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으로 등 떠밀리는 난임생활
난임휴직 2달째. 점심 먹고 산책 겸 집 앞 슈퍼에 다녀올까 하며 신발을 신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엄마 전화다.
지난번 통화 후 일주일 정도 지났나? 난임 진단을 받으며 기분이 바닥을 치는 날이 계속되는 중이라 엄마와의 통화를 피하고 있던 중이었다. 엄마의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이 나에게 전달될까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우선 나부터 생각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슨 일이지, 엄마의 기분 게이지에 대한 빅데이터가 없는 나는 조마조마했다. 엄마는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내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이다. 긴장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응. 엄마?” “밥 묵었냐?” “응. 먹고 지금 슈퍼 가려고. 엄마는?” “잉. 슈퍼 가잉? 아니 엄마가 다이소를 갔다가 어디를 가서 집에 필요한 것좀 샀다가 집에 오니께 (뭔가를 씹고 있는 듯한 목소리라 조금 웅얼거렸는데, 나는 엄마가 울고 있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벌써 한시가 넘었어야. 세상에 시간이 이렇게 되브러가꼬. 지금 인자 밥 묵는다.”
엄마의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아. 그랬구나.” 내 대답에 엄마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니, 엄마 먹을라고 경옥고를 샀는디 이것이 너무 좋더라고. 그래서 너한테 이것 좀 보내주까 하고.”
엄마는 나의 임신을 조용히 기다려주지 않고 자신이 해주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자주 들이밀었다. 나는 또 한 번 임신을 재촉당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확 구겨졌다.
“응? 아니야. 나 안 먹어 엄마 괜찮아.” 내 목소리가 너무 크고 신경질적이었는지 같은 엘리베이터에 있던 중년 여성이 내쪽을 대놓고 쳐다본다. 내가 괘씸해 보였을까. 친정엄마 살아계실 때 잘해라 요 철없는 것아. 하는 눈빛인 것 같아 나는 고개를 획 돌렸다.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니믄 한약이라도 지어줄게. 잉?” 그렇지 않아도 휴직하고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마음이 급한데 엄마까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아서 화가 치밀었다. “엄마 제발. 나는 내가 알아서 챙겨 먹으니까 내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이미 유산을 한번 경험한 후라 난임 시술을 바로 시작하는 일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같이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엄마까지 조급함에 불을 지피는 것 같아 확 짜증이 나서 참지 못했다. 엄마는 알겠다고 밥 잘 챙겨 먹으라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난임이라 힘든 것들이 많지만 요즘은 엄마가 나에게 이전처럼 감정을 쏟아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나마 얻어낸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엄마가 내 눈치를 보게 되어 편해진 건 있다.
나는 장을 보고 돌아와 냉장고 정리를 했다. 핸드폰을 보니 엄마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우리 딸. 신한 은행에 돈 쬐끔 보냈으니까 맛났거 먹어유.”
엄마의 이름과 500,000원이 찍혀있었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나는 또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왜 이렇게 많이 보냈냐고.
엄마는 돈 걱정 말고 맛있는 거 많이 사 먹고 힘내라고 했다. 나는 화를 냈고 그런 걱정하지 말고 엄마 잘 챙겨 드시라고 했다. 엄마는 전화를 끊기 전에 경쾌한 척 말했다. “우리 딸 파이팅!” 나도 따라 경쾌한 척 말했다. “엄마도 파이팅!”
엄마는 도대체 어떤 잘못을 했길래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고도 짜증을 받아내야 하는 걸까.
나는 엄마가 분명 지금 나에게 잘해주고 있는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걸까.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싫어하고 또 좋아한다. 이런 내가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