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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Jul 24. 2024

과배란은 무서워

  

난임시술을 시작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과배란으로 인한 부작용이었다. 평소 1개에서 2개 정도 배란되던 난자를 약물을 통한 난소 자극을 통해 과배란 시키는 이 과정은 점점 나아가던 나의 지병인 자가면역질환을 다시 불러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과배란 주사 부작용을 인터넷에서 접한 후 걱정이 더욱 커졌다. 난임 시술 중에 있는 많은 난임 선배님들의 과배란 주사 후기를 난임카페에서 접한 뒤였다. “배가 부글부글 죽겠어요.” “두통이 없어지질 않아요. 두통약 먹어도 되는 건가요.” “시술 시작하고 살이 00킬로 쪘어요. 다들 어떠세요? 저만 그런가요?”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긴가민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일단 시작하기로 했고. 지금 내 눈앞에는 당장 오늘 맞아야 하는 과배란 주사가 놓여있다. 방금 냉장고 음료칸에서 꺼내온 과배란 주사는 펜타입으로 뚜껑을 열어 원하는 용량을 돌려 조절해 바로 주사할 수 있게끔 편리하게 나와있는 타입이었다. 주사 바늘을 자세히 본 적이 없어 몰랐는데 유튜브에서 “과배란 주사 안 아프게 맞는 법” “과배란 주사 OO(내가 맞게 될 제품명) 맞는 방법”으로 검색한 결과 펜타입의 주사는 시험관 시술 중에 쓰이는 일반 주사 바늘보다는 얇아서 통증이 생각보다 없다는 후기가 많아 안심이 되기도 했다.      

주사를 맞아야 하는 시간은 아침 시간대(6시~10시)라고 했다. 일단 오늘 맞아야 하는 주사를 꺼내서 거실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소독용 솜이 어느 정도 쓰일지 몰라 일단 3개를 옆에 가지런히 두고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의 분주한 소리가 집을 가득 채웠다. “여보 나 주사 무서워서 못 맞겠어 내일부터 주사 시작하는데 도와줄래?” 어제 남편에게 부탁을 해놨던 터였다. “그럼. 내가 용감하게 주사 한 방에 놔줄게. 걱정하지 마.” 담백하고 믿음직한 대답을 했던 남편을 믿고 있었는데. 정작 당일이 되고 보니 ‘아침에 일분 이분이 아까운 출근 준비 시간까지 굳이 뺐어서 내가 써야 할까.’ 하는 생각에 자신만만했던 ‘함께하는 난임시술’이라는 나의 목표는 스르륵 녹아내렸다. 게다가 나는 난임휴직 중이라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주삿바늘 공포증도 없으니 혼자 해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민하며 소파에 앉아있는데 출근 준비를 마친 남편이 거실로 나왔다. 그와 눈이 마주친 김에 ‘한번 이야기라도 해보자.’ 하는 생각에 입을 떼었다. “여보. 나 조금 무서워서 그런데 주사 맞는 것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남편은 “당연하지.” 하며 팔을 걷어붙이고 내쪽으로 걸어왔다. 미리 주사 맞는 법을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찾아보며 최대한 아프지 않게 맞는 법을 연구했던 나와 달리 남편은 적극적인 의지와는 달리 주사 놓는 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한방에 놔줄게. 그럼 빨리 끝날 거야.” 두툼한 뱃살을 드러내며 ‘아 뱃살을 있는 대로 접어서 내보이는 게 무척 수치스럽군’ 하고 생각하던 나는 남편의 자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남편은 마치 다트를 집어던지려는 자세로 주사기를 잡고 있었고 내 뱃살에 그대로 주사를 냅다 꽂으려고 했다. 천천히 주삿바늘을 배에 집어넣어 가며 아픈지 아닌지 천천히 관찰해 가며 조심스럽게 주사를 놓으려 했던 나와는 다른 너무 적극적인 자세였다.      


“앗. 여보 내가 해볼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의 지나친 의욕으로 무지하게 빠르고 아픈 주사가 될까 봐 급하게 그의 손에서 주사를 가져왔다. “바쁠 텐데 마저 준비해요. 미안해.” 머쓱해진 듯한 그의 뒷모습을 힐끔 보고 나는 다시 소독솜으로 배를 문질러줬다. 뱃살을 한 움큼 쥐고 세게 꼬집고 직각으로 바늘을 꼭! 찔러 넣었다. 약을 주입하는 부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천천히 누르니 주사기의 눈금이 조금씩 줄어드는 게 보였다.    

‘난임시술에서 남자가 하는 건 거의 없는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자가주사는 남편에게 맡기고 싶어 했던 건데 결국 내 배에 놓는 주사는 나보다 조심스럽게 놓을 사람은 없는 것 같고. 일하고 있지 않는 휴직자가 가지는 어느 정도의 부채감이 결국 자가주사를 스스로 맞게 했다. 일상생활에서 두통이 생기거나 울렁거리는 경우에도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몸에 이런 반응이 생기는 이유는 뭔지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주사를 맞고 있는 지금이라 괜히 두통이 조금 생겨도 주사 때문인 것 같고, 앞으로 단계를 더 밟아갈 때마다 몸에 생기는 이상들이 하나 둘 늘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겼다. 몸의 각종 ‘증상’들을 강박적으로 인터넷 카페에 검색해 보고 나와 같은 부작용이 있는 다른 난임여성들이 있었는지 뒤져보기 시작했다. 나는 실제로 과배란 주사를 맞으며 울렁거림, 두통, 복무 팽만 등의 증상을 경험했다.     


며칠간 주사를 맞고 다시 산부인과에 내원해 난포(난자 발생 시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것)의 개수를 통해 배란될 난자의 대략적인 수를 예측한다. 나의 경우 맞고 있던 주사의 용량이 적었던 탓인지 과배란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선생님의 의견을 통해 주사 용량을 늘려 더 처방받았다. 난소의 기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인 듯해 마음이 더 급해졌다.      


드디어 첫 인공수정 시술일이 잡혔다. 주사의 용량과 난포의 개수 등 추이를 살펴보시며 주사 용량을 조절하고 난포들이 잘 자랄 때쯤을 가늠하여 인공수정 시술일을 잡아주시는 의사 선생님이 꼭 과학자 같아 보여 신기했다. 힘들게 키운 난자들이 인공수정을 앞두고 먼저 배란되어 버려지는 것을 방지하고 배란 타이밍을 적절하게 조절하기 위한 주사를 각각 처방받았다. 특히 인공수정 시술 시간을 기준으로 34~36시간 전에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인공적으로 처리한 정자를 자궁에 넣어주는 시간대에 난자가 제대로 배란되지 않아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고 했다. 머리가 쭈삣 섰다. ‘절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주사’라고 의사 선생님의 당부를 들은 후 간호사 선생님은 “지금 바로 알람을 맞춰두세요.”하고 안내해 주셨다. 만약 잊게 되면 이번달에 맞았던 과배란 주사는 물론 정성껏 키워놓은 난자들이 버려진다 생각하니 더욱 긴장했다. 생각보다 빨리 임신되는 거 아니야? 그럼 남은 난임휴직 기간은 어떻게 되는 거지? 혼자 기분 좋은 상상과 당겨하는 걱정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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