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웃는 농담, 음담패설

직장에서 여자 신입이 겪을 수 있는 일(공대 여자 말고 그냥 나)

by mamang
용희는 지난 5년간 그토록 원하는 장소에 간신히 도착해 있는 상황이었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자신에게 있는지 확인할 여유조차 없이. 용희는 업무 첫날의 흥분과 긴장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용희는 차가운 세상에, 이 혹독한 사회에 두 번째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도 될 것 같았다.
이렇게 빨리?
- 김기창, [지구에 커튼을 쳐줄게](《릿터》 2020년 6/7월호)


돌고 돌아 긴 시간의 끝에 드디어 내 자리를 찾은 듯했다. 그래서 누구의 눈에도 나지 않고 모두의 눈에 제대로 들어가 불안감을 없애고 싶었다. 내가 이곳에 정확히 찾아왔고, 지금이 완벽하기 그지없는 타이밍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신입 직원입니다" 차장님께서 부서장에게 소개를 해주셨다. 당시의 나는 26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사람의 인상에 따라 앞으로의 관계를 추측하곤 했는데, 부서장에 대한 나의 인상은 불호였다.


눈은 위아래로도 크고 좌우로도 대충 찢어졌는데 눈을 제대로 뜬다기보다 얇은 눈을 만들고 사람을 보는 것 같은 게 우선 음산한 느낌이었다.


웃는 것은 좌우로 길게 입을 만들어 웃는데 희한하게 눈이 웃지를 않았다.


그래도 나는 사회초년생이니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무던하고 밝은 체하며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십니까. 공대여자 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눈과 입이 좌우로 긴 부서장, 미스터 우에 대한 오해는 첫 회식 자리였던 환영식에서 조금 해소되는 듯했다.


그를 포함한 나의 선배들은 나를 상석에 앉게 했다. 내가 가장 말단 직원인데도 불구하고 부서장 옆자리에 앉게 된 게 무척이나 민망하고 선배들 보기 죄송스러웠다.


그래도 신입사원이니 오늘만 특별히 받는 배려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후 부서가 해산되기까지 2년여의 기간 동안 나는 항상 그 자리에 앉아야 했다.


아무튼, 말단 직원 주제에 상석에 앉은 나는 처음에는 수줍고 민망해서 웅크려있었다. 성실하게 돌아다니던 술잔은 내가 비우는 족족 어느새 내 앞에 와 있었다. 술도 얼큰하게 들어갔겠다. 이제는 나도 이 조직의 일원이 된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지고 용기도 불끈 솟았다.


선배들과 미스터 우가 신입인 나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래도 바쁜 현장에 하얗고 동그란 얼굴을 한 여자 직원이 온 게 못마땅하시지는 않을까 눈치가 보여 나는 괜히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애먼 맥주병을 숟가락으로 따서 소맥을 말아 나눠 드리며 "간을 맞으십니까" 했다가, 여기 들어오려고 재수까지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곳에 발령 와서 너무 좋다는 이야기를 부단히 애교를 부려가며 떠들었다.


나중에는 미스터 우의 옆자리에서 어떻게든 다른 쪽으로 가야 하나 눈치를 보다가 상사분들이 이 테이블로 찾아오시는 바람에 아주 민망하고 앞뒤가 바뀐 꼴이 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나도 자네만 한 딸이 있네." 하는 미스터 우에게 괜스레 오해했던 것 같아 마음 한구석에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30년 넘게 식당을 하시느라 고생하신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가, 이분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버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속에 있던 경계가 허물어졌다.


모든 구성원이 따뜻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나는 너무 행복했다. 내가 드디어 사람 노릇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직업이 하나 생겼을 뿐인데 그 직업의 프레임만큼 내가 멋져진 것 같고 드디어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지난 26년이 오늘의 광명을 위해 살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잘 해내고 싶었다.




미스터 우는 그다음 회식 때, 티타임 때, 점심 식사 때 주로 젠틀했다. 시기적절한 업무지시를 했고 공정관리가 중요한 현장에서 감독으로서 필요한 카리스마를 몸소 보여줬다.


그런데 그는 시동 거는 시간이 지난 모양인지 언젠가부터 회의 시간에 "×× 놈들 똑바로 안 해"하며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차장님, 과장님 그리고 대리님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앞에 놓인 찻잔이나 테이블만 바라보고 계실 때면 나도 같은 망부석이 되어 함께 욕을 들었다.


어떻게 하면 욕을 안 먹고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수 있나 고민하던 게 나의 주된 일과였다.


그러다 몇 달간의 시간이 지난 후 미스터 우는 함바집에서의 점심시간에 본인만 웃게 되는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이야. (중략) 그래서 그 아내가 샤워가운을 벗었는데 보니까 뭘 입고 있었게? 당연히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겠지? 껄껄껄"


처음 이런 유의 농담을 했을 때는 '그냥 내가 들리지 않는 척하면 되나 보다' 싶어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었다. 받아칠 말도 번뜩 생각나지 않고 길에 찢어진 입으로 밥을 먹다 말고 이런저런 농담을 무슨 의도로 나불거리는지 알 길도 없고 안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행히도 차장님, 과장님을 따라 들어가 더불어 욕을 먹게 되는 날들이 많아진 후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능력치가 올라간 후였다.




언제 한 번은 옆자리에서 시공사 현장 직원들이 같이 밥을 먹고 있는대도 미스터 우는 으레 하던 대로 자기만 웃는 농담을 시작했다.


여러 날 중 하루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넘어가려 했지만, 나의 이런 모습을 현장 직원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독으로서 면이 서질 않았다. 나도 별수 없이 이런 농담에 약해지는 여자라고 인정하는 꼴밖에 안 되는 것 같아 화가 났고, 나는 그 즉시 무언가를 해야 했다.


미스터 우가 지껄이는 또 하나의 한심한 농담을 듣고 내가 한마디 했다.


공대여자 : 부서장님~ 그런 말씀 하시면 제가 고충 처리반에 신고합니다. 삐용삐용~


비장하게 마음먹은 것에 비하면 나의 표현이 약소하기 짝이 없었지만, 삐용삐용은 반드시 붙였어야 했던 효과음이었다. 당시의 나는 어떻게 해야 지금 내가 불쾌한 그 농담을 멈출 수 있을지 몰랐고, 한편으로는 불쾌한 일을 재치 있게 넘어가며 넌지시 경고를 던지고 싶기도 했다.


그랬더니 미스터 우는 "으하하하하 그래? 그럼 이건 어때? 또 저건 어때?"하며 농담 융단폭격을 시작했다.


선배들은 밥상을 주시하며 바깥 이야기가 귀에 들리지 않는 듯 한마디 거들지 않는 것에 속이 상해 있었는데, 직속 상사인 주 차장님이 드디어 한마디 보태셨다.


주 차장님 : 부장님 그런 말씀 하시면 벌금 3천만 원입니다. 삐용삐용
미스터 우 : 어이쿠. 그렇다면 할부는 되나? 허허허


주 차장님은 뜻밖의 부작용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고, 나는 미스터 우를 따라 크게 웃었다. "할부는 안 되죠. 일시불입니다. 삐용삐용."


나는 크게 웃었고 크게 슬펐다.




많은 여자 후배들과 동료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그때의 나는 '다른 여자들과 같지 않은 척', '이런 일도 웃어넘길 수 있는 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남자보다 못한 여직원'이라는 말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고, '여자라는 불편하고 걸리적거리는 존재' 대신 '있는 듯 없는 듯 남자들과 잘 생활하는 여성'으로 보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고백건데 이런 나의 태도와 기대들이 나를 남초 직장에 자리 잡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게 좋은 거로 생각했던 나는 모두에게 좋아도 나에게 좋지 않다면 명확하게 "그 입 다물어주시오"라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 10년이 지난 나중에서야 배웠다.


지금 웃고 넘기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나의 모호한 태도들이 모이고 모여서 '이런 것도 괜찮은 애, 웃어넘길 때는 언제고'하며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줄은 몰랐다.




미스터 우는 그 이후로도 꾸준하고 성실하게 개소리를 뱉어냈다.


"공대여자는 맏며느릿감이야. 내 며느리 삼고 싶구먼. 허허허" 하다가 "남자 친구는 있고?" 하며 슬쩍 이야기를 돌렸다.


욕도 잘하고 부서원들을 몇 마디로 제압하는 미스터 우에게는 거짓말도 통할 것 같지 않아 "있습니다." 했더니 아쉬워서 어쩌냐며 뭐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만났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신상을 탈탈 털어갔다.


그 후 단둘이 현장을 둘러보고 오는 길에 미스터 우가 "남자 친구는 잘 있고?" 하고 운을 띄우길래 또 이실직고하며 "헤어졌습니다." 했다.


공대 여자는 맏며느릿감이라서 누가 데려갈지 궁금하다는 소리에 덧붙여 좋은 사람을 내가 알고 있으면 소개를 해줄 텐데 아쉽다고 난리다.


그로부터 몇 주 후 우리 부서 1년 선배 김 대리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신다. "공대여자야 미스터 우한테 개인적인 이야기 많이 하지 마. 저번에 부서장들이랑 몇몇 남직원들끼리 하는 술자리에서 공대여자가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고 다닌다고 했데."


역시 나의 사람 보는 눈은 틀림없나 보다. 음산한 기운이 눈물 섞인 욕과 같이 올라온다.


그 이후 나는 9년간의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받았던 질문에 이렇게 응대했다.


불특정 다수의 직원 : 공대 여자 ~ 만나는 사람 있어요? 남자 친구 있죠? 그렇죠? 저한테만 말해봐요.
공대여자 : 아예. 이건 비밀인데요. 있다 없다 해요.


"있다 없다 해요."는 모든 미혼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프리패스 같은 답이라는 걸 알았다.


대부분 "아 맞네. 그렇겠지." 하고 멋쩍어 더 질문을 하지 않는다.




미스터 우는 임금 피크 기간 복무를 마친 후 자신의 딸과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의 소중한 딸과 아내는 알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소중한 아빠이자 남편이 누군가에게 이런 방식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부디 유쾌하지 못한 나의 지난 시간이 다른 사람의 시간 속에서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미스터 우의 귀한 딸은 누군가에게 상처받지 않기를, 내가 괜찮지 않다면 애써 웃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길. 불편한 일을 굳이 무리해서 괜찮은 척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길.


무엇보다 나의 소중한 직장에서의 추억을 누군가가 망치게 내버려 두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길.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딸이 있다고, 부인이 있다고 해서 한 남성이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타인을 존중하고 품위 있게 대하는 남성이 좋은 남성입니다.
-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미국 최연소 연방 하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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