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과 함께 보는 영화 페인티드 베일
선배 :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식당에 가서 여자의 시선이 벽을 향하도록 구석에 앉아. 여기에서 중요한 건 너희는 벽을 등지고 있어야 해.
남사친들 : 선배 왜 꼭 그래야 해요?
선배 : 그래야 그 여자한테 온통 너희만 보이게 되는 거지. 그분에게 보이는 건 오로지 벽과 너뿐이도록 하는 거! 그게 포인트야.
이러한 모든 인식을 분리되어 흩어져있는 인간의 실존을 견딜 수 없는 감옥으로 만든다. 인간은 이 감옥으로부터 풀려나서 밖으로 나가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들과, 또한 외부 세계와 결합하지 않는 한 미쳐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분리되어 있는 것은 무력하다는 것, 세계-사물과 사람들-를 적극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리는 결렬한 불안의 원천이다.
성적 도취를 해결책으로 삼는 경우는 이와는 약간 다르다. 성적 도취는 어느 정도 분리 감을 극복하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형태이며 고립 문제에 대한 부분적 해답이 된다.
우리는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물러남으로써 분리 감이 사라질 때에 완전한 고립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인간이 분리되어 있던 외부 세계도 사라져 버린다.
현대 서양 사회에서도 집단과의 합일은 분리 상태를 극복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개인의 자아 대부분이 사라지고 그 목적이 군중에 소속되어 있는 합일이다.
오늘날 평등을 일체성보다는 오히려 동일성을 의미한다. 평등은 추상적 동일성, 곧 같은 일터에서 일하고 같은 오락을 갖고, 같은 신문을 읽고, 같은 감정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동일성을 의미한다.
완전한 해답은 대 인간적 결합, 다른 사람과의 융합의 달성, 곧 '사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다.
준다고 하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물질적 영역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역에 있다.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꽃에 물을 주는 것을 잊어버린 여자를 본다면, 우리는 그녀가 꽃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
보호와 관심에는 사랑의 또 하나의 측면, 곧 '책임'이라는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책임은, 그 참된 의미에서는, 전적으로 자발적인 행동이다.
존경은 이 말의 어원에 따르면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우리는 동료가 우리에게는 언제가 수수께끼인 것처럼,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언제나 수수께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