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혜원

내 마음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에 대한 고찰

나뭇잎처럼 나부끼는 사람

by mamang


나는 주로 나의 감정을 타인에 의해 결정당하기 원한다.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와 그날의 대화를 복기하다 보면 마음에 걸리는 나의 행동, 말투, 단어 등이 상대방에게 거슬리지 않았는지 꼭 다시 물어본다. 여의치 않으면(상대가 나의 감정, 생각 과잉에 질릴까 봐 무서우면) 잠을 미루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한다. 침대에 누워 그날의 대화를 다시 보고 듣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반복하다가 '나는 실수를 하지 않았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는데. 사실 그런 성공을 거둔 적은 거의 없고, 반복해서 돌려보다가 지쳐서 잠들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랜 시간 나는 나 스스로를 (혹은 타인도 나를) 외향적이고 쾌활한 사람이라고 오해해 왔는데. 침묵을 잘 견디지 못하고 어색함을 피하려고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면서까지 공기를 띄우던 나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타인은 물론이고 나또한 나에 대한 정의를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내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이런 나를 싫어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에 멈춰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무리 지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가도, 낄낄거리며 웃다가도 갑자기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던 것과. 홀수로 이뤄진 친구들 사이에서 떨어져 나오는 한 명이 꼭 나였던 것, 한 학년, 그러니까 1년 동안 단 한 명의 친구. 화장실에 같이 가 줄 친구만 남아도 마음이 편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때문에 여럿이서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나의 감정은 사람 수만큼으로 찢기듯 나뉘고 그 마음들은 그들의 손에 쥐어진다. 그들에 의해 판단되고 평가된 나는(사실 내가 눈치껏 그들의 생각을 추측하는 형편이다. 친구들에게 묻듯이 직접적으로 묻게 되면 나를 이상한 사람, 사회 부적응자로 볼까 두렵기 때문이다) 다시 수십 개로 이뤄진 나의 단편을 돌려받아 이어 붙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상상했던 멋진 보자기 같은 너른 면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구멍이 나고 너덜너덜한 다시 써먹기 어려운 상태가 되기 일쑤였다.


나는 내가 대면한 대부분의 상황에서 '나는 다수의 타인에게 형편없이 구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나에 대한 오해도 내가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보니 결국 세상 어느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는 외로움과 우울감에 자주 빠지는 것이다.


언제쯤 나는 이런 바보 같은 반복을 멈출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좋아해 주기까지 기다려줘야 하는데. 여전히 가장 어려운 일이 나를 예뻐해주는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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