에 진행하는 국토대장정의 참가비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라섹을 할 예정이었다. 라섹을 하고 완벽하게 회복한 후 안경없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전국의 아름다운 설경을 더욱 선명하게 보는 기분은 어떨까.


그렇게 나는 시력교정술을 받았고 담당 의사 선생님께 "선생님 제가 곧 국토대장정을 가야 해요. 수주 내에 시력이 교정되면 갈 수 있겠죠?" 하고 당당하게 나의 포부를 밝혔다.


내 일정에 쫓기듯 주기적으로 검진을 해주시고 걱정해주시던 선생님은 "이렇게 회복이 빠른 환자는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눈에 눈이 부시지 않게 선글라스를 잘 착용하라고 당부를 덧붙이시며 응원도 해주셨다.


그렇게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나의 발자국을 남기며 다닐 생각으로 부풀어있던 나는 과반수 이상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주하겠노라며 큰소리를 치며 집을 떠나왔다.


뛰는 것도 아니고 그냥 걷기만 하는 건데 뭐 얼마나 힘들겠냐는 나의 자만함은 고된 일정에 하루 만에 꺾여버렸다. 시간을 정해서 하루 3끼를 잘 챙겨주겠다는 계획이 무색하게 식사 시간은 지켜지지 않았고, 걷는 게 아니라 길에 따라 계속 뛰었다가 걸었다가 하느라 너무 힘들었다.(나에게는 그랬다 허허) 나는 찬찬히 걷는 게 아니었냐며 왜 밥은 하루 3번 준다더니 2번뿐이냐며 저기 앞에 보이는 찜질방에 들어가서 등좀 지지고 싶다며 팀원들에게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뒤에 따라오고 있는 구급차에 어떻게 하면 좀 타볼 수 있을지 머리를 부단히 굴렸다. 낙오자의 민망함과 패배감은 이미 나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고,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해야 하는 강당에 도착했다. 내 다리는 이미 고장이 나버린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집에 돌아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애꿎은 국토대장정 모집 공고를 되짚어보며 환불 규정은 없었는지 정말 환불이 안 되는 게 맞는지, 도대체 왜 환불이 안 되는지 화가 나기에 이르렀다.


그때쯤 여자들이 함께 써야 하는 1개의 공용화장실마저 막혀버렸고 마침 큰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마망아 지금 돌아온다고 해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해. 진짜야. 그리고 여자는 추운 데서 고생하면 나중에 몸 상한다." 하는 언니에게 "언니 괜찮아. 내일은 조금 괜찮겠지. 진짜 힘들면 전화할게." 하고 씩씩한 척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렇지만 그다음 날의 나는 조금도 괜찮아지지 않았고, 구급차에 올라타고 싶은 생각만 자꾸 들었다. 나는 기어이 낙오자 중 한 명이 되어 눈여겨보던 구급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낙오자가 구급차에 타면 그의 짐은 구급차에 실어주지 않는다는 규칙 때문에 애먼 팀원들만 돌아가면서 내 가방을 매야했고, 미안한 마음에 결국 다시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고 대열에 합류해야 했다.


그렇게 억지로 양다리를 교차해 끌고 나가다가 하루를 억지로 버티게 되었다. 아침을 먹고 함께 출발한 일행들이 해가 저물어서야 너른 평지에 널브러져 휴식 시간을 갖게 되었다.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의 메뉴가 카레였던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꽁꽁 언 단무지가 반찬 중 하나로 나온 것을 보고 나는 그만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하루 3끼만 다 줬어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을 거라며. 이런 대접을 받고는 못하겠다고 팀원들에게 자진 하차 의사를 알렸다. 팀원들은 "언니, 누나, 아쉬워서 어떡해요"하며 나의 하차를 섭섭해했다. 그리고는 주섬 주섬 자신들의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쓸모없고 무게만 차지할 것 같았는지 낚시 의자, 손전등, 읽으려고 가져온 책 등을 나에게 건네주며 배낭 속의 짐을 덜고 있었다. "언니, 누나, 이거 죄송하지만 집으로 좀 붙여주실 수 있을까요?" 미션 하나를 포기하자마자 또 다른 미션을 부여받은 나는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30일 일정 중 1박 2일을 버텼고 나의 연락에 경기도로 득달같이 달려와주신 형부의 차를 탔다. "우선 먹을게 이거밖에 없네. 수고했다." 하시며 형부가 건네주신 쫄병 스낵을 "이제 진짜 공부 열심히 할게요. 밤새고 공부하라면 그렇게 하겠어요. 으헝" 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맛있게 먹었다.


그 후 서울에 있는 큰언니의 집에서 5일을 더 근신하며 지낸 후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일주일 버티긴 했는데, 몸에 너무 무리가 갈 것 같아서 그만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큰언니 집에서 조금 쉬다가 내려갈게요." 했다.


그때의 나는 왜 거짓말을 하고 큰언니 집에 몰래 숨어있어야 할 정도로 아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을까.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리히 프롬은 2장 사랑의 이론을 통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을 알기 쉽게 풀어내 준다.


저자는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적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어머니의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나는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나는 아름답고 칭찬할 만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어머니에게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사랑받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없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현재의 상태', 곧 어머니의 자식으로 존재하는 것뿐이다.


저자는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이유를 나의 존재 자체라고 설명해준다.


국토대장정이라는 위험한 상황에 놓였던 나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어땠을까.

어머니는 따뜻함이고, 어머니는 음식이며, 어머니는 만족과 안전의 유쾌한 상태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본인의 눈 앞에서 안전하게 위치하며 따뜻한 안락함을 즐기길 바랬다. 불확실하고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 내가 놓여있다는 것을 몹시 힘들어했다. "이런 거 안 해도 된다. 제발 하지 말아라."하고 나를 만류했다.




반면, 아버지의 사랑은 어떨까.


그러나 아버지는 자연적 세계를 나타내지는 못하지만 인간 존재의 다른 극, 곧 사랑, 인공적 사물, 법률과 질서, 훈련, 여행과 모험 등의 세계를 대표한다.
아버지는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고 어린아이에게 세계로 들어서는 길을 지시해주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경험을 지지해주는 사람의 역할을 했다. 가족들 모두 반대하는 위험할 수 있는 여정에 홀로 적극적인 지지를 해줌으로써 내가 세계로 들어서는 길을 지지해준 것이다. 도전 계획을 가족들에게 처음 알렸을 때부터 나의 유일한 지지자였던 아버지에 대해서 나는 "역시 아빠는 사회생활을 알아. 이런 것도 해보고 그래야 나중에 회사에서도 뒤처지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역시 나를 이해하는 것은 아빠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빠와의 든든한 유대감이 생긴 것만 같았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기대와 이러한 적극적인 지지에 체력적인 준비도 되지 않은 채로 무모한 도전을 하기에 이르렀다. 실제 내가 이 도전을 해낼 수 있는 체력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은 해보지 않고 추상적으로 이 도전을 하면 내가 얻을 수 있는 심적인 성취감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사랑의 기술」을 읽어 내려가며 돌이켜보니 당시의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의 인정에 대한 갈증과 무언가를 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버림받을지 모르는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뭔가 여성성이 아닌 남성성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닿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의 본성에는, 복종은 주요한 덕이고 불복종은 중요한 죄라는 사실이 가로놓여 있다.


결국 1박 2일 만에 종료돼버린 나의 도전 실패를 아버지에게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 왠지 나의 실패를 크게 나무랄 것만 같아 가족 모두에게 일주일은 버틴 걸로 하자는 협조를 요청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다른 딸들이 하지 않는 신기한 행보를 내가 한 발자국씩 해나가면서 '조금 다른 아이', 또는 '아들 같은 딸'과 같은 아버지의 평가를 기대했던 것 같다. 술을 마시지 않고 사람들이 여성스럽다고 말하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언니 둘과 비교해서 남성적인 전공을 선택하고 그에 적극적으로 합류하려고 노력해왔던 것에도 그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대학교 때인가 한 번은 아버지가 "너는 정말 돌아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구나. 싶었다. 뭔가 아들들만 통하는 이야기를 아버지와 할 수 있는 딸이 되고 싶기도 했다. 농업고를 나오신 아버지와 토목 공사현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면 내가 듬직한 아들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이 있는 사랑이다. 아버지의 사랑의 원칙은 '너는 나의 기대를 충족해주기 때문에, 네 의무를 다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닮았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가 셋째 딸로 태어난 직후에는 아버지가 나를 별로 예뻐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는 아버지의 무릎에서 벗어나질 않고 하도 안기고 애교를 부리고 엄마 아빠가 돈 벌러 나가면 따라가겠다고 하도 울어대서 엄마 아빠가 같이 울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내가 애교를 많이 부리니 나중에는 아버지가 나를 예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환영받지 못했던 출생 이후 나의 부단한 노력으로 인해 예쁨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TMI 덕분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뭔가를 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로 나를 규정지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기이한 호기심들에 대한 엉뚱하고 참신한 해답을 찾는 프로그램 "호기심 천국"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호기심이 하나 있는데, "셋째 딸들은 진짜 예쁜가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뭔까요?"였다.


어릴 때부터 셋째 딸이라고 하면 "얼굴 안 보고도 데려간다던데"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대학교에 가서는 "얼굴을 안 봐야 데려가겠네"하며 짓궂은 친구 놈들이 놀리기도 했지만.


당시 프로그램 담당자들은 셋째 딸들이 정말 예쁜지에 대한 객관적인 입증을 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아다녔다. 전국의 모든 셋째 딸들이 그랬겠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셋째 딸이 예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객관적으로 증명해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정말 아쉽게도 셋째 딸이 예쁘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없었다. 다만 "셋째 딸이 예쁜 이유는 예쁨을 받기 위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셋째 딸들은 본능적으로 예쁨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결론을 내릴 뿐이었다.


남아선호 사상이 심한 우리나라의 특성상 두 여자 형제에 이어 태어난 셋째 딸은 본능적으로 본인이 예쁨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예쁨 받으려는 온갖 노력을 다 하게 되고 결국에는 외모가 가장 예쁘지는 않더라도 예쁨 받는 행동 탓에 정말 예쁜 셋째 딸이 된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괜히 아등바등 살아온 것 같아서 나부터가 짠해 보였고 그다음부터는 또 다른 셋째 딸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괜히 얼싸안으며 반가워하고 촉촉한 시선을 나눈다. "힘들게 살아오셨겠군요." 하며.





그렇다면 셋째 딸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사랑의 기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저자 에리히 프롬은 우리가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자신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단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어머니다운 양심은 '어떠한 악행이나 범죄도 너에 대한 나의 사랑, 너의 삶과 행복에 대한 나의 소망을 빼앗지는 못한다'라고 말하고,
아버지다운 양심은 '네가 잘못을 저지르면 너는 네 잘못의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고 내 마음에 들고 싶다면 너는 너의 생활 방식을 크게 바꾸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에 덧붙여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머니다운 양심과 아버지다운 양심을 모두 가지고 사랑해야 한다고 전한다.


모순적이지만 이런 균형이 지켜지기 않는다면 신경증의 각종 유형으로 발현되기에 이른다고 여러 사례를 통해 말해준다.


그가 오로지 아버지다운 양심만을 간직한다면 그는 난폭하고 잔인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가 오로지 어머니다운 양심만을 간직한다면, 그는 판단력을 잃기 쉽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발달을 방해하기 쉽다.


자신이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부단히도 밝히고 싶어 했던 셋째 딸들은 어머니다운 양심의 무게에 조금 더 비중을 주면 어떨까. 내가 뭘 잘하기 때문에, 예쁨 받을 만하기 때문에 사랑받는 다는 데에 집중하게 된다면 저자의 말처럼 "언제나 사랑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저자가 제시하는 사랑의 이론을 바탕으로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고 원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만족스러워지고 즐거워진다.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는 것보다 훨씬 중요해진다.


무엇보다 당신이 스스로를 더 사랑해주겠다고 다짐해보길 바란다.





[쿠키 글]


23살 마망 :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과 선생님 : 응? 마망 학생. 벌써 돌아온 거예요?
23살 마망 : 아니요. 그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안과 선생님 : (피식) 분명 1 달이라고 했는데 그렇죠? 허허. 그럼 눈 상태 한번 다시 볼까요?


최소 한 달 동안은 정기 점진을 받으러 오지 못한다고 여러 차례 들었던 의사 선생님은 나의 이른 복귀에 피식 웃어버리셨다. 나는 분명 상세한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저 웃음은 뭐야.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사랑의 기술 1(받기만 하는 사랑)

- 사랑의 기술 2(사랑의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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