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담론

[사랑의 기술 1] 받기만 하는 사랑

에리히 프롬 / 페인티드 베일

by mamang


페인티드 베일 포스터(출처 : 네이버 영화)


눈을 마주치고 싶어 하는 여자, 자신의 신발만 보며 말하는 남자


영화 '페인티드 베일'의 여자 주인공 '키티'와 남자 주인공 '월터'의 이야기다.


영화 초반, 짧은 단발머리에 자신 있는 눈빛을 하고 파티장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키티는 뭔가 어수룩하고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한 남자에게 함께 춤을 추자는 제안받는다.


못 이기는 척 춤을 췄던 그 여자는 그 남자에 대한 기억이 딱히 남아있지 않나 보다. 파티가 있던 다음날,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 가족들에게 심드렁한 반응만 보일 뿐이다.


'그냥 그랬어. 내 스타일은 아니야. 불꽃이 튀는 열정도 섹시한 매력도 전혀 느끼지 못했어.' 아마 키티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아쉽게도(키티의 입장에서 말이다) 불꽃이 튀는 매력을 갖지 못한 어수룩한 이 남자와 키티는 결혼을 하게 된다.


게다가 결혼 전부터 결정되어있던 중국행으로 유일한 아는 사람(그것도 알게 된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과 먼 길을 떠나게 된다.


이 영화는 주인공 키티와 월터가 결혼생활 중 겪는 불만족, 불륜, 감정의 폭발, 회복, 치유를 단계별로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터 갈등이 고조되는 중반까지 키티와 월터가 서로 상대방의 미간이나 인중을 보고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듯한 답답함도 함께 보여준다.


영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갈등을 노출시키고 극의 대부분을 그들이 회복해가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데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게 되는 과정을 조바심 내지 않고 끌어간다. 인물들의 표정, 행동, 상황 그리고 조연들의 조력으로 찬찬히 그림 그리듯 그려 나간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그들이 사랑을 알아가고 서로를 이해하게 될 때쯤 슬픈 결말로 끝마치게 된다. 사랑을 조금 더 빨리 알아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뒤늦은 후회, 아쉬움 그리고 사랑에 대한 그리움에도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영화는 말미에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를 통해 키티의 이야기인 듯한 노래를 들려준다.


나 그대 가질 자격 없어
끝내 잃고야 말았네
장미 꽃다발에 눈이 멀어
그이를 밀어냈건만
오랜 세월 그대 사랑했고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네
장미꽃을 정원에
다시 심을 수만 있다면
하나뿐인 내 사랑을
다시 얻을 수만 있다면




'그이'라는 사람이 나의 하나뿐인 사랑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노래의 화자처럼, 뒤늦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랑의 의미를 배워야 한다고 말해준다.


사랑의 경우, 포기는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적절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인 것 같다. 곧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p. 18)
최초의 조치는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p. 18)


다만, 저자는 사람들이 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덧붙여 그들이 사랑에 대해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 3가지로 압축해서 전한다.


첫 번째, 사랑은 받기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영화 속 키티는 다짜고짜 청혼을 하러 찾아온 월터와 꽃집에 가서 이런 말을 한다.


"저는 꽃을 좋아하는데, 저희 엄마는 곧 시들 꽃을 왜 사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그렇다고 꽃을 심지도 않아요"


아마 키티는 본인이 어느 정도 집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는 것을 월터에게 암시함으로써 우회적인 긍정을 표했을 것이다. 월터는 "있는 힘껏 행복하게 해 주겠어요"라고 다짐한다.


만약 월터가 대신 이렇게 답하고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꽃은 예쁘니까요" 또는 "제가 당신을 위해 꽃을 가꿔줄게요" 그도 아니면 "제가 그 꽃을 당신을 위해 선물해줄게요"


극 초반부터 두 남녀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에만 집중한다. 키티는 월터가 자신의 탈출구가 되어주길 바란다. 자신이 월터의 연구에 구체적으로 어떤 조력을 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을 한심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에게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결혼은 완벽한 도피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키티는 몰랐을 것이다. 월터는 있지만 피아노는 없고 남편은 있지만 대화는 없는 결혼생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키티가 생각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다.
그러나 준다고 하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물질적 영역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역에 있다.


반면 월터의 경우는 어떨까.

내성적인 개발자는 대화할 때 자기 신발을 보고 외향적인 개발자는 상대방의 신발을 본다더니.
- 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소설) 중


극의 후반, 워링턴이 묘사한 "부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자신의 신발을 내려다보며 말하는 사람"이 월터다. 월

터는 자신이 연구를 위해 중국으로 수주 내에 떠나야 하니 급한 마음에 함께 결혼생활을 할 아내를 찾고 있다. 고향땅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야 하는 아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예를 들면 피아노를 필요로 한다던지) 또는 어떤 배려를 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행복하게 해 줄게요"라는 공수표만 날린다던지, 그뿐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 그는 타인을 풍요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의 생동감을 고양함으로써 타인의 생동감을 고양한다. 그는 받으려고 주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다.(p. 45)


월터의 곁에서 키티는 물 없이 버티고 있는 꺾인 꽃처럼 시들어간다. 월터는 그렇다고 해서 정성껏 꽃을 심고 가꿔주지도 않는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그래서 사랑을 하고 싶다면 배울 자세는 되어 있고?"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상대를 위해 기꺼이 '주는' 마음과 각오가 되어 있는가.


두 번째, 사랑은 내가 노력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이 마땅히 '사랑받을'만 한 대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假定)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p. 14)


키티는 월터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원하는 완벽한 여자가 아니라서 미안하네요.


키티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그녀는 이미 마음속에 본인이 원하는 이상적인 남편(또는 애인)상을 만들어놓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말에 대꾸를 잘해주고, 선물도 센스 있게 고를 줄 알며 본인이 하는 게임을 함께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남자를 자신의 '사랑을 받을만한 대상'으로 확정 짓는다. 반면에 자신과 눈을 마주치기 힘들어하고 연구와 책에만 몰입하는 월터를 '사랑받을만한 대상이 아니다'라고 정의한다.


자신이 완벽한 여자가 아니라 미안하다는 키티의 비아냥에 월터는 이렇게 받아친다.

당신이 옳아요. 서로에게 없는 것만 찾으려고 애썼으니


키티와 월터는 극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이 잘못된 사랑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들은 드디어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요"라며 서로를 안아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상대방 옆에 '존재'해준다.


세 번째, 사랑은 오직 불타오르는 상태에 있어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 상태, 혹은 좀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사랑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혼동하는 것이다.


극 후반, 월터에 대한 마음이 열리며 키티는 수녀원에서 일손을 돕게 된다. 키티에게 수녀원 원장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신다.


세월이 흘러 제 감정은 변했죠. 주님은 절 실망시키고 무시하셨어요. 그리고 이제는 무관심 속에 평온히 지내고 있죠. 노부부가 말없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듯이. 그분은 제가 못 떠날 걸 아세요. 제가 응당 할 일이니까요. 하나 사랑과 의무가 하나가 된다면 축복받는 거예요.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응답이 있어야 하는 적극적인 사랑 표현에 목말라있던 키티는 원장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월터를 향한 감정이 사랑임을 깨닫는다.


서로에게 바라는 것 없이 그냥 '있어주는 것' 상대의 기분을 '느껴주는 것' 그리고 '바라봐주는 것'으로 다시 한번 사랑을 확인한다. 잔잔하게 일상을 함께 해나가는 그들은 그렇게 사랑의 기술을 익혀나간다.




월터는 말한다.


인간은 미생물보다 훨씬 복잡해요
실수를 하기도 하고 실망을 하기도 하죠


키티와 월터는 많은 오해와 미움을 지나왔다. 긴 시간을 돌아 나온 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이 두 사람이 상대의 미간이나 인중, 본인의 신발도 아닌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하는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그들이 드디어 상대방에 대해 알고 싶고 궁금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월터는 미생물 연구보다 사람들을 보살피고 치유하는 것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키티는 넘치는 에너지의 분출을 감춰두고 수동적으로 지내야 했던 예년과는 달리 본인의 정성을 사람들에게 쏟게 된다.


비록 월터를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을 겪어야 했던 키티지만, 그녀는 다시 본인의 앞에 나타나 '불타고 스릴 넘치는 사랑'을 다시 제안하는 '찰리'를 '사랑의 기술'을 통해 '가짜 사랑'임을 알아보고 이른 단칼에 거절하고 뒤돌아 설 수 있는 용기와 단단함을 얻게 된다.


무엇보다 "일주일이면 시들 텐데 돈 아깝잖아"하고 걱정하는 그녀에게 "그래도 예쁘잖아요"라고 말해주는 아이와 함께라 더 안심이다.


여러분은 키티와 월터가 경험한 시행착오 대신 '사랑의 기술'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지금부터라도 그 기술을 에리히 프롬과 함께 익혀보는게 어떨까 제안해본다.


나눠주는 진짜 부자가 되어 인생의 진정한 사랑을 느껴보는 경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여 사랑은 그 자체로 복잡하니 미리 예습한다 생각해도 좋겠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사랑의기술2(사랑의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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