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를 따고 1,000만 원을 대출받아 중고차를 샀다. 매달 30만 원 정도 되는 돈을 3년 동안 갚는 조건이었다. 매일 카풀을 시켜주는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면허증을 받고 그 다음주 서둘러 차부터 샀다.
도로 연수도 따로 받았는데 운전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매일 국도를 50분 넘게 달려야 하는데, 내가 위험하다기 보다는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겁이 났다. 차는 무서운 물건이었다. 막상 운전을 해보니 몇 개월만에 딸 수 있는 간단한 운전 면허 소지자에게 맡겨도 되는 것일까. 차를 이렇게 쉽게 사게 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무섭고 부담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편한 점도 있었다. 퇴근 시간을 편하게 조율할 수 있는 점이었는데. 선배들보다야 많지 않지만, 간혹 잔업이 남아 처리해야 할때 조용한 사무실에 남아 일을 볼 수 있는 것이 멋져보였다.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혼자 남아 야근을 하고 있던 날이었다. 주변이 한적한 시골이라 사무실 출입문과 창문을 단단히 잠근 후 전화가 울리지 않는 조용한 사무실에서 이것 저것 자료를 챙겨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감사합니다. OO 사업단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보세요. 거기가 발주처요?"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내가요. 일하고 돈을 못 받았습니다. 이래도 됩니까? 내가 몸이 불편하고, 또 신용불량자라 통장을 못 만들어서. 우리 여동생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고 잡부로 일을 했는데. 왜 돈을 안줍니까."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선생님. 성함하고 연락처 알려주시면 시공사에 전달해서 바로 처리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됐고요. 나는 사는게 너무 지옥같고 힘들어서. 우리 마누라는 외국인이고, 단칸방에 네식구 사는데. 나는 그냥 여기에 불 지르고 죽어버릴라요."
상대방이 전화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화를 낸다기 보다 울음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나도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아니요. 선생님. 지금 혹시 누구랑 계세요? 댁이 어디세요? 아이들이 둘 있으시고, 사모님도 외국인이시면 선생님이 안계시면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요. 네? 제 이름은 OOO이에요. 선생님. 현장에서 얼굴 동그란 여자 감독 보신 적 있죠? 그게 저에요. 저 매일 현장에서 보셨죠? 저 믿고 한 번만 마음 돌려보세요. 선생님 인적사항 알려주시면 다음에 일을 못하게 될까봐 걱정되시는 거죠? 계속 일 하실 수 있게 하고, 돈도 바로 받으실 수 있게 할게요. 네? 내일 제가 바로 처리할거에요. 저 믿으실 수 있죠?"
전화 주신 분은 점점 감정이 사그라들었고, 조금 더 현실에 대한 푸념을 내뱉다가 곧 죄송하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음날 차장님, 사수님께 보고드린 후 함께 현황을 조사해 보니 하도급사에서 현장 정리를 위한 잡부로 일을 시켰던 적이 있는데. 몸이 불편하고 본인 명의의 통장이 아닌 것을 안 하도급사 오야지(반장)이 약점 삼아 돈을 주는 것을 질질 끌고 있는 거였다. 해당 미지급금은 바로 해결토록 했고, 불이익 또한 가지 않도록 했는데. 권고 사항이었을 뿐 일용직을 계속 상시 채용하라고 강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전화를 끊기 전에 나만 알고 있을테니 전화번호라도 주시라고 부탁할 걸하고 내내 후회스러웠다.
12년이 지난 지금은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사업의 경우는 노임 관리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하도급 지킴이 서비스를 통해서 노임을 받아야 하는 인력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미지급금이 없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물론 예전에 비해 관리의 망이 좁혀져 임금 미지급 피해자들은 줄었겠지만 아직 하도급 지킴이 서비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사항(민간 공사)이 있다. 또한, 정확한 데이터 관리를 위해서 근로자가 통장을 개설해야 하고, 이는 입금을 증빙할 수 있는 계좌번호를 남기는데. 신용불량자의 경우 통장을 개설하는데 한계가 있고, 많게는 수백명이 일하는 공사장에서 한 두명의 예외를 위해 현금으로 인건비를 줄 일이 없을테니. 이 또한 다른 면에서 피해를 보는 이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1000억이 넘는 공사를 하면서, 가장 낮은 공사 금액을 제시한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시공사를 정하다 보니 크고 작은 문제가 많았다. 시공사는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고 싶어했고, 그들이 데리고 온 하도급사 또한 불량했다.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대금 처리에 대한 신용이 좋지 않아 날이 갈수록 체불 민원은 심각해졌다.
나는 내가 하는 이 일이 보이지 않는 차를 운전하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심히 받는 전화, 성의껏 처리하지 않은 일 때문에 누군가는 몇 달치 월급을 받지 못하고 끙끙거리다가 신용 불량자가 되거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나, 그걸 실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민원 하나지만, 누군가에겐 가족이 죽고 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생 첫 민원인에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