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mang May 29. 2024

난임 여성인 나를 보호하는 방법

모든 과정에 너무 열심히 임하지 않기


난임병원을 옮기면서 굳게 다짐했다. 난임 시술을 하면서 임신이 잘된다는 이것저것을 모두 해가며 너무 열심히 임하지 않는 것이 난임과정을 지나며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공부나 취업 준비, 회사 업무 같은 것들은 내가 어느 정도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나은 결과를 볼 수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너무 다르게 임신이라는 것은 내가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었다.     


임신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고, 임신에 좋은 운동이나 생활 습관으로 나를 정비하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임신이 되지 않을 때마다 내가 지금보다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해지는 마음과 허무한 마음을 나 스스로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난임병원을 옮기고 인공수정 시술을 앞두며 이렇게 다짐했다. 해야 할 것들은 모두 하되, 너무 열심히 임신에만 열중하지 않을 것. 임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 다짐은 꼭 지켜야겠다 생각했다.     


사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마음먹은 대로 모든 일이 되지는 않는 법.     


나는 새롭게 만난 의사 선생님의 조언으로 인공수정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난임 시술을 시작하면서 생리 주기에 맞춰 과배란 주사를 맞는 일을 가장 처음 시작했다. 평소 한두 개가 배란되는 여성의 배란사이클이 아닌 난소를 과자극시켜 난자 배란을 많이 시키는 과정이다. 나는 이 과정을 진행하면서 복부 통증, 복부 팽만, 두통, 피로, 어지러움 등의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각종 증상과 타인의 성공 사례에 일희일비하지 않기 위해 인터넷 난임카페에 자주 들어가 보지 않기로 결심했던 나도 그때부터 매일 카페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난소가 과자극 되는 중 오늘 증상에서 멈추지 않고 이 과정에서 여성이 하지 않아야 할 것과 해주면 좋은 것들을 나도 모르게 접하게 되었다.     


갑자기 두통이 생기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증상에도 불편함과 걱정을 하는 게 대부분의 사람인데. 태어나서 처음 맞아보는 주사와 처음 겪어보는 통증, 증상들에 겁이 나서 더 강박적으로 정보를 찾아봤던 것 같다.     


"과배란 주사 첫날인데 원래 이렇게 배가 아픈가요?" "과배란 주사가 몸에 안 맞나 봐요 두통에 복통에 너무 힘들어요." 카페에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겪었던 과배란 주사 부작용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과배란 주사가 저에게 안 맞는 걸까요? 병원에 이야기해서 주사를 바꿔야 하는지 너무 힘들어요." 어떤 이는 복부 통증이 너무 심하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 병원에 이야기해서 약을 바꿔야 하는지도 이야기하고 있었다. "과배란 증상 확인 부탁드려요. 과배란 주사 투여 00일 차에 이런 증상 정상인가요?" 카페에는 여러 사례와 질문, 답변이 달려있었지만 내가 지금 겪는 불편함이 병원에 이야기해야 하는 정도인지 남들도 다 겪고 있는 정도인지 글로는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병원은 집에서 왕복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라 약을 바꾸려고 해도 과배란 주사 중 생긴 두통과 피로를 이기고 병원까지 가느니 주사를 그냥 유지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과배란 주사 부작용이 궁금해서 카페를 뒤지기 시작하니 순차적으로 다른 정보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공수정 1차 만에 기적처럼 임신된 꿀팁 공유 드려요." "난임 0년 차 시험관 1차 만에 성공한 팁 공유합니다." 인공수정 과배란 잘되기 위해 매일 만보 이상 걷기를 인증하는 글들, 난자의 질을 좋게 하는데에 좋다는 지중해식 식단을 지키는 인증 글과 사진 등을 취업 성공 수기처럼 적어놓은 글들이 특히 많이 보였는데. 그들의 글을 읽으니 체크리스트를 만들어가며 오직 임신을 위해 일단 후회 없이 노력해 볼까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선택이 나중의 나에게 좋을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바뀌던 날이었다.     


난임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친구들에게 드러내고 책 하나를 추천받았다. 난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헬로 베이비>(김의경, 은행나무)였다. 난임 관련 글을 많이 접하지 못하던 때라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각기 다른 이유로 난임이라는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다 소설 중간중간에 나오는 소설 주인공들이 임신을 하기 위해 먹었던 영양제, 했던 노력들이 나오는 부분에 내가 밑줄을 치고 별표를 해놓고 페이지를 접어놓는 모습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 혼자 빵 터져서 웃다가 나중에는 괜히 눈이 시큰해졌다.      


문학작품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혹시나 나에게 도움이 될 정보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던 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너무 열심히 임신에만 집중하지 말자 여러 번 다짐하지만, 아마 나는 임신 소식을 들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과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 많은 난임 여성들이 그렇듯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