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프면 아픈 아이가 태어난데
2019년 결혼과 동시에 자가면역질환이 나를 찾아왔다. 신혼집으로 이사를 한 게 8월, 결혼식이 9월이었다. 신혼 생활 4개월 만인 그해 12월,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 두드러기가 온몸을 덮쳤다.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토요일 저녁이었다. 밥을 먹고 집에서 쉬며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조금씩 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허벅지 주변에서 시작된 가려움증과 붉은 반점이 위로는 엉덩이, 몸통, 팔, 목까지 올라갔고 아래로는 종아리, 발목까지 내려갔다.
금방 나아질 줄 알았던 가려움증은 생식기 안쪽을 지나 내장까지 퍼졌다. 전신의 가죽을 벗어 뒤집어 벅벅 긁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을 긁으면 긁을수록 가려움증은 더 심해졌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아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울면서 샤워를 했다. 물을 끼얹을 때는 잠시 괜찮은 것 같았는데 물을 수건으로 닦아내면 몸이 다시 가려워 수건으로 몸을 벅벅 문질렀다. 결국 새벽이 돼도 나아지지 않아 남편과 가까운 응급실을 찾아갔다.
외관상 심한 손상을 입은 환자가 아닌 나는 경증 환자로 구분되었고 한참을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몸을 웅크리고 숨을 핵핵거리며 쉬던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오늘 뭘 먹었느냐, 평소 알러지 있는 음식이었느냐 등을 물어보시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원인 모를 두드러기가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일단 스테로이드 주사 맞아보시고요. 샤워하실 때 너무 차거나 뜨거운 물로 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가려움증이 시작되면 절! 대! 긁지 마세요. 한 번 긁으면 그 범위가 넓어지거든요.”
스테로이드를 수액과 엉덩이 주사로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고 발진 범위는 점점 더 넓어졌다. 응급실을 갔다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발진이 심해져서 다시 응급실에 가기를 반복하고 그렇게 3일을 보낸 후 ‘원인 미상의 급성 발진’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이것이 나의 자가면역질환의 시작이었다. 내 몸의 면역이 나의 몸을 공격하는 병. 이후 2년 이상을 심하거나 약한 발진 증상을 겪으며 치료를 받아야 했다.
처음 일주일간의 입원 생활 동안 얼굴까지 올라오는 두드러기로 호흡 곤란을 겪어야 했고 몸에 직접 투여되는 약의 용량은 더욱더 늘어났다. 이후 퇴원을 하고 회사에 복귀하고 나서는 회사에 근무하는 시간에는 멀쩡했다가도 꼭 저녁 시간이 되면 나를 찾아오는 두드러기 때문에 매일 저녁 울면서 샤워를 하고 가려움에 뒹굴며 엉엉 우는 새벽을 보내야 했다. 그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매일 기도했었다. 가려움에 괴로워하다가 겨우 찾아오는 잠이 귀한 시기였다.
신혼 초라 매일 침대에서 남편과 함께 잠드는 것에 익숙해지기 전이기도 했고. 옆에서 남편이 뒤척이면 간지럼 탓에 내내 잠 못 들다가 겨우 잠든 나의 잠이 달아난 것에 신경이 몹시 예민해졌다. 결국 남편은 거실에서 나는 안방 침대에서 따로 잠을 자기 시작했다.
남편과 각방을 쓰게 되니 이후 각 잡고 잠자리를 하는 일이 더 민망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두드러기를 앓게 되면서 부부관계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내 몸 아픈 것에만 신경 쓰다 보니 다른 일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결혼 후 3년 차가 되면서 두드러기도 조금씩 가라앉게 되었다. 몸을 가득 채우던 약 기운이 혹시 남아 아이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나의 질병 때문에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좋지 않은 체력으로 임신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되었다.
그래도 두드러기가 잠잠해진 일은 개인적으로는 큰 성취였으며 이제 다시 시작점에 서있는 느낌이었는데. 주변에서 나의 임신을 두고 보태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콕콕 박히기 시작했다.
급성 두드러기를 이제 막 떼어놓았는데 빨리 아이를 가져야 하지 않냐며 재촉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고생하는 것을 누구보다 알아줬으면 하는 친정 엄마는 “임신 잘 되는 한약 지어서 보내줄 끄나?” 하고 잊을만하면 재촉을 했다. 친정 아빠도 다르지 않았다.
하루는 퇴근한 남편과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하고 있는데 저녁 8시에 친정 아빠의 전화가 왔다. “뭐 하냐?” 하는 아빠의 질문에 “저희 산책하고 있어요.” 대답했더니 “너희가 지금 산책할 때냐?” 하고 호통을 쳤다. 아빠의 뜻은 산책하러 바깥을 나다닐 때가 아니라 집에서 열심히 아이를 만들어야 하지 않냐는 거였는데. 신혼 초창기인데 남편에게 이런 친정 아빠의 배려 없는 말투와 성정을 들켜버린 것 같아 민망하고 화가 났다.
회사의 한 중년 여성은 “엄마가 피부병이 있으면 아토피 있는 아이 낳는다더라.” 하며 나를 걱정하는 건지 겁을 주는 건지 모를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려움증이 다시 시작되어 동네 피부과에 알러지 약을 처방받으러 갔다. 의사 선생님에게 임신 준비를 하고 싶은데 고민이라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더니 “어차피 이 약 먹으면 임신 못해요. 이 약이 착상을 못 하게 하는 약이거든.” 하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셨는데. 이 병이 나를 떠나지 않는 이상 임신을 못하는 건가 하는 막막한 생각에 집에 오는 길에 눈물이 터졌다.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이 병을 앓았기 때문에 난임 시술도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둘둘 말아 놔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