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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Apr 24. 2024

난임여성에게 대인기피증이란


난임휴직을 결심하고 초반에는 즐거운 마음이 가장 컸다. 출근을 위해서 7시에는 집을 나서야 했는데 휴직 이후에는 그 시간에 잠옷을 입고 아늑한 집에 안전하게 머물 수 있다니.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안 봐도 되고, 듣기 싫은 이야기 듣지 않아도 되니 그 자체만으로 몸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통근 버스 속에서 아침부터 느끼던 멀미가 먼 과거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고, 난임휴직이라는 기회를 통해 마음과 몸을 건강하게 리셋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설레었다.      


매일 출근할 때는 한 달에 몇 번 나가지 못하는 요가수업에 매일 출석했다. 책을 더 부지런히 읽기 시작했고 일기도 매일 써보고 싶은 마음에 의욕적으로 새 다이어리도 샀다. 유산과 반복된 임신 실패 때문에 마음먹게 된 난임휴직이었지만 왠지 이 기회로 나의 인생도 산뜻하게 새로워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생겼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자유롭게 지내며 몸과 마음을 다잡고 난임 병원에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충분히 쉬어줬으니 더 건강 해졌을 테고 그만큼 바로 임신이라는 좋은 소식이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난임 시술이 자꾸 실패로 종결되자 기다리던 임신 대신 깊은 우울증이 나를 찾아왔다. 깊은 우울에 빠져 허우적대니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이 나에게 보내는 연락 하나하나에 대응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나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비교적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공감해 주는 동료들도 많았고 더불어 이후 소식을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 중 대부분은 나를 마음 깊이 걱정하면서도 혹시 자신들의 연락이 나에게 부담이 될까 주저하는 듯 보였다. 나는 그들이 주는 배려의 마음 덕분에 안전하게 난임시술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난임 시술을 받고 실패를 반복적으로 겪던 날들 가운데 그들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의 안위를 염려해 주는 다정한 마음들이 나를 안아줬다. 그들의 조심스러운 마음 덕분에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내쪽에서 먼저 연락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매일같이 맞아야 하는 주사, 먹어야 하는 약들, 자꾸 나를 실망시키는 결과들로 인해 매일이 크게 들썩였기 때문에 나의 감정이 그들과의 대화 중에 폭발해 버릴까 두렵기도 했다.      


문제는 나를 잘 모르는 애매한 친분을 유지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꼭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전화를 걸어오거나 무례한 연락을 해왔다. 나의 휴직은 어느 정도 더 연장될지, 어떤 상황인지 캐묻고 떠보는 듯한 질문들을 했다. 이런 경우가 몇 차례 반복되니 나도 예민해져서 평소에 하지 않던 날 선 말들을 상대에게 뱉었다.   

  

평소에 연락을 잘 안 하던 후배가 ‘건강을 괜찮으시냐?’고 물어오는 카톡을 하면서 물어오는데 나는 ‘무슨 일 있으시냐?’ 고 딱딱하게 답을 했고. ‘복직은 미루시는 거냐’는 답변에 ‘그때 상황을 보고’라고 짧게 성의 없는 답변을 했다. 나중에 내가 염려돼서 평소 연락하지 못하는 성격에도 무안함을 무릅쓰고 연락했을 후배에게 원하는 정보 그까짓 것 좀 알려주면 어떻다고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게 대응한 게 후회되기도 했지만. 날 선 말로 상대를 밀어내지 않으면 내속이 곪아터질 것 같은 때라 누구를 배려할 여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 번은 직속 선배가 오랜 해외 연수를 마치고 복직하게 되어 직장 동료들이 함께 밥을 먹자는 연락을 해왔는데. 계속 실패하고 있는 임신 시도가 머리와 일상을 꽉 채운 시기에 회사 동료들에게 기쁘고 즐거운 척하며 식사를 할 자신이 없어 난임 시술 중 중요한 시기라는 거짓말을 하고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전화를 피하는 나에게 ‘내 전화 안 받는 줄 알았다’며 ‘지금 그렇지 않아도 회사 동료 누구누구랑 점심을 먹고 있다’는 선배가 또 내 일을 안주삼아 그 자리의 수다를 채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안부도 묻지 않고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하고 급하게 전화를 마무리했던 적도 있다.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는 마음보다 내 이야기를 내 뒤에서 어떻게 할지를 미리 걱정하고 오해하며 나를 점점 깊은 동굴로 밀어 넣고 있었다.     


휴직 후반이 되어가자 임신 시도를 실패한 채로 복직하게 되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난임휴직을 했는데 아이를 갖지 못하고 실패해서 돌아온 사람’이라고 내 뒤에서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난임 시술을 받으며 맞은 주사와 먹은 약들 때문에 몸 이곳저곳에 밉게 붙은 살들 때문에 사람들을 더 피하게 되기도 했다.      


하루는 정말 친한 회사 동기가 내가 사는 동네 주변으로 볼일을 보러 오게 되었다고 며칠 전에 미리 연락을 주었는데도. 약속 당일이 되자 동기를 만날 자신도 없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고 거짓말을 둘러대고 집에 콕 박혀 울기만 하며 하루를 보냈다.      


문제는 회사 동료들 뿐 아니라 친구들과의 만남도 미루게 되고 핑계를 어떻게든 만들어 거절하게 되는 것이었다. 과배란주사를 맞는 일, 난자를 채취하는 일, 이식하는 일등으로 인해 당시의 내 상태가 어떨지 가늠할 수 없어 누군가를 만나는 일을 계획하는 일도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난임시술이 반복되면서 난임시술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나 나의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고 이해해 주는 몇몇 친구들로 인간관계가 좁아졌다.     


난임여성의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혼자 고립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어둡고 우울한 나를 나중에는 아무도 좋아해 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외로움도, 이 기간이 길어지면 나는 어떻게 버텨야 하지 하는 막연한 불안이 깊은 동굴에 있는 나에게 더 어두운 어둠을 가져다줬다. 나는 이 동굴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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