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의 아픈 기억
2023년 3월 31일 금요일
어제저녁 허리가 너무 아파 잠에서 깼다. 어제 잠을 너무 많이 자서 그런가? 하며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누웠다가 다리 사이에 인형을 끼웠다가 뺐다가를 반복하며 잠들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몸이 또 괜찮아져서 어젯밤 일이 꿈이었나 싶었다. 일주일 전 임신테스트기에서 만난 흐릿한 2줄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딱 생리통이었는데.’ 찝찝한 마음으로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는데 허리가 다시 끊어질 듯 아파왔다. 1시간 20분 걸리는 출근길 끝에 회사에 도착해 화장실에 가보니 피가 비쳤다.
피를 목격하니 다리와 허리가 끊어질 듯 더 아파왔다. ‘그냥 생리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야 하는 건가?’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 잠시 고민을 했다. 며칠 전에도 몸이 안 좋아서 조퇴를 쓴 다음이라 더 회사에 더 눈치가 보였다. 자리에 앉아있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모니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계속 눈물만 나고 허리는 생리통의 50배쯤 아파오고 결국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짐을 싸서 나왔다.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내 상황을 알고 있던 여자 선배가 전화를 주셨다. 혹시 모르니 바로 집에 가지 말고 병원에 들렀다 가는 건 어떻겠냐고 말씀해 주셨다. 산부인과 검진을 다시 받아보고 집에 가서는 따뜻하게 몸조리도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퇴근길에 있는 산부인과에 가게 되었다.
초음파 진료 후 의사 선생님께서 임신 5주 차였으며 유산된 것이 맞다고 말씀하셨다. 자궁 외 임신 등 다른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이런 경우에도 피검사를 해서 임신 호르몬 수치가 떨어지는 게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하셨다. 진료실을 나와 주사실에 가서 피검사를 했다. 한쪽 소매를 끌어올려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내 팔에 고무줄을 묶으셨고 알코올 솜으로 팔을 문지르셨다. 그 순간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버렸다.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쏟고 있었다. 피를 다 뽑은 간호사 선생님이 갑자기 일어나셔서 종이컵 하나를 들고 오셨다. 둥굴레차 티백이 들어있는 따뜻한 물이었다. 컵을 나에게 내미시며 “천천히 마시고 천천히 나가셔도 돼요.” 하셨다. 휴지도 함께 내밀어주셨다.
눈물을 닦고 대기실로 나와 피검사가 나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분만 산부인과라서 배가 볼록 나온 임신부들이 대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괜히 주눅이 들고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며칠 후에 다시 와서 임신 수치가 정상적으로 떨어지는 게 맞는지 피검사를 한 번 더 해보자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몸조리를 잘하라고 조언해 주셨던 선배님이 전화를 주셨다. 본인이 알아봤는데 유산의 경우 법적으로 쓸 수 있는 병가가 있다고 혹시 병원에서 나온 게 아니면 진단서를 끊을 수 있겠냐고. 자신의 일이 아닌데 직접 알아봐 주신 선배 덕분에 바로 임신 12주 미만의 경우 5일의 휴가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접수대에 진단서를 끊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고 대기실로 돌아서고 보니 내 손에 올리브영 쇼핑백이 들려있어 괜히 눈치가 보였다. ‘유산했다는 여자가 병원에 오기 전에 쇼핑하고 있었던 거야?’ 하는 존재하지 않는 시선에 괜히 어깨가 작아졌다. 콸콸 쏟아지는 피 때문에 생리대를 여러 개 사서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조용하고 필요 없는 변명이 입안을 맴돌았다.
병원에서 받은 서류의 사진을 찍어 선배에게 보내드렸다. 선배는 자기가 휴가 신청도 알아서 하겠다고 푹 쉬라고 하셨다. 혼자 모든 걸 잘 해내는 사람이라고 나를 믿었는데 한없이 작아지는 오늘 같은 날 나를 엎어주고 안아주는 소중한 존재가 나를 살렸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덜컹덜컹 속이 울렁거렸고 입덧 때문에 챙겨 다니던 신맛 나는 사탕을 입에 넣었다. 달고 시고 딱딱하다. 배 속에 아기는 없는데 입덧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