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혜원

삶의 각오. 괄호 열고 괄호 닫기

by mamang



• 몸에 물이 필요하듯 삶에 책이 필요했어요. 매일매일 일상은 비슷한데 왜 매일매일 새삼스럽게 힘이 들까요.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으면 왜 또 발목을 잡는 문제들이 불쑥 등장하는지. 한 번씩 알 수 없는 허무감에 시달리는데, 환절기 감기처럼 찾아오는 번뇌를 풀어가거나 잠시 도망치려고 할 때 책에 크게 의지했습니다. 제게 책은 생각의 갈피를 잡아주고 마음을 잠잠하게 해주는, 현명하고 너그러운 존재죠. 멋진 책을 읽으면 몸에 통째로 저장해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책을 빨리 떠나보내지 않고 더 잘 사랑하는 방법이 저에겐 글쓰기입니다.(은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225쪽)


오늘의 이야기


8년 전 취업을 준비하면서 컴퓨터 학원을 다녔다.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였는데. 학원을 다니면서 봤던 시험을 계속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나중에는 독학으로 다시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땄었다. 학원에서 배운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이후 나에게 귀하게 남은 습관이 있었다. '괄호 열고 괄호를 꼭 닫기'였다. 수식을 많이 써야해서 괄호를 열었다가 미처 닫지 못하고 마무리해서 오류가 나는 경우가 많다고. "괄호를 열자마자 그냥 바로 닫아버려요. 그리고 그 안에 쓰고 싶은 수식을 쓰는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 실수할 일이 없거든."

이후 취직을 하고, 문서를 작성할 때마다 나는 선생님의 잔소리를 기억하며 괄호를 여는 것과 동시에 닫아버리고. 그 안에 하고 싶은 말을 써넣는다. 바로 닫지 못했다면 꼭 마무리를 할때 괄호부터 챙겨 닫는 습관이었다.


일상은 문서 작성과 다르다. 나만 정신 차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경우의 수들이 자꾸 마음대로 괄호를 이곳저곳에 열어젖히고 닫아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해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면 내가 모르는 일들, 그러니까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닫지 못한 열어젖혀진 괄호들을 찾아본다. 매번 그렇지만 찾다 찾다 포기하고 한 해를 찝찝하게 보내준다.


올해는 그렇게 만들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지난 1월,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반전세로 돌리고 싶다고 말을 했고. 한 주 후에는 반전세가 아닌 월세로 바꾸겠으니 160만 원을 내지 않으려면 자신들도 다른 세입자를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마구잡이로 열린 괄호 앞에 서서 어리둥절했다. 지난 시간을 의견 조율하는데 다 쓰고도 결국 신혼 첫 집에서 앞으로 한 달 이내로 이사를 가야 한다. 나는 올해 첫 괄호를 잘 닫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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