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에서 울어버렸다

독서실로 돌아가기 싫어!(공대여자 말고 그냥 나)

by mamang




독서실 생활 18개월 차, 나는 서류전형과 전공 시험을 통과하고 이제 마지막 관문인 최종 면접만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어찌 되었건 면접을 잘 해내고 싶었다. 다시는 독서실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접관 : 자, 이제 면접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두 분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당시 면접관 5명에 피면접자 2명이었다.)

공대여자 : 저, 면접관님. 죄송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꼭 드리고 싶습니다.

면접관 : 아~ 네. 네. 그래요. 한마디 하시죠.

공대여자 : 이곳에 입사하는 것은 저 혼자만의 꿈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저의 노력을 본 가족들, 주변 지인들도 함께 저의 꿈을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입사는 모든 이들의 꿈이 되었습니다. (으헝 헝헝 훌쩍) 그뤠서 (으헝) 잘 부탁드립니다. (으허엉) 정말 열심히 (훌쩍) 하겠습니다.


그렇다. 나는 1년 만에 기회를 잡은 면접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그것도 시키지도 않은 마지막 한마디를 하면서 말이다.

면접관 : 아. 괜찮.. 으시죠? 자 그럼 공평하게 해야 하니까, OO 씨에게도 한마디 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면접 파트너 : 아. 상대방분이 감정에 호소하셔서 제가 뭐라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소를 생긋 지어 보이는 그에게 뺨을 맞은 듯 머리통이 얼얼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났고, 그와 나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길을 갔다. 제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붙고, 저분은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래야 내가 면접에서 울었다는 게 완전범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탈락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 나 같아도 남자 직원을 뽑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같은 값이면 고추'라는 말도 있다던데. 심지어 나는 같은 값도 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딱 12개월 전 그러니까 그로부터 정확히 딱 1년 전, 같은 공채 전형을 한번 경험한 바 있었다.


작년에 있었던 최종 면접을 마친 후 결과를 기다리며 이런 상상을 했다.


취업해서 동아리 후배들을 찾아와 한턱 두 턱을 쏘던 동아리 선배들처럼 나도 이제 후배들에게 고기도 사주고 술도 사줄 수 있겠지? 그들에게 취업 그까짓 거 별거 아니라는 일장 연설을 늘어놓을 기회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다들 입을 모아 "언니, 누나 대단해요! 짝짝짝!"하고 나를 우러러보며 부러워하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조금 더 멀리 가보았다. 첫 출근 복장은 어떻게 입고 갈지, 어떤 표정으로 선배님들께 인사를 드릴지 고민했다. 아마 내 상상과 더불어 우리 부모님은 식당에 음료 서비스를 돌려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우리 할머니는 손녀의 취업 무용담을 무심한 듯 펼쳐내야 하는 데 동네 목욕탕이 좋을지 노인정이 좋을지 고민하고 계셨겠지.


나를 포함한 온 가족의 상상 취업이 무색하리만큼 나는 야무지게 탈락했다. 그렇게 그 후 일 년 치의 달력을 넘기고 일력의 종이수를 훨씬 넘기는 연습장들을 채워나갔다. 그만큼의 지원서를 쓴 후 겨우 잡게 된 기회였다. 바로 눈물의 그 면접 말이다.


'아 작년에도 최종 탈락하고 독서실에 다시 적응하기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어떻게 공부를 다시 시작하지?'라고 생각하며 아까 받아둔 면접비 봉투를 확인했다. 새침하게 들어있던 봉투 속 3만 원을 꺼내서 지갑 속에 욱여넣었다. "뭐야. 올해도 3만 원이야. 내가 여기에 왔다 갔다 하는 차비가 얼만데." 하며 고속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향했다.




이제 하다 하다 면접에서 울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엄마 핸드폰, 아빠 핸드폰, 할머니가 계시는 우리 집 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그냥 잘했어요. 붙을지 아닐지는 나와봐야 알죠. 모르겠다니까요, 우선 공부하고 있어야죠. 알겠어요. 집으로 갈 거예요. 바로. 네. " 하고 같은 말을 3번 반복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그 말을 해야 했을까. 아니, 했어도 왜 울기까지 했을까. 울었던 건 내가 의도한 게 아니라지만 나는 왜 그렇게 많은 눈물이 났을까. 남들 다 하는 취업 준비가 뭐 그렇게 서럽다고 펑펑 울어 버렸을까.


이제 내가 있던 독서실 자리로 돌아가게 되고, 불합격 통보를 받은 미래의 불운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아니,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걱정하고 생각했다.


합격? 불합격? 기타 등등에 대한 수백 개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봐도 최종 발표까지 남은 2주라는 시간은 아주 느리게 갔다. 독서실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고 앉아는 있었지만, 나의 영혼은 면접을 봤던 그 건물 근처에서 아직도 기웃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은 뜨고 있지만, 글이 읽히지도 않았던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면접까지 갔다가 독서실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사람은 제자리를 찾는 데 한참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걸 모르지 않던 나는 어찌되었건 또 다른 1년을 준비해야겠지? 하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생각보다 포기를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2개월 후,


나는 다행히도 합격 통보를 받았고, 유쾌한 걸음으로 독서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합격 소식에 잔뜩 부푼채로 신입사원 교육장에 도착했다. 정수기 앞에 놓여있는 각종 과자들과 차류를 구경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남자 동기 : 안녕하세요? 여기에서 뵙네요.
공대여자 : 아 ~ 네 안녕하세요?
남자 동기 : 저희 둘 다 붙었네요. 안 그래도 합격하셨나 궁금했는데. 면접 인상적이었습니다.
공대여자 : 아. 네.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총총)


나의 눈물을 본 그분도 함께 합격했다니. 그 남자의 말투는 마치 '네가 붙을 줄은 몰랐다' 였기 때문에 나는 아주 많이 부끄러져서 도망가고 싶었다.


나는 그날 쥐구멍이 없어서 도망갈 곳이 없었고 애꿎은 간식들만 마구 먹어댔다.


신입생 교육을 마칠 때쯤 나는 가장 친한 동기 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분이 제발 다른 곳에 추가합격이 되셔서 이곳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그도 아니면 부디 입이라도 무거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안 했으면 좋겠는데, 저번에 나에게 인사를 하며 실실 쪼개는 걸 봐서는 이직이나 퇴사를 기대하는 게 현실적일 것 같다고.


2011년도에 신입 사원 교육에서 마주친 이후 나는 그분과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내가 그분을 피해 다녔다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집합 교육이라도 할라치면 나는 그분을 기준으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자리를 잡았으니까 말이다.


9년이 지난 지금, 그분은 지금도 회사에 잘 다니고 계신다. 정작 이직은 내가 해버렸고 말이다. 그분은 나를 기억하고 있으려나.


사람일은 모른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정말 맞다는 오늘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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