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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Mar 27. 2024

임신은 경쟁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괜히 뒤처진 듯한 마음


자연임신 시도가 유산으로 끝나자 허탈함과 함께 박탈감이 몰려왔다. 임신에 대해 관심이 적었을 때는 몰랐던 임신에 대한 큰 열망이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크게 부풀어져 있었다. 열망과 함께 임신 성공에 대한 기쁨도 컸고 그만큼 유산으로 인한 실망도 컸다.     


유산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법정 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다. 극초기 유산이었던 탓에 회사 사람들이 많이 모르고 있기도 했고 유산이 좋은 일이 아니니 남초 회사인 이곳에서 나의 슬픈 경험은 다들 쉬쉬하고 지나가는 일이 되었다.      


유산 경험이 있던 그 시기 앞뒤로 같은 사무실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 2명이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했다. 이후 그들의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을 축하해 주면서 걱정을 염려해 주면서 함께 근무를 했다. 유산 이후 최소 3개월은 임신 시도를 피하고 건강 회복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그냥 생리하듯이 흘려보내고 바로 다음 달에 임신 시도를 할 수 있을 줄 알았기 때문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컸다.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오는 동료들과 한 사무실에서 매일 마주치면서 나도 하루빨리 임신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혔던 탓이다. 그간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료들의 임신과 출산이 축하의 마음만이 아니라 부러움과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사실에 부끄럽고 자괴감이 느껴졌다.     


입사 후 변함없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나와 달리 나보다 입사가 늦은 후배들이 하나 둘 임신을 해서 출산 휴가, 육아 휴직을 거쳐 회사로 복직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한 후배는 나와 일주일 차이를 두고 결혼을 했는데 벌써 둘째를 낳고 회사에 복직해서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임신과 출산, 육아에는 분명 내가 알지 못하고 상상할 수도 없을 괴로움과 고통의 시간이 함께했을 테지만. 나는 그들이 이뤄낸 것 어느 하나 흉내 내지 못하고 수년째 그 자리에 멈춰있다는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선배님 혹시 배란테스트기 쓰세요? 제가 임신 준비하면서 남은 게 있어서 혹시 필요하시면 드리려고요.”    

  

임신을 해서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는 후배가 나에게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임신을 시도하는 동안 잘 활용하고 남은 배란테스트기를 건네주면서 함께 활용하면 좋은 어플을 알려줬다. 나는 몰랐던 활용팁을 전수받으며 “좋은 기운 받고 나도 힘낼게. 고마워.” 하고 말했다.      


얼마 지나서 임신한 다른 후배 한 명은 좋은 엽산이라고 해서 비싸게 주고 산 건데 막상 임신을 해서 계속 먹으려고 하니 몸에 맞지 않는다고 혹시 괜찮으면 이거 임신 준비하시면서 드셔보시겠냐고 먹던 엽산을 건넸다. 예의 바르고 조심스러운 제안이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상했다. 상대는 두면 버릴 것 같고 나는 돈을 주고 사게 될 것 같아 고심 끝에 한 제안이었음을 모르지 않지만 저 앞으로 쑥쑥 나아가고 있는 이들에 비해 나는 그들이 남긴 걸 주섬주섬 챙기는 뒤처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후에도 임신 선배들이 몇 차례 쓰고 남은 배란테스트기를 건넸고 내가 돈 주고 사면 아까우니까 고맙게 받고 또 잘 활용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속상함이 남았다.     


그런데 그때마다 경쟁 레인에서 승기를 쥐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언제 끝날지 모를 노력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막막하고 울컥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상대의 배려에 항상 고마워할 줄 알던 나에게 찾아온 이런 변화가 낯설었다.     


그렇게 뭔가 억울한 마음으로 노력했던 임신이 유산으로 종결되었을 때. 기혼 여성 하나 둘 아기를 낳으러 갔다가 복귀하는 회사를 이번에는 내가 떠나보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그들의 휴직을 축하해 주고 복귀를 반겨줄 진심 어린 마음이 나에게서 모두 소진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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