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핸들에 머리 박고 우는 자

토공녀-토목직 공대 여자

by mamang


오늘은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동네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 친구들을 태워 족발집으로 가기로 했다. 눈치 보다가 퇴근을 못하는 야근이 계속되다 보니. 오늘도 저녁 약속이 당일에 취소되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늦은 오후 2시쯤, 현장에 다시 나갔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날에는 오후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스럽다. 오전, 오후 2번은 현장에 나가는데 오늘은 3번은 다녀와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현장에 나가니 품질관리 김 과장님이 나와있었다. 오늘은 흙을 다지고 다져서 층층이 쌓아 올리는 공사를 하는 날이었다. 대규모 토공사(흙을 깎고 퍼서 나르고 다지며 쌓아 올리는 일)를 하면 잘 다지는 작업이 가장 중요한데. 잘 다질수록 작업 시간이 더뎌지고, 시공 회사에서는 작업 일수가 바로 돈으로 연결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품질 관리는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시공사는 주로 돈을 만드는 일이 아닌 돈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품질관리와 안전관리를 하는 직원을 현장에서 바로 채용해서 쓰는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손이 많이가고 책임도 많이 따르는 일이라 사람들이 기피하기도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사실 이 현장 끝나면 바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연속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한다. 때문에 발주처 직원들을 대할 때도 예우를 거의 해주지 않는데. 경력도 부족하고, 성별도 여성인 나를 특히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오늘도 저 품질관리 김 과장님과의 언쟁에서 기죽지 않고 시방서대로 시공시키리라 다짐했다.


"몇 센티씩 다짐하고 계세요?"(시방서에서는 30cm 쌓아 올리고 한 번 다짐기계를 올려야 한다.)

품질 김 과장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척 대답하지 않는다.

"과장님? 몇 센티 올리셨나고요. 30cm씩 하고 계세요? 시방서 확인하셨죠? 네? 그렇게 못한다고요?"

일단 내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이 많아지면서 주도권을 빼앗긴 것 같지만 그래도 일단 계속 주장해본다.

품질 김 과장은 장비를 멈추지 않고 나의 말에 대충 대답한다. "아니 감독님. 요즘 누가 그렇게 하나하나 cm 단위로 재서 공사를 언제 다 합니까. 공사 기간 짧다고 난리인데. 그리고 제가 공사를 대충 해둘까 봐 그러세요? 저도 하자 생기면 골치 아파요."


나는 말문이 막혔지만 현장에서 부릴 수 있는 융통성의 범위를 알지 못했고, 여기에서 물러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비 멈추게 하시라고 제대로 시방서대로 하세요!" 소리를 질렀다. 품질 김 과장은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야! 네가 그렇게 잘 알아? 그럼 네가 다 알아서 해. ㅆㅂ" 하며 휙 뒤돌아 가버렸다.

현장에 있는 작업 반장도, 시공사 직원도 모두 하나 둘 나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내는 일이 늘어가던 차에. 쌍욕을 듣고 보니 머리가 멍해졌다. 가장 화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정말 융통성이 없어서 공사 기간도 줄이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가 하는 생각은 점점 자존감을 떨어뜨렸다.


사무실에 돌아온 나는 6시가 되자 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보겠다며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차에 바로 올라타 시동을 걸고 출발했는데, 그대로 50분을 엉엉 울면서 운전했다.


친구들과의 약속에 늦지 않게 도착했는데. 흘러내리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현장의 동네 북이 되어버린, 사수님과 차장님이 자리를 비우면 모두 달려들어 나에게 화를 내는 현장에서. 반격 한 번 하지 못하고 울며 돌아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보였다.


대학에 다닌 6년 동안, 공사 시방서와 실제 공사 현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인턴을 해보며 경험을 쌓기에는 인턴하는 시간 동안 해야하는 공부들이 밀리고 다른 경쟁자들이 먼저 취업에 성공할까봐 두려웠다. 채용 연계형 인턴은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되지 않았다. 선배들과 매일 현장에 다니며 배우기에 한 명이 해야하는 일은 너무 많았다. 교과서와 현장이 다르다는 것은 일단 알았고,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는 학원이 있으면 월급을 다 뱉어내더라도 다니고 싶었다. 세금을 낼 수 있는 국민이 되어 불과 몇 개월 전까진 행복했는데, 지금은 내가 세금만 축내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데에 자괴감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기에는 돌아가야 할 독서실은 너무 춥고, 취업 준비는 죽고 싶을 만큼 막막했다.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어 핸들에 머리를 박고 울고 있는데 똑똑 친구들이 창문을 두드렸다. 창문을 겨우 내린 나는 조금 더 울었고 친구들은 창 밖에 서서 나를 기다려줬다. "매운 족발, 엄청나게 매운 족발을 먹자." 눈물을 닦고 내가 말했다. 친구들이 차에 올라탔다. 맵고 짜고 슬프고 맛있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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