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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Jul 03. 2024

나의 마지막 난임병원, 그 첫 만남

난임여성에게 친절한 병원 찾기 2


15화. "공장형 난임병원은 너무 차가워"에 이어


https://brunch.co.kr/@massi86/355






대형 난임병원의 불친절함과 차가움에 뜨겁게 데인 나는 작지만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병원으로 옮기고 싶었다. 물론 ‘친절하지만 실력은 없는 곳에서 성과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이 병원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친절하고 실력도 있는 병원’이라는 곳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만나본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은 내가 환자 의자에 자리를 붙이고 앉기 바쁘게 진단하고 처방을 내렸기 때문에 다른 난임병원이라고 크게 다를까 생각했다.     


난임병원을 선택하는 지금의 내 결정이 미래의 나에게 후회와 더 큰 슬픔을 안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눈이 빠져라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난임 관련 인터넷 카페를 뒤졌다. ‘시험관아기 대표카페’ ‘불임은 없다. 아가야 어서 오렴’ 등 실제 난임시술을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카페에서 ‘경기도 OO시 난임병원 추천’ ‘서울 난임병원 추천’ ‘OO난임병원 후기’ ‘OO 병원 OO 선생님 후기’ 등의 키워드를 입력해 옮길만한 병원의 정보를 찾아나갔다.      


이전에 비해 난임시술을 주변에 오픈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주변에 알리지 않고 시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개인의 살아있는 경험담과 생생한 후기를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익명의 글쓴이가 적은 초성 힌트에 의지해 병원과 의료진의 정보를 취합할 수밖에 없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만나볼 수 있는 난임 동지들이 절실히 그리워지는 마음이었다. 누군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 이곳으로 옮기면 100프로 금방 임신될 거야.” 또는 “나 믿고 이곳으로 가. 여기가 너에게 훨씬 잘 맞는 곳이야.” 하는 확실한 조언과 예언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난임 휴직을 내야 했기 때문에 주변에 난임시술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열어놓고 보니 그간 알지 못했던 주변 친구들, 동료들이 경험했던 난임병원 정보와 난임시술 과정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그 자체만을 부러워하느라 그 결과 이면에 숨은 그들의 노력을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오랜 기간 시술을 하며 힘들었을 텐데도 나를 마주할 때마다 해사하게 웃어주던 친한 동생 OO을 향한 나의 미안함이 특히 컸다. 그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부침이 있었을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OO은 자신의 경험을 나에게 가감 없이 꺼내어 보여줬고 다녔던 병원에 대해서도 조언해 주었다. 대형병원은 아니지만 난임카페와 인터넷 검색창을 통해 검색해 본 결과 작지만 친절하고 실력이 좋은 병원이라는 후기가 대부분임을 확인한 후 이 병원으로 옮겨보기로 결정했다.      


세심하고 배려심이 깊은 OO은 나의 결정을 듣고 혹시나 이 병원에서 내가 좋은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오히려 자신이 더 염려하는 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귀한 정보를 준 그녀가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는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카페의 글 하나, 블로그의 글 하나에 적힌 유명 병원과 선생님의 초성에 의지해서 정보를 수집하던 나에게 경험자의 살아있는 이야기 하나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는 사실을 동생에게 전했다. 추천받은 병원이지만 결국 선택은 환자인 내가 한 것이니 부담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난임병원을 결정했다.      


병원은 집에서 편도 1시간 30분(경기도 버스 배차 간격에 따라 가끔 2시간 정도 소요) 걸리는 곳이었다. 병원 대기시간이 길기로 워낙 유명한 병원이라 단단히 마음을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접수대에 이전 병원에서 가져온 의무기록과 나팔관이 막혀있는지 여부(정상 나팔관의 경우 양쪽 2개가 있는데, 한쪽이 막혀있거나 양쪽이 막힌 경우가 있어 난임 원인을 파악할 때 필수적으로 조영술을 통해 영상을 찍는다)를 촬영한 CD를 제출하고 대기실에 앉아 나의 차례를 기다렸다. 이 병원은 처음 찾아온 초진 환자를 하루 몇 명 이내로 예약을 받고 그 환자들에 한해 1시간 정도의 시간을 소요해 초진을 한다고 했다. 나는 잠깐의 대기 이후 초진을 위한 진료실에 들어섰다.      


나를 반겨주신 분은 앞으로 내가 진료를 받을 선생님이 아니라 오늘의 초진만 대신하실 거라고 본인을 소개하셨다. 등받이가 없는 불편하고 빨리 일어나야 할 것 같은 환자용 의자가 아니라 등받이가 있는 편안한 의자에 안내를 받아 앉았다. 선생님은 제출한 나의 서류를 하나 둘 넘겨가며 난임병원에서 난임검사를 받기 전 나의 상황, 유산이나 출산 이력, 평소 먹고 있는 약, 현재 몸에 불편함은 없는지, 이전에 겪었다고 하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대한 자세한 경과, 현재의 증상, 가족들의 병력, 수술 경험, 이 병원에 오기 전에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이곳으로 옮기게 된 이유가 있는지, 그 외 시술과정에 대한 차이점 설명, 시술에 대해 궁금한 점과 원하는 것이 있는지 등을 장장 1시간에 걸쳐 질문하시고 나의 응답을 차분하게 하나하나 듣고 특정 기간에 대한 의문점, 추가 질문 등을 하시면서 나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나가셨다.      


이야기 중간중간에는 나의 진료가 너무 길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 일부러 대답을 어느 정도 생략하기도 했고 엉덩이를 의자에서 들썩거리며 오히려 내가 빨리 나가봐야 하지 않나 초조해하기까지 했는데. 선생님은 나 이외에 봐야 하는 다른 환자는 없는 것처럼 차분하게 중간중간 빠진 정보를 채우기 위해 추가 질문을 하시고 내가 답변을 할 때에는 말을 끊지 않고 겁을 주지도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들을 이끌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차분한 질문과 적극적인 리액션에 그간 마음에 가지고 있었던 난임의 상처를 상당 부분 치유받은 듯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진료 막바지에 이르러 선생님은 마지막 질문을 하셨다. “이외에 혹시 병원에 바라시는 거나 궁금하신 것 있으실까요?”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혹시 시험관 시술을 바로 시작하는 것 말고 몸에 최대한 자극이 덜 가는 시술부터 해볼 수 있을까요?” 내 난소 상태가 감히 그런 것을 바라도 될지 몰라 주저하던 요청이었다. ‘병원 입장에서는 시술비가 비싸고 확실한 결과가 있는 시술을 먼저 권해줄지도 몰라.’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머리에 이런 생각으로 마음의 완충 장치를 만들며 돌아올 답변을 기다렸다. “물론이죠.” 뜻밖의 대답. 그리고 더 뜻밖의 말. “당연히 환자분께서 원하시는 방향부터 하실 수 있도록 적당하고 부담이 덜 가는 방식으로 고민해서 제안해 드릴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보면 당연히 환자가 기대할 수 있고 병원에서 당연히 해줘야 하는 답변이지만 대부분의 병원은 난임 여성들에게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의료진에게 완전히 기댈 수밖에 없는 많은 난임여성들은 오늘도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좋은 결과를 위해 이 정도는 감내해야지 하며 마음을 깎이며 병원을 다닐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친절에 내가 크게 감동했다는 사실에 씁쓸하기도 잘 찾아왔다는 마음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첫 난임병원 방문 이후 두 번째 병원을 찾아오기까지 보낸 5개월이 아깝지 않다고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마지막 난임병원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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