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다음 생에는 근육질 남자로 다시 태어날래
토공녀 - 토목직 공대 여자
사수님은 매일 일에 치여 사는 분이었다. 신입인 나도 몇 주 준비 운동 후 바로 일인분의 일을 해내야 할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이었다. 그나마 내가 발령받아 온 처음에는 내가 운전도 하지 못하고 현장 상황도 전혀 모르니 시간을 쪼개서 현장에 함께 나가주셨다. 그것 마저도 공사 규모에 비해 턱없이 짧은 공사 기간에 치여서 각종 변수들을 검토하고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넘쳐나는 탓에 함께 현장에 가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한달 반쯤 지나자 나중에 사수님은 나를 현장에 혼자 내보내게 되었다.
사수님을 따라 다닐 때는 몰랐는데. 혼자 현장을 나가려다 보니 오반장님의 화난 얼굴이 떠올라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다. 우리 현장 목수반장인 그는 매일 "내가 이순신 대교를 지었다." 라고 말하는 사내였다.
그의 얼굴은 까맣게 타 있었고, 미간에 주름이 깊었다. 평생 웃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화가 얼굴에 박혀있었고 현장에서 '씨발 씨발'을 주문처럼 외우는 사람이었다. 오반장님은 평소 본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수님 앞이어도 자주 난리를 피우긴 했지만, 그때마다 쉽게 제압당하거나 설득당했다. 사수님은 상대의 감정에 휘둘리거나 겁먹지 않는 분이셨다. 나는 그게 오랜 경력 때문인지 180이 넘는 키와 큰 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오랜 경력이 없을 뿐더러, 키크고 덩치 큰 남자로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갖는 힘을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이제 운전 학원에 다니고 있는 입장이라 광활한 현장에 나가기 위해서는 별 수 없이 시공 업체의 차를 얻어 타고 나가야 했다. 현장의 진행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지적하고 시정시켜야 하는 나의 입장으로써는 시작부터 뭔가 큰 주도권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현장에서 지적사항이 나오면 "이건 다시 해주셔야 해요." 라고 말하고 "감독님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오차 범위 안에 들어요. 네?" 하며 시공사와 옥신각신 하다가 다시 시공사 직원의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난감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서 운전에 능숙해져서 모래 바람을 휘익 날리며 현장을 누비고 싶었다. 현장에 나타나서 이것 저것 살펴본 후 잘못된 것들을 시정시킨 후 홀로 차에 올라타 다시 모래 바람을 휘날리며 자리를 신속하게 뜨고 싶었다.
그날 내가 확인해야 할 것은 콘크리트 타설 하기 전 철근과 거푸집이 도면대로 설치되어 있느냐 였다. 하루를 꼬박 걸려 도면 여러장을 외우고 갔다. 막상 현장에 가보니 긴장이 되서 수 백가닥이 되는 철근과 수백장 되는 거푸집이 머릿속에서 자꾸 뒤죽박죽 되어버렸다. 급한 마음에 시공사 직원의 도면을 빌려보며 대조해야 했는데, 작업자들이 그동안 점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땡볕에 앉거나 서서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동그랗고 하얀 얼굴을 가진 이십 대 여자가 본인들의 성과를 뜯어보며 지적하는 것도, 하루 종일 걸려 설치한 것을 또다시 손봐야 하는 것도 아니면 나에게 지적받았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 나 안 해!" 반장님은 들고 있던 연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고 주문 같은 욕설을 마구 내뱉었다. 삿대질을 하며 "지가 뭘 안다고!" 하며 화를 냈다.
연장은 챙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바닥을 내려보다가 안전모가 이마 아래로 흘러내려와 한 손으로 안전모를 밀어 올리며 반장님을 올려다봤다. 사실 그 상황에 너무 놀라 순간 눈물이 글썽이는 걸 들키지 않고 싶어 바닥을 내려보던 거였는데. 이젠 눈물이 쏟아지려 하는 바람에 급하게 눈을 치켜떠야 했다.
반장님은 나에게 달려들 것처럼 손가락질을 하며 다가오고 있었고, 나를 차에 태워간 시공사 직원이 "그만하세요" 라며 대충 말리는 시늉을 했다. 내가 허락해주면 그냥 오늘 공정을 마무리할 수 있는데 나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겼다고 여기는 듯했다.
"내가 말이야 이순신 대교를 다 지은 사람이여." 오반장님은 이순신 대교를 시공하면서 생겼던 문제 상황에 대한 썰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무시하면 되는데 그걸 또 들어줘야 할 것 같아서 끄덕거리며 한참을 서서 듣고 있었다. 결국 시공사 직원의 중재로 현장은 몇몇 잘못된 점을 고쳐 내일 다시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차에 올라타고 보니 나의 손에서는 이미 흥건하게 땀이 나 있었다.
나는 현장에서 반장님이나 시공사 직원이 마음먹고 나와 싸우려고 덤비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감독이라는 직책을 떼고 나면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여자일 뿐이었다. 몸싸움으로 말싸움으로도 나는 그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며, 그들이 화를 내고 덤비는 모습에 실제로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다시 태어나면 근육질의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가 40대가 되고 50대가 되어 경력이 쌓이고 아는 것이 많아져도. 몸싸움을 하면 저들을 상대하여 이기기 어렵다는 변함없는 사실이 나를 짓눌렀다. 내가 매일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이 현장에 나갈 때마다 나를 지배했다. 그 후 큰소리가 나면 몸이 자동으로 움츠러들었고, 현장 직원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언쟁이 생길 때에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다른 사람이 있는지 살피게 되었다. 나는 근로자들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살펴야 하는 사람인데. 나의 안전조차 스스로 보장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기술자로써의 나의 자질에 오래고 질긴 의심의 뿌리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