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현장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현장 주변 동네 주민분들을 인사차 방문했을 때나 보상 관련 민원을 넣으러 오셨을 때 뵈었던 분들이었다. 오늘은 그분들이 민원인이 아닌 현장 인력으로 현장에 오셨다.
공사를 진행하면 매일 공사 일보라는 작업계획 겸 일지 같은 것을 만드는데. 시공사에서 보내온 그날의 공사 일보에 적힌 작업자 60명 중 20명 정도가 주민들이었다. 공사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은 몇몇 마감 공사에 주민분들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달라는 민원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에서 대규모 토목 공사를 진행시키는 바람에 얼결에 내가 취업되었다는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나는 직업을 얻고 주민들은 땅을 빼앗기며 직업을 잃게 되었다는 것에 큰 빚을 진 마음이었다. 지역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매일 흙을 만지며 땅을 고르고 키우는 것을 업으로 하시던 분들인데. 손수 만져야 할 흙이 모두 큰 바가지로 긁히고 파여 많은 트럭에 실려나가는 것을 보며 망연자실하셨을 거라 생각했다. 현장에서는 늘 마음이 무거웠다.
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동네 분들 몇몇은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었을 것이다. 그분들의 노동은 투명해서 시간과 정성 말고는 다른 것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혼자 마구 몸집을 불릴 수 없는 농작물은 품이 많이 들고, 작물을 돈이라는 재화로 바꾸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느리지만 그래도 제때 자라는 작물을 기다려주는 분들이었다. 밑천이 가진 땅뿐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자식들이 고향을 떠난 후에도 꾸준히 농사일을 하셨고, 손 끝으로 만들어내는 성과가 아직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오셨을 것이다.
국가 토목 사업으로 부모의 땅이 보상을 받게 되자, 도시에 사는 자식들 몇몇은 아주 좋아했다고 들었다. 가끔 갑자기 목돈을 벌게 되어 어르신들도 좋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팔아봤자 뭔가 다른 일을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며 새로 주거지를 옮겨갈 수도 없는 액수의 돈을 평생의 땀과 바꿔야 했기에 지금 사는 이대로 살다 죽기를 바라셨다.
그쯤 많은 인터넷 기사와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갑작스러운 국가적 토목 사업으로 토지가 편입된 분들이 마치 벼락부자라도 된 것처럼 비아냥 거렸다.
본래 맨손으로 직접 일궈 물을 주던 논과 밭이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린 그곳에 저분들이 서계신 것이다. 챙이 넓은 밀짚모자 대신 안전모를 쓰고 어정쩡하고 낯선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참 작업이 진행된 후 현장에서 다시 어르신들을 뵈었다.
흙이 묻어있어야 할 그분들의 손과 얼굴에 회색 시멘트물이 묻어있었다. 털어도 깔끔하게 닦이지 않는 잿빛 물을 나는 오래 쳐다봤다. 이제 막 일을 마친 어르신들은 안전모를 반납하며 고개를 꾸벅 인사하며 현장을 나섰다. 농사일과 공사일을 쓰이는 근육이 달랐는지 온몸을 삐그덕 거리며 걸어가셨다.
현장에서 바로 옷을 갈아입고 퇴근하는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집이 바로 이 앞이라 일한 옷차림 그대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셨다. 나의 땅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시간이 황금빛 논이 아닌 잿빛 공사 현장에 묻혔다. 얼마 전까지 공사에 대한 양해를 요청받으면 목청을 높이며 할 말은 모두 시원하게 하셨던 어르신들이었다. 오늘은 하루 8시간을 돈과 맞바꾸어 현장을 나가신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아직 많다고 생각했는데. 생계를 꾸려나가는 누군가의 방식을 강제로 틀어버리는 일이 돈으로 보상하기에 충분한 것인가 궁금했다.
국가사업이 가져오는 효과와 효능을 점점 믿기 어려워졌다. 내가 취업한 것을 처음 후회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