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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Jul 10. 2024

인공수정의 시작(자가주사 받아오기)


난임병원 초진을 마치고 다음 생리일을 기준으로 두 번째 진료날짜를 잡았다. 임신 준비 전에는 한 달에 한 번 하는 생리주기가 과하게 빨리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며 자주 원망했는데. 임신까지의 시간을 더 단축하고 싶고 임신 성공률을 높이고 싶은 지금은 ‘생리는 왜 한 달에 한 번밖에 하지 않는 것인가!’ 하며 원망했다. 그렇게 다음 생리가 시작되고 삼일째가 되어 병원을 다시 찾았다.      


다음 달에 배란이 예정되어 있는 난자들을 자궁 초음파로 보기 위해서는 생리혈이 멈추지 않은 생리 중에 진료를 잡고 내원해서 초음파를 봐야 한다고 했다. 생리 중 질을 통해 자궁 초음파 기계를 넣어하는 진료가 난임 시술의 1차 난관이었다. 한참 생리통에 시달리는 중에 가깝지 않은 병원까지 찾아가야 하고 산부인과 굴욕의자에 앉아 자궁 초음파를 봐야 한다니. 난임시술을 받으셨고 지금도 하고 계시는 난임여성들에게 존경심이 생겼다.      


두 번째 진료부터 나를 봐주실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 오십 대쯤 되어 보이시는 선생님은 부드러운 말투와 목소리로 나의 초진 내용, 추가 피검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현재 나의 상태를 설명해 주셨다. 나팔관 2개 중 막힌 곳이 없으며 난소 나이를 나타내는 수치도 심각하게 떨어져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말씀해 주셔서 안심이 되었다. 병원을 옮겼을 뿐인데 바로 시험관을 해야 하는 심각한 상태에서 그래도 괜찮은 상태로 순간 바뀐 것 같아 마음이 이상했다.      


선생님은 자궁 모형을 보여주시면서 몸에 무리가 덜 가는 인공수정을 하게 되면 어떤 과정을 통해 임신이 되는 건지, 시술 방법은 어떻게 되는 건지, 주사는 얼마나 맞으면 되는 건지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최대 3번이라는 제한을 두고 인공수정을 해본 후 잘 되지 않으면 시험관 시술로 넘어가는 게 어떻겠냐고 나의 의견을 물으시며 조심스럽게 제안해 주셨다. 그리고 시험관 시술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인터넷에서 경험자들이 해주는 설명 말고 의료진에게 제대로 듣는 첫 설명이었는데. 차분히 서두르지 않고 신경질적이지도 않은 설명 덕분에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안내해 주신 대로 나만 잘 따라가면 임신은 그렇게 멀리 있는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네. 선생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무한 신뢰가 생긴 나는 선생님의 제안대로 인공수정을 우선적으로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날 바로 며칠 후부터 맞아야 하는 자가 주사를 처방받았고 간호사 선생님에게 주사를 맞는 방법, 보관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피하지방에 직접 놓아야 하는 이 주사는 평소 1개에서 2개 정도 배란되고 끝나는 배란 사이클을 인공적으로 자극해 난자를 과배란 시키는 주사인데. 냉장보관을 했다가 매일 아침 일정 시간에 꺼내서 내 배에 직접 주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주사를 아프지 않게 맞기 위해 사선으로 주사 바늘을 찔러야 한다는 인터넷상의 이야기도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 본인의 시험관 시술 경험을 봤을 때 뱃살을 세게 꼬집은 후 바늘을 직각으로 넣어야 아프지 않게 주사를 맞을 수 있다고 하셨다. 병원에서 가끔 맞아야 했던 바늘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적도 없거니와 건강검진 채혈을 할 때에도 항상 눈을 찔끔 감고 고개를 돌렸던 내가 두 눈을 부릅뜨고 내 배에 직접 주사를 놓아야 한다니 막막했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제 진짜 난임 시술 시작! 병원에서 빌려주는 보냉백에 처방받은 주사와 얼음팩을 넣고 병원문을 나섰다.      

집에 돌아와 날짜에 맞춰 그날 병원에서 받아온 주사와 종이들을 꺼냈다. 주사는 냉장실 음료칸에 바로 꺼내서 쓰기 좋게 넣어놓았다. 음식과 음료수만 넣어두던 냉장고에 주사가 들어가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이 주사를 맞아야 할 날짜와 주사 용량을 표시해 준 달력 같은 종이를 식탁에 꺼내두었다. 그리고 핸드폰에 날짜별로 알람을 맞췄다. 그 시간에 주사를 놓치면 다시 다음 달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찔해서 같은 날짜 같은 시간 앞뒤로 한 개씩 더 알람을 맞췄다.      


긴 병원 대기 시간과 이동 시간 때문인지, 생리통 때문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그날은 끙끙 앓으며 잠을 잤다. 그날 꿈을 꿨는데 병원에서 맞으라고 했던 주사, 먹으라고 했던 약을 놓쳐버리는 끔찍한 꿈이었다. 꿈속의 나는 이렇게 중요한 일을 까먹어버리는 생각 없는 사람이라며 나를 자책했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은 어떻게 이걸 잊을 수 있냐며 한숨을 쉬며 잔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난감해했다. 자연임신을 더 시도하며 기다릴 자신이 없어 나의 주장으로 시작된 난임시술인데 내 잘못으로 한 달을 다시 날려버리다니 허탈하고 창피했다. 이 생각이 내내 꿈속에서 나를 괴롭게 했다.      


끙끙 앓고 괴로워하며 꿈에서 깼다.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니었는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눈을 뜬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직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인데 이미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난임시술을 하기로 한 게 정말 잘한 걸까, 아니 임신을 하기로 한 게 잘한 걸까.      


어느 순간 임신에 대한 간절한 바람보다는 난임여성이라는 상태를 벗어나고 싶은 처절한 괴로움이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눈을 뜬 김에 침대에서 일어나 식탁 의자에 앉았다. 주사 맞는 일정이 적힌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친구가 선물해 준 탁상 달력을 가져와 그 달력에 주사 일정, 먹어야 하는 약, 다음 진료일자를 꼼꼼하게 적어두었다. 강조하기 위해 파란색, 빨간색으로 적어둔 글자와 형광펜으로 강조한 날짜칸들을 보며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절대 까먹지 말자! 절대 놓치지 말자!’ 주먹을 꽉 움켜쥐며 식탁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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