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혜원

식은 커피와 할아버지 사장님

아침에 쓰는 일기

by ma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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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습니까.” 카페 사장님이 인사를 하셨다. 나는 매일 아침 50분 일찍 출근해서 회사 안 카페에서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는다. 카페 사장님은 내 옆 테이블에 앉아 유튜브를 보시거나 통화를 하시거나 빵을 드신다. 카페 사장님이 본인을 사장님이라고 소개하며 말을 붙여오시기 전까지 나는 그저 그분이 이 카페에서 나보다 오래된 왕 단골일 것으로 추측했다.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까만 뿔테 안경을 쓰신 단골 할아버지는 도심에서 떨어진 이곳까지 아침 8시부터 나와계시는구나. 생각했다.


평소 같으면 50분 내내 뭔가를 읽거나 끄적이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두신다. 가끔은 본인이 사 온 빵을 먹어보라고 권하시고 금방 말을 거두신다. 빵을 파는 곳의 사장님이 편의점에서 빵을 사 와서 손님에게 이거 맛있다고 권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리고 오늘은 사장님이 몸을 내 쪽으로 틀고 말씀을 시작하셨다. “매일 아침 보니까 식구 같네요.” 나는 몸을 사장님 쪽으로 틀어 눈을 마주치며 대답했다. “네. 저도 매일 뵈니까 그런 마음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사장님은 마스크를 고쳐 쓰고 본격적으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20대 중반에 2년 정도 절에서 시험 준비를 했어요. 그때 한다고 했는데 잘 안돼서 지금 이렇게 되었죠.”


“저는 지금도 휴가를 가면 절에 머물고 절밥을 먹고 계곡에 발 담그고 그렇게 보내요.” “제 선친께서 저를 데리고 박물관, 공연, 전시회를 많이 다니셨어요. 그때는 그게 그렇게 지루했는데. 제가 나중에 우리 아들들을 데리고 민화 전시회에 갔어요.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아빠. 놀이동산 좀 가자.”


“매일 책을 읽으시더라고요. 책 정말 좋지요. 저도 한참 많이 읽었어요. 요즘은 노인네가 되었지만, 친구들하고 스터디 그룹을 한답니다. 친구 한 명은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으면 본인의 생각을 5줄로 적어서 앞에 붙여서 줘요.”



내내 끄덕이던 나는 처음으로 말을 거든다. “박물관에 큐레이터분들 계시잖아요? 요즘은 책도 큐레이팅을 한대요. 친구분께서 참 멋지시네요.”



“아, 그런 게 있군요. 사람이 많이 배우고 공부하고 그래도 항상 겸손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스터디 그룹에서 어떤 분에 대해 들었는데 그분은...(계속)...”



오늘 아침의 나는 눈을 뜨자마자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출근길 1시간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책을 읽었는데. 출근하기 전까지 남은 50분 동안 책을 이어 읽을 생각이었다.



자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사무실에 쌓여있었고 내 능력을 의심하는 상사가 그곳에 있었다.


그런 요즘이었다. 오늘의 나는 습관처럼 일찍 집을 나서 커피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던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옆자리 카페 사장님께 인사를 드렸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이제 다시 책이나 읽어볼까. 하며 괜히 지겹다고도 생각했다. 외로운 것도 같았다.


그때 할아버지 사장님이 나에게 몸을 틀어 말을 건네 오셨다. “매일 아침 보니까 식구 같네요.” 나는 눈물을 참으며 사장님 쪽으로 몸을 틀었다. 눈을 마주치며 대답했다. “네. 저도 매일 뵈니까 그런 마음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50분간 내리 쉬지 않고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사장님은 “제가 이렇게 말이 많지 않은데 오늘은 이상하네요.” 하고 말을 접으셨다. 나는 자리를 정리하며 “오늘 함께 말씀 나눠서 참 좋았습니다.” 할아버지 사장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카페를 나섰다.


한 청년의 인생을 지나 할아버지의 인생을 보았다. 함께 통과한 그 시간이 나를 잡았다. 50분간 내리 듣기만 했는데도 이상하게 많은 말을 한 것 같았다.


쉬지 않고 말했던 할아버지가 내 이야기를 대신 들려준 것도 같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한 듯하다. 식은 커피가 깊고 맛있다.


(2021.9.11.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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