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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Sep 03. 2020

퇴사 덕분에 만난 인연

부부 취업단 (공대여자 말고 그냥 나)


남편 : 오늘은 글 안 써?
공대여자 : 응.
남편 : 왜? 인기가 없어?
공대여자 : (풉 피식) 응. 그런 거 같아.
남편 : 그냥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뭐.


집에서 근무하고 있는 남편이 묻는다. 아침 산책을 하고 돌아온 내가 주저앉아서 책만 읽고 있으니 궁금했던 모양이다.


남편에게는 "그냥 오늘은 내가 예전 회사 그만뒀던 일을 쓰고 싶었거든." 했다. 남편은 뭔가 기운이 없어 보이는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나 보다. 지금 다니고 있는 세 번째 회사에 입사하기까지 어땠는지 차례대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몇 번 들었던 남편의 이직 스토리지만 내 상황, 기분에 따라 대단하게 보이다가 짠하게 보이기도 했다가 한다. 오늘은 어떤 맛의 이야기로 다가올까.


우리는 각기 다른 대학을 나왔다. 건축을 전공한 공대 오빠인 남편은 대학 졸업반 재학 중 시공사에 취업했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건축기사로 일했던 오빠는 휴가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주말도 보장받지 못하는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오빠 그만둔다고 하니까 현장 소장이 뭐랬어?" 하고 내가 물었더니 남편이 "뭐라고 하겠어. 내가 공공기관으로 이직하고 싶어서 그만두고 공부할 거라고 했더니 소장이 비웃으면서 그게 쉬운 줄 아냐? 하더라고"


"웃기는 소장이네? 그래도 지금은 후련하겠네 오빠? 대단하다. 그렇게 솔직히 말하고." 내가 맞장구를 치니 남편이 덧붙였다. "나는 퇴사할 때 퇴사 사유에 진짜 다 적었어. 아파도 휴가를 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주말에 쉴 수도 없고.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그만둔다 그렇게 썼지."


"우와. 그래서 두 번째 회사 간 거야?" "응. 지금 회사 최종 면접까지 2명이 갔었는데 그중에 딱 1명만 뽑는 전형이었거든. 나는 결국 떨어져서 못 갔지. 그러다가 두 번째 회사 다니고 있는데 공지가 떴길래 다시 써봤어. 두 번째 회사 가기 전에 1년 반 동안 공부했던 것도 있어서 써보긴 했는데, 그냥 왠지 나는 여기 안될 거야. 하고 생각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시험 보고 면접 보고 그랬어."


"그때는 왜 옮기고 싶었어?" 하고 물으니 남편이 하는 말 "사람이 참 간사한 것 같아. 워라밸이 보장되니까 돈이 너무 적은 것 같더라고. 지방 이전도 한다고 하고."




매번 들을 때마다 항상 다른 방향으로 마음이 졸인다.


"그래서? 면접 보고는 될 것 같았어?" 하고 내가 물었다. "아니. 진짜 기대를 안 했지. 최종 면접 보고 나서는 2주간 출장이 있었거든. 거기에서 회식도 하고 일도 하고 똑같이 생활하고 있었어. 하루는 밥 먹고 있는데 문자가 왔어." 내가 말을 가로챘다. "최종 결과 확인하라는 문자! 맞지! 합격 여부는 알려주지 않는!"


"응. 맞아. 합격 여부는 없는. 그 문자를 받으니까 나는 '속으로 ㅆㅂ 합격했네?' 했어. 그거 알잖아. 왠지 패가 좋은 거야. 그래서 들어가서 컴퓨터로 조회했지. 나는 항상 최종 결과 볼 때는 모니터는 중앙은 가리고 오른쪽 스크롤만 봤었거든. 스크롤이 길쭉한 게 떡하니 있으면 불합격이고 짧은 게 있으면 합격이야."


내가 또 말을 막고 선수를 쳤다. "아! 합격이면 안내할 말이 많으니까?" 남편이 끄덕인다. "그렇지. 그럼 끝이거든. 딱 화면 가리고 보니까 오른쪽 스크롤 막대가 짧은 거지. 합격이었지." 나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했다.


우리 부부는 각각의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남편이 지방 출신이라 좋았고, 지금의 직장이 첫 직장이 아니라서 더 좋았다. 동글동글하고 단단하다랄까. 소개를 받고 처음 만난 몇 번의 자리에서 시종일관 내 눈을 놓치지 않고 보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선량해 보였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히 각자 가지고 있는 이직의 역사도 듣게 되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첫 회사를 아예 그만두고 이직 준비를 할 정도면 이 사람 믿고 만나봐도 되겠다 싶었다. 또 두 번째 직장도, 세 번째 직장도 야무지게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속이 단단하고 야무진 것 같아 좋았다.


그 후 인연이 되어 만나보고 결혼해서 지내보니 내가 지랄같이 굴 때도 단단하고 차분하게 기다려주는 모습에 내가 남자 보는 눈이 있구나 싶었다.


결혼을 앞두고 내가 엄마에게 "결혼하려고 보니 내가 모은 돈이 없어. 예전 회사 다닐 때 모았던 돈을 취업 준비에 너무 다 써버려서. 괜히 회사 그만뒀나 봐." 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하는 말 "그랬으면 장 서방 못 만났겠지." 엄마의 의도대로였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말은 내 마음을 녹여버렸다.


"맞네. 그만두지 않았으면 오빠를 못 만났겠구나!"


나는 내 첫 회사를 그만두고 1년 6개월의 취업 준비기간을 거쳐야 했다. 그렇게 겨우 합격한 두 번째 회사가 위치한 서울로 주거지를 옮겨왔다. 그 덕에 수도권에서 직장을 다니는 남편을 소개받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쥐인 내가 서울쥐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우리가 뭔가에 이끌려 하게 된 여러 선택은 하나둘 모여 뜻밖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오빠 우린 만날 운명이었던 거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려고 했던 말, 내가 첫 직장을 왜 그만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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