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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May 08. 2024

우리 집 난임의 역사

나의 할머니 복덕



나의 할머니 복덕은 내가 결혼한 지 2달이 막 지났을 때부터 임신 소식을 물었다. “할머니 벌써 무슨 임신이야! 우리가 알아서 해!” 그때마다 할머니에게 핀잔을 주고 할머니의 말을 흘려버렸다.  

    

그 뒤로 결혼 2년 차, 3년 차를 지나 4년 차가 되면서 내가 혼자 본가로 내려갈 때가 전화로 안부를 전할 때면 이상하리만치 눈치를 보며 손주 사위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를 낳지 않아 내 남편이 나에게서 등을 돌릴까 봐 할머니가 괜히 마음을 졸였던 건가 짐작했지만 여전히 할머니의 말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했다. 임신을 재촉하는 할머니가 답답해서 그 모습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글쓰기 수업의 과제로 할머니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통해 할머니의 인생에서 ‘임신’ ‘출산’ ‘아들’이 자신을 살린 구원자였다는 사실을 목격한 후 나는 할머니의 ‘임신 걱정’을 함부로 판단 평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94년간 살아온 나의 할머니를 ‘임신’ ‘아들 출산’이 살렸다는 사실을, 그 일이 그녀에게 깊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애기 안 생기는 것이 내 잘못인 줄만 알았제.”

“느그 할아버지한테 시집가고 9년 동안 애기가 안 생기드만. 그렇게 9년 만에 느그 아빠를 낳았어야.” 할머니를 인터뷰하며 듣고 옮겨 적은 할머니의 인생은 기가 막혔다.      


18의 나이에 시집을 간 나의 할머니 복덕은 손이 마를 날 없이 매일같이 개울가를 다니며 식구들의 빨래를 해야 했고 밥을 지어야 했고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성질 고약한 시어머니, 무심하고 일밖에 모르는 남편 때문에 힘든 내색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7년간 매일 고단한 노동에 시달렸다. 작은 몸으로 온 식구를 먹이고 입혔으면서도 그 공은 인정받지 못했고 할머니에게는 ‘임신 못해서 대를 잇지 못할 여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아흔의 나이를 훌쩍 넘긴 할머니는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고개를 내젓는다. “그때 내가 내 남편 새장가보내야 한다는 말에 싫다는 말 한마디도 못했다. 그때는 다 내 잘못인 줄만 알았다잉.” 그렇게 할머니는 결혼 8년 만에 새 옷을 지어 자신의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새 장가를 보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살던 본가로 소박맞고 쫓겨나듯 시가를 떠났다. 할머니는 그렇게 소박맞고 돌아온 친정에서 숨 죽어지내며 얼마 후 새장가를 간 할아버지가 새 아내를 통해 딸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 소식에 가슴이 터지듯 아픈 마음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할머니를 보러 잠깐 들른 할아버지와의 하룻밤으로 아들이 태어났고 후에 그 아들은 언니들과 나를 낳았다.      


당시 아빠를 임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 뽀얗고 예쁜 아빠를 낳고 자부심과 행복감으로 가득 찼던 할머니의 증언에서 아들이라는 존재가 당시의 할머니를 살게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시가로 돌아가 아빠를 낳은 이후 할머니의 기나긴 고생과 노동의 역사는 이후 60년 이상 계속되었고, 할머니에게서 아들을 낳았으면서도 할아버지는 계속 밖으로 나돌기 바빴고 할머니는 뒤치다꺼리와 마음고생으로 쉴 새 없었지만. 아들이라는 삶의 지푸라기를 짚고 오랜 자괴감에서 일어나 삶을 다시 이어갔을 당시의 할머니의 마음을 듣고 있노라면 긴 고생이 예고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어도 할머니는 임신과 출산을 기꺼이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갔을 때 휠체어에 앉은 복덕이 다시 저 말들을 꺼냈다. “나는 애기 안 생기는 것이 여자 잘못인 줄만 알았다잉.” “내가 느그 할아버지 새장가를 내 손으로 보내고.” “애기 못 낳는 설움이.” “여자가 애기를 벨 수 있는(임신할 수 있는) 때가 또 따로 있는 줄도 몰랐제.”      


손녀인 내가 아이를 못 나아서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살까 봐 걱정이 되다가 자신의 지난 설움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울먹거린다. 할머니는 모든 말을 끈적하게 꾹꾹 눌러 내 마음에 쏟아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아가, 너는 꼭 엄마로 불려라잉.”      


오랜 노동으로 두꺼워진 손마디로 내 양손을 잡고 비벼주며 할머니가 건넨 그 말이 70년 전 아이가 생기기 않아 마음 고생하던 복덕에게서부터 떠나온 것 같아 마음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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