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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Feb 15. 2022

책 속에서 연대하는 젊고 아픈 여자들

젊고 아픈 여자들, 미셸 렌트 허슈(출판사 마티)



"그들 모두가 이 책 안에 담겨 있다"(354쪽, 젊고 아픈 여자들, 미셸 렌트 허슈, 출판사 마티)


<젊고 아픈 여자들>을 읽고 나니 2년 전 대학병원에 입원했던 때가 어제와 같이 가깝게 느껴진다. 그때 나는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지 3개월을 지나고 있었다. 남편과 둘 뿐인 집에서도 자주 거울을 보며 모습을 살폈고 화장실에 가면 세면대의 물을 틀어놓고 볼일을 봤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온몸이 넓고 붉은 얼룩으로 뒤덮였고, 나는 별 수 없이 이 얼룩들을 남편에게 보여줘야 하는 응급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해서는 남편이 일을 마치고 병원으로 와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이상하게도 저녁 9시만 되면 두드러기가 목을 타고 올라 얼굴까지 퍼지는 바람에 조금만 더 놀다 가겠다는 남편을 떠밀어 집으로 보냈다. 몸이 붉어지는 건 이미 들킨 후라 별 수 없었지만, 얼굴까지 붉고 울퉁불퉁한 두드러기가 생기면 얼굴이 붉은 카멜레온이 된 것 같아 숨어버리고 싶었다. 엘리베이터에 남편을 태우고 뒤돌아 병실로 올라가면 기다렸다는 듯 목구멍이 답답해졌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붉어지는 내 얼굴을 보고 곧바로 스테로이드를 놓아줬다. 

퇴원해서도 온도차에 의한 콜린성 두드러기와 가려움증은 나아지지를 않았는데. 데이트하듯 여유로웠던 산책은 가려움과의 싸움이 되었다. 밝고 산뜻하게 지내야 했을 것 같은 신혼을 순식간에 통과해버린 것 같았다.

이 책을 만나 가장 반가웠던 것은 그 시절 내가 느꼈던 모든 종류의 상실감에 대해 나 대신 증언해주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질병 휴직 후 돌아간 직장에서는 "살쪘다. 활기가 없어졌다. 텐션이 떨어졌다. 그래서 임신은 언제 할 거냐. 엄마가 피부병이 있으면 아이한테도 그게 간다더라." 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 말들은 느리고 확실하게 상처가 되어 남았다. 아픈 것에 대한 신체적 괴로움은 물론, 정신적인 어려움을 이해해 줄 사람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외롭고 괴로웠던 시간이었다.

이 책은 지혜롭게도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을 순서대로 배치해주었다. 활기를 강요받는 젊은 여성들과 여성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여성들. 또한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 체력의 한계를 넘어 무리하는 여성들. 의료진에게마저 공감받지 못하는 여성들은 또한 임신에 대한 강요와 두려움을 따라 읽어가다 보니 그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한 든든한 "젊고 아픈 여성들"의 커뮤니티에 속하게 된 마음이 들었다.

1년 전, 남편과 함께 대학병원에 갔다. 무릎 관절 수술을 앞둔 시어머니를 모시고 수술 방법에 대한 설명과 입원 날짜를 지정받으러 간 것이었다. 대기하던 중 우리는 내 나이또래의 젊은 여성이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녀가 지나가기 무섭게 "젊은데 어쩌다가." 라고 말했던 내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책을 읽게 되면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된다."  글쓰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나도 몰랐던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이유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기억하고 싶은 말들

57쪽. 그러나 젊은 여성이 의학적인 어떤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의 기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반짝이는 청춘의 화사한 불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젊고 활기차 보이는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고장 나 있다. 우리는 매력적이지만 어느 정도까지만 그렇다.

61쪽. 건강에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든 아니면 그냥 내가 거짓말을 잘 못해서든 간에 나는 그러지 않기를 선택했다.

117쪽. 그래서 나는 다른 누구 못지않게 나도 가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내가 받는 보수에 비해 더 열심히, 내 몸 상태에 비해 더 열심히,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해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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