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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Apr 03. 2024

난임병원에 첫째 아이는 데려오지 말라는 마음

          


임신 실패가 반복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난임병원 대기실에서 내 진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임병원은 대부분 진료 대기가 정말 길기로 유명해서 집을 나선 지 족히 5시간은 지났을 텐데도 내 순서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루한 생각에 가져온 책에 눈이 가지도 않고 핸드폰을 계속 보기에도 눈이 너무 아파 잠깐 출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3~4살 정도 되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한 여성이 병원을 들어서고 있었다. 여성의 어깨에 자신의 상반신보다 큰 배낭이 매달려 있는 걸 보면 지방에서 진료를 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온 것으로 보였다. 그 여성과 아이는 대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대기를 시작했다.      


평소 아이를 무척 좋아하던 나는 어느 장소에서 만난 아이건 눈 한번 마주쳐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아이의 눈을 좇아 나의 시선을 고집스럽게 아이에게 고정시키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여성과 함께 온 아이에게 눈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는 대기실 의자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의자와 테이블 사이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몸이 가벼운 생명체가 내는 조그만 발소리가 무거운 대기실을 채웠다. 어린아이였지만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걸어 다녀 크게 방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들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어 보여서 떠들어도 크게 문제 될 것도 아니었다.      


아이가 테이블과 의자를 지나 내가 앉아있는 곳 가까이에 올 때쯤 아이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내가 고개를 확 돌렸다. 그리고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 하나. ‘아니 난임병원에 첫째 아이를 왜 데리고 오는 거야. 둘째 준비하나 보지? 아직 아이 하나도 못 낳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너무하네.’ 아이를 맡길 곳이 오죽 없었으면 저렇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아이를 데리고 왔을까 여성을 안쓰럽고 대단하게 생각했던 나의 마음은 어느 순간 그녀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변해있었다.       


나도 모르게 변해버린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얼마 후 내 이름이 호명되어 진료를 받고 병원을 나설 때까지 나는 그 아이와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했다.     


난임병원에서 긴 대기 시간을 기다리던 또 다른 날. 그날 대기실에는 친구로 보이는 여성 둘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담소를 나누며 귤을 나눠먹고 있었다. 공간에 향긋한 귤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둘 중 한 명이 다른 친구의 진료를 따라와 준 것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들은 앞뒤 순서로 사이좋게 진료실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하며 진료실에 들어갔다. 함께 난임 치료를 하고 있는 친구 사이인 것 같았다. 차례로 진료를 받고 나온 그들은 함께 병원문을 나섰다. 나는 그들이 나간 뒤 병원문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함께 병원에 올 인생주기가 비슷한 친구가 있는 그들이 부러운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거의 바로 내 마음에 올라온 뜻밖의 생각. ‘에구. 지금이야 좋지. 나중에 한 명이 먼저 임신하고 다른 한 명이 시험관 고차수로 올라가면 둘 사이가 그때도 좋을까.’ 거를 틈도 없이 밀려온 날이 선 생각이 내 마음에 상처를 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제도 오늘도 나는 매일 변하려는 나와 변하고 싶지 않은 나 사이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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