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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Jun 19. 2024

공장형 난임병원은 너무 차가워

난임여성에게 친절한 병원 찾기 1



처음 난임검사를 받았던 곳은 대형 난임병원이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고 이미 대형 병원 체인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던 곳이라 병원은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하는 생각이 담긴 놀라움의 눈빛을 나누며 병원으로 들어섰다. 병원은 철저하게 분업화, 시스템화되어 있는 곳이었다. 처음 이곳에 오면 병원 전용 어플을 깔아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 들어서면 병원 와이파이에 내 핸드폰을 연결한 후 병원 어플에서 환자 대기번호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초음파, 혈액 채취 등 각종 검사는 병원 바닥에 표시된 각기 다른 색의 선을 따라가면 각 담당자를 통해 받을 수 있었다. 병원의 큰 규모와 착착 진행되는 시스템과 AI처럼 움직이며 환자들을 인솔하는 담당자분들의 믿음직한 태도에 ‘역시 큰 병원으로 잘 왔어.’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예약해서 만나게 될 의사 선생님은 난임카페와 블로그를 통해 폭풍 검색을 해서 소중하게 알게 된 분이었다. 난임 여성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마음의 부침을 털어놓고 위로를 주고받는 인터넷 카페인 난임카페에서 의사, 병원의 정보를 초성으로 교환하는데(예를 들면 김병원을 ㄱㅂㅇ이라고 하는 등) 그 정보로는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어 따로 글쓴이에게 쪽지를 보내거나 같은 초성을 쓰는 블로그의 글과 매치해서 정보를 찾아보거나 하는 방식으로 자세한 내용을 확인했다. 나의 경우에도 이런 방식으로 정보를 겨우 알아냈고 함께 난임 과정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물어 해당 선생님이 정말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선생님은 이미 난임 여성들 사이에서 손재주가 좋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카페에는 그의 진료, 시술 후기가 꽤 많았다. “처음 뵈었는데 반말을 하시더라고요.” 하는 식의 평도 있었지만 “환자들 대기가 정말 많아요.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래도 실력이 좋으시니 이번에는 꼭 성공하겠죠.” 하는 고생스러움과 단단한 의지가 담긴 글들과 “OO 선생님반 임신 성공해서 드디어 졸업합니다. 지방에서 계속 실패하다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곳에 왔는데 너무 기뻐요.” 하는 간증 글들이 많았다. 나는 고생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긴 대기시간도, 반말하는 것쯤은 괜찮다며 나를 다독였다.      


난임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2주가 2달처럼 느껴졌다. 난임 병원에 오기 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병원을 꽉 채우고 있는 이들을 마주하니 내가 제일 늦게 시작한 듯한 느낌이 들어 하루하루가 아깝게 느껴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2시간이 넘는 긴 대기시간을 지나 드디어 담당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환자들이 많으셔서 그런지 마이크를 사용해 말씀하셨다. 그는 당장 본인이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집이 여기에서 먼데(병원은 서울, 집은 경기도) 집 가까이에 있는 병원에서 시술해 보고 안되면 오시지 왜 벌써 여기로 오셨어요?” “저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 거예요?” 나는 최대한 실패하지 않고 고생 덜하고 빨리 임신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씀드렸고 인터넷과 지인 추천으로 오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목을 아끼려는지 목소리에는 최대한 힘을 풀고 반말을 섞어가며 말했는데, 자신이 궁금한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빨리빨리 처리해야 하는 일을 다루듯 나의 검사 결과를 차분한 설명 없이 간단하게 통보했다. 그리고 “인공수정은 확률도 낮고 시간만 보낼 바에야 바로 시험관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하고 물었다. 당시 나는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이 뭐가 다른 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여서 “아 그런가요? 제 상태가 그렇게 안 좋은가요?” 하고 다시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시술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 바쁜 티를 팍팍 내며 “어떤 시술부터 하고 올지 생각해 보고 정해서 오세요.” 하고 말을 마쳤다.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 건가?’ 하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난소 상태가 좋지 않다면 난임진단서부터 일단 받아서 남편과 난임 휴직에 대해 상의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생각보다 기꺼이 난임진단서를 적어주겠다고 했다. 정작 시술에 대한 질문을 해보지도 못한 채 어어어 하는 사이에 그렇게 기다리던 첫 진료가 끝났다.      


진료실을 나와 대기실에 앉아 인터넷 검색창에 ‘인공수정, 시험관 시술 차이점’ ‘인공수정, 시험관 시술 과정’ 등을 검색했다. 진료실에서 상세한 설명과 진료 방향을 잡아서 나올 줄 알았던 나는 결국 나 혼자 정보를 찾아보고 결정해야 하는 외로운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생님의 스타일이 원래 이렇구나’ 하며 ‘실력만 좋으면 되지’ 하는 생각에 다음 진료 일정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인공수정은 남성의 정자를 약품처리해 활성화시키고 여성의 자궁에 인공적으로 넣어주는 시술방법이었다. 여성의 질을 지나가며 정자들이 죽는 것을 예방할 수 있어 임신의 확률을 높여주지만 정자가 난자에 들어가는 것, 착상하는 것 등은 인공적으로 해줄 수 없어 사실상 자연임신과 비슷한 수준의 성공률을 보인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성은 난자를 과하게 배란시키는 자가주사를 맞으며 배란되는 난자의 수를 늘리는 과정을 거친다. 그에 비해 시험관 시술은 여성의 난자를 과배란 시켜 몸 밖으로 채취한 후 정자를 직접 난자에 수정시켜 배양시킨 후 여성의 자궁에 직접 넣어주는 시술이다. 이 시술은 인공수정보다 큰 용량의 과배란 주사, 난소를 주사기로 찔러 난자를 하나하나 뽑아내는 과정, 착상과 임신 유지를 위해 임신 확인 후에도 2달 이상 주사를 맞아야 하는 과정 때문에 여성의 몸에 큰 무리를 주게 된다. 병원에서 길게 설명해주지 않으니 직접 자료를 찾아본 결과 시간 낭비 하고 싶지 않으면 시험관 시술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가면역질환 때문에 오래 고생했던 나는 최대한 주사를 조금 쓰는 시술부터 가능할지 알고 싶었지만 알 방법이 없었다.     


드디어 다음 진료일이 되었다. 첫 진료 때 받아갔던 난임진단서를 회사 인사과에 서류를 보여주며 난임 휴직에 대해 문의하니 난임 시술 기간이 진단서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예를 들면 24년 6월 00일~25년 5월 00일) 난임 시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시술을 받을 기간을 미리 적어내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 다시 물어보니 휴직 발령을 내려면 난임 시술 기간이 반드시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답답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경험이 많으시니 이런 요청도 경험해 보셨겠지 생각하고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회사에서 난임진단서에 난임 시술 예정 기간을 적어주라고 요청하는데요. 진단서 수정 발급이 가능할까요?” 조심스러운 나의 질문에 그는 목소리를 갑자기 높이며 “내가 당신이 언제 임신이 언제 될 줄 알고 시술 기간을 적어주나?” 마이크를 뚫고 나오는 호통과 함께 섞인 반말에 너무 놀라서 마른 손을 괜히 비비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도 인사과에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휴직을 내려면 시술 예정 기간이라도 나와야 한다고 하네요.” 내가 난감해하니 그는 다시 목소리를 높여 “도대체 누가! 그 사람은 임신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네. 진단서는 이렇게 막 다시 써주고 하는 게 아니에요.” 하며 씩씩거리다가 휴직 예정 날짜를 물어보더니 다 써놨으니 밖에서 받아가라고 했다.      


진료실 밖에서도 그의 호통이 들렸을까 주변 눈치를 보며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순간 나는 이 병원, 담당 의사 선생님을 선택한 내 판단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각성을 했다. 평소 다른 이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내가 이곳에서 궁금한 것, 찝찝한 것들을 빠짐없이 알아가며 시술에 임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에게 어떤 시술부터 해보는 것이 나를 위한 일인지 충분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다른 곳은 없을까. 등 떠밀려 하게 되는 결정 말고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고 윽박지르지 않고 기다려주는 따뜻한 다른 병원, 다른 선생님을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납 창구에 가서 새로 발급된 진단서를 받고 각종 검사 결과지와 의무기록을 발급받아 병원문을 나섰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아야지. 다른 병원을 찾아가면 다시 다음 생리일까지 나는 아무 시술도 시도해보지 못하며 시간만 보내겠지만 난임여성이라는 것도 서러운데 호통까지 들어가며 이곳에서 버텨야 하는지 생각할수록 서러웠다. 눈물이 찔끔 났다.      


나는 나에게 맞는 병원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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