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mang Apr 10. 2024

난임시술 중 남편이 미워죽겠어


난임 병원에 다니자고 말을 꺼낸 건 나였다. 자연 임신 시도는 한 달에 한 번밖에 시도할 수가 없고 눈으로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걸 확인할 수가 없으니 그 결과를 알기까지 피가 마르는 2주를 매번 기다려야 한다는 게 인생의 큰 낭비 같았다. 30일로 주어지는 한 달 중 배란이 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일주일, 임신이 되었는지 기다려야 하는 2주, 생리를 하는 1주일을 보내고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는 30일이 시작된다.    

  

시험관 시술에 앞서 3달 연속으로 진행했던 인공수정 과정에서 과배란 주사, 임신유지 질정 사용으로 이미 체중이 많이 불어 있었다. 인공수정 실패 후 쉬는 기간 없이 바로 시험관 시술을 시작한 나는 난자 채취부터 이미 고용량의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했다. 인공수정보다 주사를 맞아야 하는 기간과 용량이 높아서 몸이 매일 더 심하게 부어오르고 무거워졌다. 난자 채취 이후 아랫배는 비정상적으로 불룩 튀어나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굴은 큰 달덩이처럼 커졌고 넉넉하던 목걸이가 짧아졌다.      


난자 채취 이후 외부에서 수정되고 길러진 배아를 몸속에 넣는 이식 시술을 할 때에는 주사와 질정, 경구 복용약으로 매일 챙겨야 하는 처방약이 많다. 시술 후에는 특히 임신을 인위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스스로 주입해야 했다. 시술 앞뒤로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아서 운동을 아예 하지 못했던 탓에 몸무게가 계속 늘기만 했다. 난임 시술 8개월을 접어들며 총 5킬로가 늘었다.      


배아 이식 후 몸보신을 하러 외식을 나갔다가 쇼핑몰에 들러 옷을 구경했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지만 아직 조금 쌀쌀해서 얇게 입을 내 외투를 볼 겸 간 것이었다. 평소 입던 옷의 사이즈가 잘 맞지 않자 옷을 사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고. 남편에게는 귀찮고 피곤하고 마음에 드는 옷도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럼 이 계절에 입을 옷이 없을 텐데 하면서 계속 나의 옷을 알아봐 줬는데 이미 의욕을 잃어버린 나를 남편이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배가 조금씩 당기고 며칠 전부터 이어져오던 두통 때문에 몸이 피곤해서 집에 가고 싶었지만 조금 더 돌아다니고 저녁까지 먹고 가자는 남편의 말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남편이 가자고 한 식당이 내가 좋아하는 곳이기도 했고 남편이 더 들려서 보고 싶은 곳들이 있다고 해서였다. 남편이 가고 싶어 하던 매장으로 가는 길, 난임 휴직 전 회사에 다닐 때 옷을 사러 자주 갔던 여성복 매장이 보였다. 쇼윈도에 보이는 옷들을 보면 괜히 속만 더 상할 것 같아서 시선을 정면을 향해 고정한 채 걸음을 재촉했다. 남편이 그 옷가게 중 하나를 보고 나에게 말했다. “OO이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저런 재킷 참 잘 어울렸는데.” 나는 고개를 어색하게 돌려 쇼윈도의 마네킹이 입고 있는 재킷을 돌아봤다. 바로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 남편에게 물었다. “그래? 지금은? 지금도 잘 어울리지?” 남편은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는지 즉각 대답했다. “아니. 지금은 몸이 둥그레져서 어울리지 않지.”      


마음을 간신이 붙잡고 있었던 것이 와르르 소리 없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참아보려 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남편은 상황의 심각성을 그제야 눈치챘는지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걸어가며 눈물을 조금씩 흘려보내다가 비상계단이 있는 곳에 가 엉엉 울었다. 크게 당혹스러워하고 미안해할 남편의 마음이 떠올랐지만 그보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가 더 곤란했다.      


난임의 원인이 100프로 남편에게 있었다면 이렇게 무심하고 상처 주는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을까. 원인불명의 난임이라고 모두 나의 탓은 아닌데 왜 난임 시술을 하며 괴로워야 하는 건 여자뿐인 걸까. 나중에 임신을 하게 되면 신체와 외모 변화는 더 심할 텐데 이 사람을 믿고 계속 시술을 받아도 될까.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나를 스쳤다.      


한참을 울다가 쇼핑을 더 하는 것도, 저녁을 먹고 가는 것도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가야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차갑게 남편에게 말했다. “난임치료를 받으면서 신체에 찾아오는 변화는 온전히 나 혼자 겪고 있다. 당신이 신체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 있는가. 나중에 혹시 임신이 되더라도 나에게 훨씬 많은 변화가 올 텐데 그 과정들을 당신과 함께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오늘 없어졌다. 그래서 처참하고 괴로운 마음이다.”     


남편은 상처 줄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었고 평소처럼 장난으로 한 말이었다는 것과 반복적인 사과, 내 눈치를 보며 취하는 저자세 등 온몸으로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의 사과를 받아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져 난임 시술을 하고 있는 과정에 이혼을 하는 게 맞을까 생각을 했다가 그가 반복적인 사과를 하다가 나중에 오히려 자기가 더 화를 내고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고 그런 의도가 아니지 않냐고 소리치는 건 아닐지 두려워했다가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남편이 하는 모든 말에 상처를 받고 파국까지 생각하는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전 07화 난임병원에 첫째 아이는 데려오지 말라는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