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공녀_토목직 공대 여자
일처리를 잘 해내고 싶은데, 나의 경험과 역량이 바쁜 마음을 따라잡지 못해 나는 자주 삐걱댔다. 일머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체념하고 있기엔 선배들과 현장 직원들에게 무능력한 사람으로 찍혀 미움받는 일은 더 두려웠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조금 더 쉬운 길을 가고 싶었다.
나는 먼저 선배들이 나의 개인적인 일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숨기지 않고 다 말했다. 특히 할머니, 아빠, 엄마에 대한 이야기와 형제가 많아 생긴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가장 자주 활용했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식당을 오랫동안 운영해오셨다는 것이 가장 좋은 소재였는데. 내가 부모님의 식당에 대해 이야기하면 부모님이 고생하시며 딸을 잘 키우셨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부모님의 식당을 꽤나 큰 규모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나는 선배들의 이런 반응이 싫지 않았다. 지방대학교를 졸업했다는 것도 선배들의 마음의 장벽을 넘나들기에 좋은 소재였는데. 내가 졸업한 국립대가 있는 지역이기도 했고. 너무 높은 학벌로 상대의 자격지심을 긁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나의 배경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사생활을 완전히 개방했다.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했던 것은 상대방이 혹여나 나를 미워할까 봐 두려운 마음 때문이었고. 내가 여러 사원 중 한 명이 아니라 단일한 대가족 안의 소중한 셋째 딸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 주길 하는 절실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고 작은 실수를 자주 하는 내가 상대에게 잦은 양해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었는데. 개인적인 사정을 상대에게 숨기지 않고 말함으로써 당시 나의 컨디션, 마음 상태, 주변 상황 등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해받고 싶고, 미움은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내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생기를 온몸 가득 안고 회사를 다녔던 것도 나의 생존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집에서, 친구들과 있을 때, 일할 때 고루 나눠 써야 하는 친절한 체력과 마음이 여유와 생동감을 모두 회사에 100프로 올인한 것이다. 나는 그 무렵 특히 엄마, 아빠, 할머니에게 무뚝뚝하고 불친절해졌다. 하루에 써야 할 모든 체력을 회사 선배들에게 모두 소진해 버렸기 때문에 집에서 쓸 에너지가 없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제 더 이상 집에서 용돈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아쉬움이 없어져 이러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실망했는데. 늦게라도 그때의 나의 체력이 무한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나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회식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부담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라 선배들에게 극구 사양을 했으나, 그분들은 식당의 매상을 올려드려야 한다는 선의로 결국 이 일을 추진하셨다. 10명이 넘는 단체 손님이 온다니 부모님은 우선 반가워하셨지만, 회식이 점점 가까워지자 고기의 질, 식당 청결, 본인들이 입고 있는 옷까지 모두 신경 쓰며 되려 면접을 앞둔 사람처럼 긴장했다.
회식 당일, 나는 부서원들과 함께 퇴근 후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딸내미가 아닌 회사원으로 부모님의 식당에 온 게 처음이라 너무 낯설고 기분이 이상했다.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올 때는 내가 주로 음식을 날랐는데. 자리에 앉아있으라는 부모님, 이모들의 말을 듣고 엉거주춤 앉아서 음식을 받아먹는 마음이 불편했다.
나의 기분에 상관없이 회식의 시간은 흘렀고 고기는 익어갔다. 단장은 건배사를 했으며, 모두 제창한 후 술잔을 한 번에 비웠다. 분위기에 맞춰 한 잔씩 할 때마다 "우리 가게에 회식 오는 아가씨들은 상 아래에 술을 버리고 그러더라." 하는 말을 자주 하던 엄마가 바로 저 밖에 있다는 사실이 어색했다. 엄마와 아빠, 식당 이모들이 바깥에서 딸내미가 하는 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나는 그간 생기를 잃어버린 모습으로 집을 배회하던 내가 생기 충만한 모습으로 회식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들킬까 조심스럽고 창피했다.
마음껏 무표정으로, 찡그린 모습으로, 한껏 풀린 눈으로 널브러져 있는 나의 모습만 보던 나의 가족들이 맥주 뚜껑을 숟가락으로 따며 모든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모습을 마주하면 나를 안쓰럽게 볼까 봐 회식 내내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회식을 마치고 나의 엄마는 우리 부서 행정 직원에게 총금액을 안내했다. 직원은 법인 카드를 내밀었고, 엄마는 고개를 숙여 두 손으로 카드를 받았다. 카드 영수증에 사인을 받은 엄마는 다른 사무실 직원들에게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넸다. 엄마와 아빠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딸을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부서 사람들은 너무 잘 먹었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나는 서비스로 내온 고기 때문에 분명 남는 것도 없었을 텐데 뭐하러 고기를 이렇게 많이씩 줬냐고 툴툴거렸다. 돈도 얼마 남지 않은 일에 좋은 방, 좋은 시간대를 차지한 것 같아서 또 속상했다. 엄마는 술 많이 마셨냐고 힘들지 않냐며 나의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식당 이모들이 모두 먼저 퇴근한 늦은 시간, 회식 흔적을 대충 급한 대로 치워두고 엄마, 아빠와 함께 식당 문을 닫았다. 아빠가 챠르륵 셔터를 내린다. 셋이서 하는 퇴근길이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