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mang Jun 26. 2024

계획형 인간의 기나긴 임신준비


신혼 생활 2년을 보내고 드디어 임신 준비 결심이 섰던 어느 날(2022년 10월) 맘카페에 가입해서 임신 준비를 위해 뭘 해야 하는지 검색하기 시작하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묻기 시작했다.      


한 친구는 임신 준비 전 풍진 예방주사를 맞아두면 좋다고 했다. 주로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풍진은 임산부에게 발병할 경우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태아에게 선천성풍진증후군을 일으켜 실명 등의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풍진 예방접종을 맞으면 3개월 동안은 임신 시도를 하면 안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괜히 마음이 급해져 발을 동동 굴렸다.(2022년 10월)     


풍진 예방접종은 했고 이제 뭘 해야 하나 ‘임신 준비 체크리스트’, ‘임신 준비할 때 해야 하는 것’ 등으로 검색하던 중이었다. “임신 전 치과에 꼭 다녀오세요.” 하는 맘카페 선배님의 글을 읽었다. 나는 임신하면 충치 치료를 받을 때 마취주사를 못 맞는 건가? 생각하며 ‘임신 전 치과 진료’ ‘임산부 충치’ 등으로 검색해 봤다. 그 결과 충격적인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 바로 임신 중 치주질환이나 충치가 있으면 입속 미생물이 자궁으로 옮겨가 조산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치과가 무서워서 오랫동안 참고 있던 충치 1개를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지만 충격적인 기사를 보고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치과 공포증이 있는 30대 후반 여성인 나는 눈물을 여러 차례 펑펑 눈물을 흘리며 치료를 받았다. 깊은 충치 때문에 신경치료까지 받아야 했던 나는 ‘충치로 인한 조산 위험성’을 찝찝함 없이 깔끔하게 날릴 수 있었다.(2022년 10월~12월)   

   

임신 준비 체크리스트를 하나 둘 지워나가는 게 아니라 사실 임신 전 해야 할 일들이 하나 둘 쌓이고 있던 그때 ‘이럴 거면 건강검진을 해서 내 몸의 문제점을 싹 다 알아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혈액검사, 위내시경, 초음파 검사 등 종합건강검진을 받았고 그 결과 큰 문제는 없었다. (2022년 11월) 이제 임신을 해도 나로 인해 아이가 잘못될 일은 없겠지? 생각했다.      


그래도 더 건강한 몸으로 임신을 하고 싶어 자궁을 따뜻하게 해주는 한약을 먹고 매주 서울에서 인천까지 다니며 침을 맞았다.(2022년 12월~2023년 3월) 자연스레 자가면역질환(두드러기)도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더불어 일주일 3번 이상 땀이 흠뻑 나는 운동을 해서 단단한 몸을 만들어 나갔다.(~2023년 4월)     


그렇게 큰 마음을 먹고 자연임신을 시도해 첫 임신에 성공했지만 유산으로 종결되었다.(2023년 4월, 임신 5주 차 유산) 회사에서 하혈이 멈추지 않아 찾아갔던 산부인과에서는 안타깝게도 유산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나는 이미 임신 준비 기간으로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왔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 이렇게 여쭤봤다. “선생님. 그럼 이 하혈 또는 생리가 멈추면 바로 다음 임신을 시도해도 되나요?” 선생님은 차분하고 친절하게 나를 진정시키시며 말씀하셨다. “저는 되도록 2~3개월은 몸조리를 하신 후 임신을 시도해 보시라고 권장합니다. 그리고 이번 임신이 자궁 외 임신일 경우 환자 본인에게도 위험할 수 있으니 호르몬 수치가 잘 떨어지는지도 계속 관찰해야 하고요.”      


선생님의 말씀에도 그날의 내 머리에는 종결된 임신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하고 나의 책임을 묻는 질문들이 내 머릿속에 끊임없이 맴돌았다.      


‘이제 내가 뭘 해야 하지?’ 눈을 감고 상자 안을 뒤져서 물건의 이름을 맞춰야 하는 듯한 답답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난임병원에 찾아가 난임검사를 받게 된 것이었다. 난임검사 결과 나의 난소 상태가 좋지 않다는 나쁜 결과를 듣기는 했지만 무엇이 문제였는지 정확하게 들은 것 같아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2023년 5월) 배우자의 검사 결과에 큰 문제가 없어 우선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진짜 내가 문제였구나.’ 하는 쓸쓸함과 한꺼번에 밀려오는 지난 유산에 대한 큰 죄책감이 나를 덮쳤다. 다행한 마음과 이상한 외로움, 급해지는 마음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작년에 이미 종합건강검진을 받기는 했지만 몇 개월 사이에 몸에 이상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생겼다. 지난 검진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았고 비용 문제도 있었지만 종합건강검진을 다시 받았다. 혹시 모를 문제로 다시 만날 임신이 잘못될 일은 예방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대장내시경도 포함해서 빠짐없이 체크하고 싶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시 받은 검진에서는 갑상선 결절(혹)의 모양이 좋지 않다는 의견, 대장내시경에서 선종(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혹) 발견 및 제거라는 이슈가 생겼다. 대장 선종은 이미 내시경을 하며 제거해 다행이었지만 갑상선 결절은 조직검사라는 추가 검사를 해야 했다.(2023년 9월)     


갑상선 조직검사는 얇은 침을 목으로 넣어 갑상선까지 찔러서 조직을 뽑아내 검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개인병원의 후기가 좋아 그곳에 찾아가서 검사를 받았다. 길고 두꺼운 바늘이 마취연고만 바른 피부를 지나 갑상선을 찌른다고 하니 겁났지만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개운할 거라 생각했다. 검사 후 2주가 지나 결과를 들으러 갔다.  절망스럽게도 지난번에 한 검사에서 검체가 충분히 추출되지 않아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 순간에도 나의 소중한 난자는 배란되고 있고 난소 나이는 더 들어가는데.’ 바닥을 치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 영상에만 눈을 두고 “그래도 모양이 나쁘지 않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라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했다. 병원을 나서는데 내가 낸 검사 비용,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화가 식지 않았다.(2023년 10월)     


나는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다른 병원으로 옮겨 검사를 다시 받아보기로 했다. 예약을 위해 전화를 했더니 당장 가까운 날은 예약이 꽉 차있어 2주 후로 예약을 잡았다. 진료 당일 초음파를 통해 내 갑상선을 보신 선생님은 “혹의 모양은 나쁘지 않지만 색이 좋지 않아 조직검사를 해야겠다.” 고 말씀하셨다. 이전 조직검사는 얇은 바늘로 했던 비교적 간단한 검사인데 반해 이번에 해야 할 검사는 총생검이라는 목에 극소마취를 하고 ‘탕’하는 소리를 내며 갑상선으로 날카로운 갈고리 같은 것으로 갑상선 혹의 조직을 떼어내는 검사라고 했다. 내 혹의 경우 조직이 물렁해서 잘 떼어지지 않아 총 4번의 시도 끝에 겨우 조직을 떼어낼 수 있었다. 다시 2주의 기다림이 지나 검사결과를 듣게 되었는데 그 결과 나의 혹은 암으로 볼 수 있는 혹이라고 했다. 아직 크기가 2cm가 되지 않아 갑상선 제거 수술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셨는데. 아무리 작더라도 암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찝찝하고 불쾌하고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난임병원을 다니며 인공적으로 임신을 준비해보려 한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은 “갑상선암은 예후가 좋고 아직 크기가 작고 지금 환자분 나이도 있으시니 어서 임신을 시도해 보라”라고 말씀하셨다. 목에 작은 암을 품고 그렇게 나의 난임시술 여정은 시작되었다.(2023년 10월)

이전 15화 공장형 난임병원은 너무 차가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