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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Sep 14. 2020

홍삼 먹는 누나(이직을 꿈꾸는 이들에게)

(공대여자 말고 그냥 나)


이직을 꿈꾸는 이들은 불굴의 의지를 갖추고 있다. 주말에도 쉬는 시간을 쪼개서 시험을 보고 다니며, 회사를 그만두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낀다. 그들의 의지는 퇴사 후 몇 달 동안 최고치를 찍는다. 하루 24시간이 오직 나를 위해 주어진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


물론 나도 그랬다. 4년간 다녔던 회사에서 떠났다는 아쉬움보다 후련함이 컸다. 본격적으로 수험 생활을 시작했던 퇴사 2개월 차에는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뭐든지 해낼 것 같았던 마음에 몇 가지 문제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물론 주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가까스로 이겨내긴 했지만. 짧거나 긴 사회생활을 마친 후 수험생활로 복귀한 나이 든 구직자들의 현실은 어떨까. 내가 겪었던 뜻밖의 어려움을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01. 금요일 저녁만 되면 집중이 되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하는 기간 나에게 금요일은 해방의 날이었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일요일까지 맥주도 마시고 차를 마시면서 즐겁게 보냈다. 친구들과 상사 뒷담화를 하고 웃고 떠들며 보냈다. 물론 일요일 저녁이면 개그콘서트를 보며 울상이 되기 마련이었지만 말이다.


퇴사 한 달 후 나는 도서관에서 토익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혼자 공부 보니 유혹에 자주 흔들렸고, 또 너무 쉽게 굴복했다. 결국 월요일은 월요병 때문에 집중이 안 되고, 화요일, 수요일은 옆자리, 앞자리 사람을 신경 쓰느라 공부하기 힘들었다. 목요일은 월, 화, 수를 지나오느라 피곤했고, 금요일에는 불금이니까 공부가 되지 않았다. 애매하게 집중도 못 할 바에야 몸도 마음도 편하게 쉬자는 결론을 내린 후 금 오후, 토, 일요일을 푹 쉬었다.


그렇게 또 한 달을 보냈다.


이러다가 도서관 붙박이가 되어버릴 것 같다는 끔찍한 상상을 했다. 그렇게 나는 '강제로 공부시켜주는 주입식' 토익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내가 등록했던 학원은 아주 빡센 일정으로 유명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매일의 시간표가 짜여 있다. 이에 불성실하게 응할 경우 경고를 받게 된다. 경고 누적 시 퇴원 권유를 받게 되는 무서운 학원이었다.


당시 그 학원의 수강생 100여 명을 통틀어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무엇보다 선생님 중 한 분은 나와 동갑이셨다. 그 선생님 보기 민망해서라도 나는 열심히 해야 했다. 오늘의 일과를 마치면 내일의 테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공부하는 어린놈들에게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면 금요일이건 주말이건 상관없이 냅다 달려야 했다.


나는 그렇게 금요일 병을 이겨낼 수 있었다. 역시 최고의 효율을 위해서는 경쟁이 최고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공부와 멀어졌던 나는 그렇게 다시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다.


02.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 10시간, 11시간을 꼬박 자리에 앉아서 공부했다. 그러다가 정 바쁘면 식사를 간단히 먹거나 생략해도 몸에 큰 무리는 없었다. 나는 변함없이 그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변함없을 것 같았던 체력은 잦은 회식과 야근, 밤샘 근무 등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술을 좋아하던 상사 때문에 살이 5kg 이상 쪄 있었다. 회사에서 혹사한 만큼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매일같이 학원에 가서 테스트를 치르고 오전 수업을 들은 후 커피에 의지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오후 3시가 된다.


오후 3시에서 4시는 하루 중 내가 가장 버티기 힘들어했던 시간이었다.


공대여자 : (주섬주섬 허겁지겁) 후루룩
학원 동생 : 누나 뭐 먹어?
공대여자 : 젊은것들이랑 경쟁하려면 이 정도는 먹어줘야지. 홍삼 없으면 체력이 달려서 누나 힘들다.


그렇게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학원 동생들이 "언니, 누나 홍삼 먹을 시간이에요" 하고 알려줬다.


그때의 나는 집에 홍삼을 사 들고 가도 부족한 나이였다. 하루는 내가 집에 선물로 들어온 홍삼을 챙겨서 방에 들어가는 걸 아빠가 봐버렸다. 아빠는 나를 놀리듯이 "이 도독년이~ 우리 집 살림 다 거덜 내네" 했다. "아빠 내가 취직해서 다 갚을게" 하고 두꺼운 얼굴을 했다.


그리고 학원을 마치면 크로스핏을 하거나 홈트를 했다. 낮에는 홍삼을 먹고 저녁에는 운동을 꾸준히 한 덕에 떨어졌던 체력은 조금씩 회복되는 듯 했다.


03.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


토익 듣기 평가나 읽기 지문 같은 경우는 글의 앞뒤 문맥에 따라 눈치껏 푸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점수를 올리게 되면 얼마나 많은 어휘를 알고 있는지에 따라 점수가 갈리게 된다.


나는 단어와 숙어를 외우는데 무척이나 고생을 많이 했다.


단짝 정디는 여학생 중에서 나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다.


장디 : 언니, 저는 단어 외우는 게 진짜 어려워요. 언니는 괜찮아요?
공대여자 : 디아야, 언니 머리는 이미 썪은 것 같아. 당최 머리에 들어오지를 않아. 알콜 때문에 뇌세포가 많이 죽었나 봐. 어쩌겠니 성실로 대결해야지.
장디 : 그래요. 언니. 그래서 저 요즘 잠도 줄였잖아요.
공대여자 : 장하다. 나도 그 방법밖에 없네! 정말 ㅠㅠ 그나저나 언니가 홍삼 하나 줄끄나?


04. 학생인데도 아직 체면을 챙기고 싶어 했다. 


월급을 받는 생활을 하면서 나는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낼게, 아니야 내가 낸다." 하기 일쑤였다.


특히 남자분들이 많은 곳에서 생활해서 그랬던 것 같다. 모두의 몫을 내가 내거나 나중에는 다른 사람이 내는 걸로 대충 '퉁' 치면서 지내왔던 것 같다. 그렇게 여럿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나의 몫만 내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퇴사 후 처음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토익 학원에서 돈을 어떻게 N빵해야 할지 난감했다. 나중에는 "내가 다 내는 게 마음 편하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봤자 분식인데, 왕고 언니이자 누나인 내가 몇천 원씩 주라고 하기도 난감했다.


단짝인 장디가 나의 소심함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녀는 같은 반 동기들끼리 밥을 먹으러 가게 되면 알아서 계산하고 나에게 "언니는 얼마 주시면 돼요." 했다. 여의치 않을 때는 "각자 얼마씩 계산하자." 하고 동기들에게 알아서 금액을 분배해 알려주기도 했다.


장디 : 언니 막 그렇게 돈 먼저 내고 그러지 말아요. 우리 다 같이 공부하는 학생인데.
공대여자 : 정말 고마워 장디야. 엉엉 ㅠㅡㅠ


그 아이 덕분에 나는 동생들과의 각자 계산에 익숙해졌다. 내가 굳이 베풀 필요가 없으니 서로 부담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언제 어디서든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05. 수험 생활에 드는 돈은 너무 많다.


회사에서 나오니 복사도 내 돈 주고 해야 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공부할 때에는 마음껏 기출문제를 복사할 수 있어서 참 좋았었다.)


사야 하는 책, 풀어야 하는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매일 사 먹어야 하는 밥부터 학원비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돈이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내가 모은 돈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등록한 학원은 한 달 수강료가 80만 원에 육박할 정도로 아주 비쌌다. 토익은 3달 안에 마스터할 계획이었지만, 다른 자격증 시험도 남아있었다. 최소한으로 시험을 응시하고 최대한 적게 책을 사서 읽는 방식으로 조정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당시 나의 멘토 역할을 해주셨던 큰 형부에게 고민 상담을 했다. 한 달에 교육비로 사용해야 하는 예산이 너무 큰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형부가 말씀하셨다.


큰 형부 : 한 달에 아끼고 아껴서 50만 원씩 써가며 2년 공부할래, 100만 원씩 써가면서 6개월 만에 끝낼래?
공대여자 : 오 큰 형부 너무 역시 현명하세요. 맞아요! 저는 펑펑 쓰면서 6개월 만에 합격할래요!


물론, 100만 원 씩 써가면서 6개월 만에 끝내려고 했던 수험생활이 120만 원씩 쓰는 18개월이 될지는 형부도 나도 몰랐다. 하하하




퇴사 3개월 차, 한참 토익 학원에 적응하고 점수도 잘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나는 검찰청에서 결려온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공대여자 : 장디야. 나 오늘 검찰청 직원 누구라는 사람한테 전화 왔었다?
장디 : 헐. 그래서 뭐래요. 그 사람이?
공대여자 : 아니 글쎄 내가 무슨 통장을 빌려줬냐고 하던데?
장디 : 그래서 언니는 뭐랬어요?
공대여자 : 그럴 리가 없다고 했지. 그랬더니 농협 계좌가 있냐고 묻더라고. 있다고 했더니 농협 계좌에 돈이 얼마나 있냐고 하더라? 알다시피 지금 언니가 거지잖아? 확인해보니까 삼십몇만 원이 있더라고. 그래서 30만 원 정도요? 했지. 그랬더니 전화를 끊어버리더라. 크크크
장디 : 그래도 그 사람들 30만 원은 안 뺏어갔네요. 언니. 크크크


전화를 끊고 검찰청 직원이라고 이름까지 댔던 그 사람의 이름을 네이버에 그대로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 그 이름과 관련된 보이스 피싱 사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털릴 만큼 돈도 많지 않았지만, 뼈 땀 흘리며 번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다 날려버렸으면 내가 원하던 직업을 가질 수 있었을까. 아찔하다.


지금, 퇴사를 강행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01. 예산 계획을 수립해라. 꼭 필요한 돈만 써라.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 아주 답답할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우울하니까, 짜증 나니까 하는 감정소비가 많아질 수 있다. (내가 그랬다.) 한 달, 일주일 단위로 예산을 수립해서 사용해야 덮어놓고 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수험 생활이 나의 예상보다 더 길어질 경우, 돈이 떨어져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원하지 않는 곳에 급하게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02. 운동을 꾸준히 해라.


체력을 위해 일주일 3번 이상 운동을 하자. 최소 5살에서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젊은것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어느 정도 몸 관리를 해두어야 면접에서 불리하지 않다. 무엇보다 공부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크로스핏, 수영, 헬스 등을 하며 체력을 만들었다. 비용이 부담된다면 홈트도 좋다.


니가 이루고 싶은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니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모두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다.(드라마 '미생')


03. 최소 6개월은 고민해보고 결정하라.


회식과 야근에 절어있는 몸은 공부에 적응하기 어렵다. 마음같이 머리는 빨리 돌아가지 않는다. 주변의 친구들이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하면서 쭉쭉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 퇴사 후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시간은 멈춰있는 것 같이 느껴질 것이다.


초반의 열정은 점점 조바심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러다가 회사에 다시 재입사하는 악몽을 꾸는 날이 올 것이다. 물론 그러기 전에 이직에 성공하면 아주 환상적이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나의 경우는 1년 동안 퇴사를 고민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봤고 시뮬레이션 해봤다. 진로를 명확하게 정했고 분기별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는데도 항상 초조했고 자격지심이 생겼으며 악몽을 자주 꿨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야(드라마 '미생' 중)


잊지 말자. 상세한 계획 없이 감정에 의해서 퇴사를 선택하지 말자. 부디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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